아이를 망친다는 말에 겁먹지 마세요(The Myth of the Spoiled Child)


널리 알려진 육아 상식과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육아를 바라보는 책이다. 아이를 버릇없이 하는 것은 양육의 관대함보다는 체벌이라는 연구 결과가 흥미로웠다. 아이가 말 잘 듣는 순종적으로 자라기보다는 관성에서 벗어나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삶의 방향을 잡아가는 아이로 커가길 바란다면 도움이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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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학Pediatrics」에 발표된 대규모 연구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세 살짜리 아이들의 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장래의 아이 성향과 강한 연관성을 보이는 결과를 찾았다. 2년 후 일부 아이들은 유별나게 소란스럽고 말을 듣지 않으며, 시비가 잦고 요구도 많은 데다가 심술궂은 성향을 보였다. 그런데 버릇없는 아이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이런 행동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관대한 양육이 아니라 바로 체벌이었다.

나는 '협동적working-with’양육 유형에 대한 논의가 더 유용하다고 본다. 이것은 ‘일방적doing-to’ 양육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문구 자체에는 통제보다는 협업이, 힘보다는 사랑과 이성이 부각되고 있다. 여기에는 다음 요소도 포함된다.

• 아이를 조건 없이 받아 준다. 아이가 무엇을 하는가의 여부로 따지지 않고 아이의 됨됨이 그대로 사랑한다.

• 아이와 관련된 일에는 아이가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규칙적으로 제공한다.

• 복종을 유도하기보다 아이의 욕구 충족과 길잡이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 나쁜 행실을 위반 행위로 간주해 처벌하기보다 문제 해결과 지도의 기회로 삼는다.

• 아이 행동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그 기저에 있는 동기와 이유를 이해한다.

47개 연구 검토에서 아동기 불안은 거부·애정 철회·적대적·과잉 관여 양육 유형에 전부 관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가장 놀라운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부모가 자율성을 적극 지지한 아이들이 불안 수준이 가장 낮았고, (2) 양육 변수를 전부 모아놓고 보면 불안 비율은 매우 근소한 차이를 나타냈다.

'익숙해지는 편이 낫다Better Get Used To It’라는 말에는 삶이란 힘들고 괴로운 것이며 무엇으로도 그걸 바꿀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세상 일이 다 그런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학교와 직장을 바꾸려는 노력은 다 부질없으니 아이들은 이 현실에 잘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어른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BGUTI에는 이런 의미가 숨어 있다. 보상과 처벌·등급과 순위를, 역사상 바로 이 시기에 나타나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관습으로서 고민하지 않고 단지 '삶의 방식’정도로 받아들인다면, 아이들의 비판적 감성은 표출되기도 전에 사산되고 만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정책은 결코 토의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BGUTI는 자기 충족 예언이 되고 만다.

BGUTI는 순종의 비법이다. 이는 아이에게 불리한 환경에 대처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한다. 오히려 불리한 환경이 아이곁에 오래오래 서성이게 할 뿐이다.

장난감으로 주의를 돌린 아이들이 더 오래 기다린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효과가 가장 큰 것은 "금욕도 냉정한 결단"도 아니었다. 기다리는 동안 자기통제가 전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 Mischel, 1996, p.209

심리학자 잭 블록(Jack Block)은 두 가지 요점을 덧붙였다. 첫째, 자제력 부족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발성, 융통성, 상호 간 온정 표현, 개방성, 창의력의 기반을 제공할 수도 있다. 둘째, 자제력이 자나치면 너무 부족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려할 만하다. 그런데도 부모와 교사들은 아이들의 자제력이 부족하면 조바심을 내고 문제행동으로 규정지으려 한다. 블록이 보기에 자제력은 전반적으로 칭찬받는 개념이지만, 그렇다고 얽매이지 않은 충동 성향을 절대적이고 엄격한 충동 통제로 바꾸려는 태도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신이 큰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일만 제대로 한다면, 권위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당신이 “엄격하고 무뚝뚝하고 판에 박히고 감정이 메마르다” 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그건 이상적인 삶의 방식이 아니다.

앤절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는 "근성 있는 사람도 계속 버티기만 하다 새로운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고 시인하면서도 그 사실을 문제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녀가 정의하고 두둔하는 근성의 의미는 실제로 이렇다. “삶에서 어떤 특정한 일을 하기 위해 다른 많은 일들을 포기하는 행위.” 예를 들면, 더크워스는 아이들이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다. “한 가지 악기에 매달리는 아이를 보면 근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 더 재미는 있겠지만, 높은 성취도를 얻기 위해서는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

흥미롭게도, 순전한 즐거움 때문에 일을 지속하는 사람은 자기훈련까지 동원해야 할 필요가 없다. 이들은 악착같이 물고 늘어질 필요가 없으며 더크워스가 고안한 '근성 척도’에서 고득점을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 수필가 애니 딜라드(Annie Dillard)는 작가가 되는 과정을 논하면서 이렇게 평했다. “글은 의지로 쓰는 게 아니라 변치 않는 열정으로 쓰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가 된다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며 덧붙였다. “한밤중에 일어나 우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 정신력에만 의지해야 한다면 그 아이는 굶어 죽을 것이다. 젖을 먹이는 행위는 사랑에서 나온다.”

손 떼야 할 시기를 안다는 것은 지혜와 혜안뿐만 아니라 용기와 기지가 필요한 일이다. 해 오던 일을 계속 한다는 것은 어쩌면 저항이 가장 적은 길이기에, 하던 일에서 손을 떼고 "이제 그만!"이라 외치려면 결단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끈기의 좋은 점만큼이나 중요한 메시지로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를, 그리고 열정을 촉발시키기를 원한다. 이는 그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지와 상관없이 시작한 일은 마쳐야만 한다는 가르침과 전혀 다르다.

좋은 성적이란 때로 교실의 권력자가 주는 '인정 표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적에 다른 기능이 있다 해도, 그것의 타당성과 신뢰도가 낮은 것은 문제가 된다. 더욱이 높은 성적을 좇는 학생은 놀라운 근성을 보이는 반면, 배우는 내용에 흥미가 적고 사고방식이 피상적이며 기억력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게다가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가장 쉬운 과제를 선호하는 성향이 두드러졌다. 그들의 목표는 새로운 사고가 아니라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돌아보면 '쿠이 보노? cui bono?'라는 라틴어 질문이 떠오른다. “누가 이득을 보는가?” 시키는 일은 무조건 참고 견디도록 훈련시키는 것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식비지원, 의료보장, 공영주택을 포함한) 다른 무엇보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가장 가치 있는 빈곤 대책이라는 이 놀라운 주장은 과연 누구의 이익에 부합할까? 생활고와 싸우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는 시각에는, 상위 1퍼센트 부유층의 재산이 하위 80퍼센트의 재산 총액보다 세 배나 더 많다는 이 경제 구조에 결함이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 사람들이 탓할 대상은 '성격상의 강점’이 없는 자기 자신이다.

부모로서 우리가 마주한 시험대는 저항이 적은 아이에게 쏠리는 마음을 이겨내고 눈앞의 성공을 척도로 여기는 관성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특히 성공을 관습적이고 공허한 기준으로 규정한다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아이들이 성적, 돈, 남의 평가 같은 기념품을 모으느라 삶을 소비하기보다 가슴 뛰게 하는 영감의 소유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가? 우리는 아이들이 개인의 이익에만 몰두하기보다 다각적으로 생각하길 바라지 않는가? 새로운 관점으로 전통을 평가하고, 늘 그래왔다는 이유만으로 따르기보다 어리석고 자멸적이며 억압적인 현상에 물음을 던지기 바라지 않는가?

이 야심만만한 계획에는 세 가지 근본적인 구성요소가 있다. 첫째, 배려의 마음을 지지해 주고 친사회적 성향을 끌어올리기. 둘째, 아이들의 자신감과 자기주장을 밀어주기. 셋째, 회의적 태도와 저항의 가치를 포용할 수 있도록 돕기.

많은 아이들이, 너무도 많은 아이들이 대중매체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에게 일상적으로 '대중매체 바로 보기media literacy’교육을 해야한다.

우리는 "보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이들과 같이 보면서 비판적으로 본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려 줄 수 있다. 필요치 않은 물건을 소비자에게 팔기 위한 광고 전략을 어떻게 꿰뚫어 볼지, 숨어 있는 가치를 어떻게 확인할지, 심리를 조종하려는 시도를 어떻게 뿌리칠 수 있는지 보여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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