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지수 1위 덴마크는 왜 행복할까?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거리에 형형색색 반짝이는 장식들로 눈이 즐겁고, 이맘때면 어디서나 들려오는 캐럴과 크리스마스 거리 연주자의 색소폰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오랜만에 꼼장어에 술도 한잔 했더니 입도 즐겁다. 이런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은 행복에 이바지한다. 오늘따라 표정이 밝은 사람이 유난히 눈에 띈다. 그런데 왜 평소에는 무표정에 심각한 얼굴로 바삐 다니는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일까? 왜 특별한 날. 특정 장소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 걸까? 일상이 행복하다면, 크리스마스도 그저 즐거운 매일 매일 중 하루일 뿐일 텐데. 이 추운 날. 부당 해고 복직을 외치며 길거리 농성을 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해고를 당해도 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그렇게 고생할 필요 없을 텐데. 나라에서 기본 소득을 보장해 준다면 여유 있게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다시 일자리를 잡을 텐데. 그러려면 세금을 많이 걷어야겠지? 세금을 많이 낸다 한들 과연 국민의 생활 안정에 그만큼 예산이 편성될까? 엉뚱한 삽질에 돈을 쏟아 붙고, 특정 사람 배만 불리는 게 아닐까? 그럼 뭘 믿고 세금을 내지?

‘불평불만만 하지 말고,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하자.’ 이렇게 마음먹은 지 거의 십 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대로 몇 년 더 그냥저냥 흘려보내면 아무것도 안 하고 마흔 되겠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덴마크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기 때문에 지금의 행복한 덴마크가 되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럼 우리는, 나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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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내면 돈을 더 벌 수도 있지만 돈이 모든 걸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돈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도 없어요. 당신이 당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죠. 이건 기본적으로 철학의 문제입니다.” - 라세 밀보(Lasse Milbo), 택시기사.

사회가 안정적인 복지 시스템을 만들어놓지 못하면, 인간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 기본 소득을 사회 시스템이 보장해주지 못하면, 이렇게 개인과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세탁물을 회사로 가져오면 퇴근할 때 찾아갈 수 있게 해줍니다. 우편물을 보내는 일도 회사에서 대신 해주고요. 성가신 일에 시간 낭비하지 않고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겁니다.” - 리나 베스테르고르(Linda Vestergaard), 로슈 덴마크 인사 담당 간부.

우리나라 기업들은 회사 내부의 복지나 대우에 대해서는 고민하지만 직원 개개인이 일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면서 겪는 스트레스까지 해결할 생각은 아직 못 하고 있다.

“덴마크는 불평등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공립학교에 보내는 것은 무료지만 사립학교는 돈을 내야 합니다. 그런데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부모가 자식을 사립학교에 보내고 싶으면 학비를 정부에서 대줍니다.” - 안야 기엘스트루프 켸르(Anja Gjelstrup Kjaer), 로슈 덴마크 홍보 담당.

“행복한 지 아닌지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나요?”
“아침에 출근할 때 내 발걸음이 가벼운지, 회사로 향하는 마음이 즐거운지가 척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출근길에 ‘빨리 가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느냐가 중요합니다. 나는 이 회사에 출근하기 싫다고 느낄 때가 1년에 아주아주 적게 있습니다. 하하.”
- 리나 베스테르고르

덴마크가 행복지수 세계 1위의 나라가 된 것은 평직원을 직선으로 뽑아 이 사회에 보낼 정도로 일터에 ‘즐거운 주인의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 직장인들의 만족감이 높은 나라. 한 나라가 이 두 가지를 다 충족시킬 수 있을까?
그 비결은 유연안정성(flexicurity)이다. 유연성(fexibility)과 안전성(security)을 결합한 이 용어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성공한 덴마크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조어다. 기업에는 노동자의 채용과 해고에서 유연성을 보장하고, 동시에 노동자들에게는 안정된 소득과 고용을 보장한다는 뜻이다.

새해 계획을 세울 때 사업이 잘될 줄 알고 직원을 100명 더 채용했는데 그해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연말에 적자를 내서 50명을 해고해야 한다면 이때 경영자는 합법적으로 해고가 가능하고 노동자는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경영상의 이유가 아닌 차별에 의한 해고, 악의에 의한 해고는 금지된다. 임신, 출산, 종교, 정치적 견해에 의한 해고, 질병이나 휴가와 관련된 해고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노조 활동 방해를 목적으로 한 해고, 노조 간부에 대한 해고 등도 산업별 단체협약에 의해 금지된다.

“덴마크가 행복지수 조사에서 세계 1위인 이유 중 하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일정한 기본소득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덴마크인들은 밥벌이를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지 않아요.” - 하네 마르클룬(Hanne Marklund), 오르후스 지방정부 고용정책 담당.

“덴마크 직장인들은 방어적이지 않습니다. 지금의 내 직장을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능력과 실력을 키워서 더 좋은 곳을 찾아야겠다고 공세적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문화는 당연히 경영자들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사원들의 대우를 개선해서 떠나지 않게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하죠. 그러니 직장과 업무 환경을 개선하는 선순환 효과가 생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얀 헤넬리오위츠(Jan Hendeliowitz), 덴마크 고용부 장관의 정책 자문위원.

덴마크 농부들에게 “깨어 있으라, 공부하라”라고 외친 니콜라이 그룬트비(Nikolaj Grundtvig, 1783~1872)는 1872년에 89세를 일기로 죽었지만 그의 교육철학을 따라 공부한 농부들과 그 자녀들은 이후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노동자가 되어 ‘조직된 힘’으로 거듭났다.

변호사라면 사회적 지위나 수입이 꽤 만족스러울 텐데 왜 협동조합에 그토록 오랫동안 열정을 쏟아온 것일까? 답은 간단했다.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으니까요.”
“아메리칸드림은 자신과 가족이 잘되기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춰져있죠. 그러나 데니시드림은 거기에 그치지 않아요. 자기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로 이어집니다.”
- 에리크 크리스티안센, 변호사, 에너지 관련 소기업 사장.

‘여기 예딩에서 덴마크 최초의 낙농 협동조합이 세워졌다. 이곳 농부들의 협동으로 번영의 기초를 닦았다. 덴마크를 위해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여러 사람이 함께 이루어냈다.’

월급의 80퍼센트를 마을 공동체에 내고, 개인이 쓸 수 있는 돈은 나머지 20퍼센틉뿐이라면 당신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누구인지 궁금하다면 구글 지도에서 이 주소(Svanholm Alle 2, 4050 Skibby, Denmark)를 검색해보라. 푸른 나무숲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 보일 것이다. 3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로 이뤄진 이곳이 바로 지난 35년간 경제‧생태 공동체를 실험해오고 있는 스반홀름(Svanholm) 마을이다.

“덴마크 사람들은 대부분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적어도 생활고 때문에, 경제적 생존 문제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지는 않죠. 그런 문제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은 하느님께 더 의지하게 됩니다. 교회에 사람들이 몰린다는 것은 불행한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일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덴마크의 낮은 예배 출석률과 높은 행복지수는 일정하게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페데르 P. 튀센(Peder P. Thyssen), 목사.

일반 공립학교, 혁신형 공립학교, 자유학교, 사립학교 들은 서로 운영 방식이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다.
첫째, 학교는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학생 스스로 찾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둘째, 개인의 성적이나 발전보다 협동을 중시한다.
셋째,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와 교장 중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학교 운영의 주인이 된다.
넷째, 학생들이 여유 있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인생을 자유롭고 즐겁게 사는 법을 배운다.
다섯째,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사회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걱정이나 불안감 없이 안정되어 있다.

덴마크에는 성적 우수상이 아예 없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여러 가지 능력 중 하나이기 때문에 특별히 따로 상을 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교사의 애정이 학생들에게 골고루 나뉘어 모든 아이가 저마다의 장점을 칭찬받을 수 있다.

“물론 어느 방면에서든 다른 학생들보다 뛰어난 학생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그 학생에게 ‘네가 최고다’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다른 친구를 좀 도와주렴.’ 이렇게 하죠.” - 헨리크 카를센(Henrik Carlsen), 외레스타드 스콜레(ørestad skole)교장.

덴마크인들은 오늘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들이 추구하는 혁신은 아주 새로운 무엇이 아니다. 오랫동안 소중하게 생각한 가치를 다시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면서 주인의식과 자존감을 심어주는 것, 더불어 소통하고 연대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중심에 있다.

“행복은 ‘have to(~해야 한다)’에서 나오지 않아요. ‘like to(~를 좋아하다)’에서 나오죠. 의무적으로 뭔가를 해야 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고 있어요.”
“덴마크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싸우지 않고 토론을 합니다. 그래서 실현 가능한 해법을 찾아내죠.”
- 마스 뤼킨에릭센, 뢰딩 호이스콜레 교장.

그룬투비는 이웃 사랑이 평등사회 구현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봤다. “부자가 적고 가난한 자는 더 적을 때, 우리 사회는 풍요로워진다”라는 그의 말에서 이런 믿음을 엿볼 수 있다. 덴마크 사회복지 시스템은 그러한 형제애와 평등의 가치 위에서 이뤄졌다.

핵심은 새로운 사회, 새로운 나라 만들기를 위한 나의 일을 찾는 것이다. 가슴 뛰는 일을 찾아 더불어 하는 것이다. 그룬트비는 농민들과 시민들에게 무조건 교육을 강조하며 깨어 있는 시민이 되라고 하지 않았다. 교육 방법은 일방향이 아니었다. 그는 농민과 시민이 스스로 문제 제기를 하고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또 더불어 즐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너와 내가 함께 우리의 문제를 토론하며 즐겁게 일하는 것이 바로 패전국 덴마크를 무흥시키고 오늘나의 행복사회를 만든 핵심이다.

“우리는 여야가 협력을 잘합니다. 그래서 법안의 85퍼센트 이상이 대다수 의원들의 찬성으로 통과됩니다. 당내에서 이견을 낼 수 있는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고 다른 당 사이의 입장 차이를 놓고 충분히 토론하되 막판에는 합의점을 찾아냅니다. 그래야 일이 된다는 사실을 서로가 잘 알기 때문이죠.” - 에위빈 베셀보(Eyvind Vesselbo), 벤스트레 정당 사회복지 분야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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