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간 국립국어원에 몸담았던 언어학자가 알려주는 '오류 없는 글쓰기'. 품격 있는 글쓰기.


블로그 글을 쓰거나 채팅을 할 때.
SNS에 포스팅하고, 댓글을 달 때.
20년 전만 해도 글을 쓰기보다 말할 일이 많았는데,
휴대폰이 나오고 문자로 소통을 시작한 이래로 글을 쓸 일이 많이 늘었다.
초등학교 때 받아쓰기는 제법 잘 하는 편이었는데,
어째 글이란 건 쓰면 쓸수록 어려운 것투성이다.
품격 있는 글쓰기.
다양한 기사 글을 예문으로 오류를 바로잡으며 설명한다.
틀렸다는 기사를 아무리 봐도 고칠 부분을 못 찾겠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저자가 고쳐놓은 글을 보면 글이 한결 눈에 잘 들어온다.
고수의 무공 비급을 주운 기분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비급도 익히지 않으면 소용없는 법.
주기적으로 들춰보고 참고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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띄어쓰기

첫째, 의존명사는 띄어써야 한다. 의존명사도 하나의 단어이기 때문이다. 의존명사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것, 바, 줄, 만큼, 따름, 뿐, 데' 따위는 의존명사이다.
둘째, 조시는 붙여써야 한다. 조사는 명사나 의존명사 뒤에 붙어 쓰인다. 조사는 단어기는 하지만 예외적으로 앞에 오는 명사나 의존명사에 붙여쓴다. '이,가,은,는,을,를,에,에게,로부터,까지,조차'같은 조사는 물론이고 '만큼, 밖에, 같이' 따위가 조사로 쓰일 때에 앞에 오는 말과 붙여써야 한다. 예컨대 '만큼'은 '일찍 일어나는 만큼 많이 일한다'와 같은 경우에는 의존명사이므로 앞에 오는 말과 띄어써야 하고, '나도 너만큼 키가 크다'와 같은 경우에는 조사이므로 앞에 오는 말과 붙여써야 한다.
셋째, 단어인지 구인지 잘 구별해서 단어이면 붙여쓰고, 구라면 단어와 단어 사이를 띄어써야 한다. 예컨대 '큰집에서 제사를 지낸다' 같은 경우에 '큰집'은 단어이므로 붙여서 쓴다. '대궐처럼 큰 집에서 살아보는 것이 꿈이다' 같은 경우에 '큰 집'은 구이므로 '큰'과 '집'을 띄어서 쓴다.
넷째, 의존명사와 어미를 구별해야 한다.

피동은 능동을 나타내는 동사에 접미사 '-이-','-히-','-리-','-기-'가 붙어서 표현되기도 하고 '지다'가 붙어서 표현되기도 하며 '되다', '당하다','받다'가 결합되어 피동을 나타낼 때도 있다.
피동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되는데 글을 쓸 때에 피동을 중복하는 경우가 빈버니 나타난다. 즉, 피동을 나타내는 접미사 '-이-'에 추가로 '-어지다'를 넣는 사례가 흔히 발견된다.

'-시키다'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사동의 뜻을 갖는 동사를 만드는 접미사다.

논설문은 주장을 펴기 위해서 쓴다. 주장을 선명하고 강하게 나타내기 위해 때로 격한 표현을 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쳐서 듣기 거북한 상스러운 표현까지 쓴다면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말은 끊임없이 변하는 특징이 있다. 있던 말이 쓰이지 않으면서 사어가 되고 없던 말이 새로 생긴다. 말은 고정불변이 아니다. 문제는 별로 필요하지도 않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도 못하는 말을 만들어서 쓰는 일이다. 말이란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두루 쓰지 않는 말을 쓰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외국어를 쓰지 말아야 할 가장 큰 이유는 독해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이란 소통을 목적으로 쓰는 것인데 낯설고 어려운 외국어를 씀으로써 소통에 방해가 된다면 글을 쓰는 보람이 없게 된다.
한편 외래어를 쓸 때에 외국 문자를 써서는 안됨을 읒지 말아야 한다.

문맥에 딱 들어맞는 단어를 쓰지 않았을 경우 독자는 의아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문맥에 딱 들어맞는 말을 썼을 때는 느끼지 않을 의아함, 당혹감, 어색함을 느끼게 된다.

문장 속에서 단어들은 따로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다른 말과 관계를 맺는다. 주어인 명사는 서술어인 동사와 관계를 맺고 타동사는 목적어인 명사와 관계를 맺는다. 그 밖에도 문장 속에서 단어와 단어가 관계를 맺는 일은 매우 다양하다. 단어와 단어가 맺어질 때 서로 잘 맞는 말이 있고 잘 맞지 않는 말이 있다. 잘 맞는 말끼리 연결되면 뜻이 선명하지만 맞지 않는 말끼리 연결되면 뜻이 모호해진다.

입으로 하는 말에서는 책이나 신문의 글과 달리 주어가 생략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대화체 말에서는 주어가 생략되더라도 생략된 주어가 무엇인지 뻔히 알기 때문에 주어를 생락하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그러나 글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글에서는 주어가 빠지면 즉각 '빠진 주어가 뭐지?' 하는 의문이 든다. 문맥을 통해 빠진 주어가 무엇인지 금세 알 수 있다면 글에서도 주어를 생략할 수 있다. 그런 경우가 아닌 한 글에서 주어를 빠뜨리는 것은 금물이다. 글의 뜻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어가 없는 문장이 비문버적인 문장, 즉 비문이듯이 서술어가 없는 문장도 당연히 비문이다.
서술어는 주어에 호응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부사어도 호응하는 서술어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부사어는 있는데 호응하는 서술어가 없는 문장이 있다. 이 역시 비문이다.

주어와 서술어는 어떤 문장에서든 반드시 필요하지만 목적어나 부사어는 모든 문장에 다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목적어나 부사어는 서술어에 따라 필요할 수도 있고 필요치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어떤 서술어가 목적어나 부사어를 필요로 하는데도 불구하고 목적어나 부사어가 없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필수적인 성분이 빠져 있기 때문에 비문법적인 문장이 된다.

조사는 문장 성분들 사이의 관계를 맺어 주는 기능을 한다. 조사가 제대로 사용되어야 문장 성분들의 관계가 잘 맺어진다. 문장의 주제를 나타내는 조사 '는'을 한 문장 안에 두 번 이상 쓰면 문장을 이해하기가 무척 힘들어진다. 다른 보조사도 마찬가지다.

접속을 할 때 중요한 점은 동질적인 것끼리 접속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명사구와 명사구가 접속되어야지 명사구와 동사구가 접속되어사는 안된다. 접속, 나열뿐 아니라 비교도 동질적인 것들끼리 이루어져야 한다.

문장이 문법적으로도 문제가 없고 의미도 불투명하지 않고 선명하지만 과장이 심하거나 억지가 들어 있다면 수긍하기가 어렵다. 논설문 중에는 그런 경우가 간혹 있다. 문장의 의미는 명료하지만 주장하는 바를 독자가 전혀 수긍하지 못한다면 글을 쓴 보람이 없다.

문장과 문장이 이어질 때 연결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왜 이 문장이 쓰였는지 이해되지 않는, 엉뚱한 문장이 와서는 안 된다. 모든 문장은 앞 문장과는 물론 그 다음 문장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돼야 한다. 건물의 계단이 차례대로 한계단씩 높아져야 하듯이 문장과 문장이 연결될 때 엉뚱한 문장이 와서도 안되고 뜻이 같은 말이 되풀이되어서도 안 된다. 앞뒤의 문장과 의미상 별 관련이 없는 문장이 끼어 있을 때 독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런', '그렇다면', '그런'과 같은 말은 앞에 나오는 어떤 말을 되받는 지시어다. 문장에서 집시어는 지시 대상이 무엇인지 명확할 때 써야 한다. 문제는 지시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데 지시어를 사용하는 경우다. 금방 지시어를 찾을 수 있을 때는 문제가 안 된다. 지시어를 씀으로써 앞의 말을 되풀이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다.
지시어 사용은 지시 대상이 쉽게 찾아질 경우에 한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가 글을 이해하는 데 불편을 준다.

어떤 글이든 그 글에 적합한 문체가 있기 마련이다. 일기는 일기에 맞는 문체가 있고 소설은 소설에 맞는 문체가 있다.

설명문이든 논설문이든 글에서는 정확한 사실관계가 기본이다. 사실관계가 어그러지면 아무리 문장이 문법적이고 의미가 뚜렷해도 소용이 없다.

줄임말

  • 어떻게 해 -> 어떡해
  • 안 된다고 해 -> 안 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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