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단편. 만필, 토마토 같은 사람 - 2011년 한국

비슷한 점이 많을수록 쉽게 공감대가 형성된다.
취미가 같은 사람,
취향이 같은 사람.
나는 그중에서도 식성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특히 반갑다.
“오! 저도 그걸 즐겨 먹어요!”
좋아하는 음식을 앞에 두고 나누는 대화는 더 즐거우니까.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지 않나?
잡식성인 내 주위의 사람은 잡식성이 대부분이다.
가리는 음식이 많은 사람과의 만남은 왠지 불편하므로.
보통 사람이 모이면 먹고 마시는데,
편식 인간과 함께하면 음식을 가려서 주문하게 되어 그렇다.
고등학생 시절 친구 중에 세상에 존재하는 음식 중 30% 정도만 먹을 수 있
던 심각한 편식 인간이 있었다.
“그걸 어떻게 먹어. 사람이 먹는 게 아니야.”
하지만 심한 편식을 하던 그 친구는,
잡식 무리와 어울린 지 십 년 만에 어지간한 음식은 다 먹는 잡식 인간으로
거듭났다.
초식, 육식, 잡식, 면식...
여러 식성 중에서 나는 잡식.
그중에서도 육식을 선호하는 잡식 인간이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채식을 선호하는 잡식으로 변하면서,
좋아하는 음식 군이 변하였다.
배가 고플 때.
피가 뚝뚝 흐르는 스테이크나 삼겹살 같은 육류가 생각났는데,
요즘은 버섯, 마늘, 가지 같은 채소류가 생각나는 거다.

라오스 비엥싸이-'토마토 같은 사람'

그 채소 중 우위를 차지하는 토마토.
토마토는 참 매력적이다.
고기는 빨갛고,
토마토도 빨갛다.
고기를 씹으면 육즙이 나오고,
토마토를 씹으면 과즙이 나온다.
고기는 익을수록 질겨지고,
토마토는 익을수록 부드러워진다.
익는다는 것을 사람에 빗대면 성숙해진다고 할 수 있다.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은 질기고 독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한다.
“그렇게 물러서 세상 어떻게 살라고 해?”
주변에 무른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조언을 하곤 하니까.
나도 아등바등 질기게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이젠 생명을 목표를 위해 ‘활용’하기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주먹 불끈 쥐고, 어깨와 목에 힘을 꽉 줄 필요가 없다.
살기 위해 긴장하고 질겨질 필요가 없으므로.
토마토처럼 부드럽게 살면 된다.
나는 토마토 같은 사람이 되리라.
빨간 토마토는 껍질을 벗겨도 빨갛듯.
겉과 속이 같은 사람.
익을수록 부드러워지는 사람.
생으로 먹어도 맛있고,
익혀 먹어도 한결 같이 맛있는 토마토처럼.
인생의 맛을 잃지 않는 사람.
따로 먹어도 좋고,
다른 음식과 곁들여도 좋은 토마토처럼.
조화로운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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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단편. 여행 만필, 얼마나 높은 산인가? - 2010년 태국.

도이인타논 국립공원-'얼마나 높은 산인가?'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냅다 달린다.
태국의 지붕이라 불리는 도이 인타논 국립공원.
아침부터 먼지를 뒤집어쓴다.
큰 트럭이 앞에 지나갈 때면,
더욱 괴롭다.
먼지도 많이 나고,
가끔은 커다란 바퀴에서 자갈이 튀어나오니까.
오토바이 운전 실력을 쌓아오길 잘했다.
단지 삼 일.
그동안에 제법 태국의 오토바이 문화에 익숙해졌으니까…
‘생각보다 가깝잖아?’
숙소에서 조금 일찍 나오긴 했지만,
오전 중에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할 줄은 몰랐다.
얼마 달린 것 같지도 않은데.
“자. 여기에 외국인이라고 표시하고 이름 쓰고 들어가요.”
국경일인가?
입장료도 받지 않고 들여 보내준다.
안내소에서 공원 지도를 받으니,
공원의 규모가 어렴풋이 짐작된다.
나는 지금 서울역에 도착 한 거고,
명동과 올림픽 공원.
거기에 여의도까지 하루 만에 다 돌기는 무리다.
지도에서 꼭 가고 싶은 한 곳 찍었다.
나머지는 시간이 남으면 들리기로 하고 출발이다.
목표 지점은 정상에 있는 산책 코스.
올라가는 길에 폭포 하나 구경하고,
마을에 들렀다.
마을 입구의 식당.
‘이렇게 먹는 거요. 뭐가 되었든 입으로 들어가는 거면 돼요.’
허공에 밥 퍼먹는 시늉을 하니,
뭔가 요리를 해서 주신다.
나도 밥을 먹고, 오토바이에게도 밥을 준다.
‘자~ 배 좀 채웠으니, 기분 좋게 출발!’
정상은 마을에서도 한참이다.

도이인타논 국립공원-'얼마나 높은 산인가?'

고도가 올라갈수록 날씨가 차가워진다.
정상에 오르니 손에 감각이 없다.
겉옷을 꺼내 입었지만, 장갑은 없었기에.
분명 아래 동네는 따뜻했는데,
위에 올라오니 찬바람이 쌩쌩 분다.
이 싸늘한 바람이 인간의 자존심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정도까지 다가오면,
따뜻하게 대하지만,
자존심을 뭉개고 넘어가려는 이에겐 찬바람을 뿜어 댄다.
낮은 언덕을 닮아 가자.
누가 밟고 넘어가더라도 따뜻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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