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을 떳떳하게 즐기는 법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충분히 쉬었다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나무는 때가 되면 저절로 꽃을 피운다.

그것이 순리다.


게으름을 떳떳하게 즐기는 법 (How to be Idle) - 책갈피


주일학교 설교에나 등장하는 인물 말고, 제 스스로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인간이 정말 몇이나 되는지 궁금하다.
- <게으르게 살아가면서(On being idle)>, 1889, 제롬 K(Jerome K.)

“일어날 만한 일이 있으면 그때 일어날게.”
- 존 무어(Jhon moore), 톰 호지킨슨의 친구

성경에 기록된 신의 목소리는, 계속 침대에 누워 있기만 한다면 그 대가로 가난하고 주리게 될 거라고 경고한다. 게으름은 죄이며 죄의 대가는 사망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는 잠에 대한 죄의식을 줄기차게 전파해 왔다.

수많은 남성용, 여성용 잡지들은 독자로 하여금 자기 신체에 대한 불만을 키우도록 만들어서 헬스클럽이라는 이름의 현대판 고문실로 보낸다. 우리들은 일터에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한 것도 모자라 새벽부터, 또는 밤늦도록 러닝머신 위에서 헉헉대며 달리는 것이다! 그것도 아까운 돈을 써 가면서 말이다.

8시까지 침대에서 빈둥거린다 한들 뭐가 문제가 되겠는가. 침대 곁의 탁자에 두었던 담배를 여유롭게 만끽하고, 이 닦으러 가기 전에 그날의 모든 문제들을 찬찬히 떠올리며 사색하는 일은 멋지지 않은가. 이렇게 편안한 상태에서 우리는 전날의 성과와 실수를 곰곰히 짚어보고, 그날의 일과 중에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려낼 수 있다. 9시 정각에 회사에 도착해서 노예 부리듯이 부하 직원을 감시하고 하릴없이 나머지 시간을 때우기보다는, 차라리 정각 10시에 도착해서 자기 시간의 주인이 되는 편이 낫다.
- <생활의 발견(The Importance of Living)>, 1938, 임어당

알람시계를 없애면서부터 삶이 극적으로 개선되었다. 알람시계가 없어도 사람은 대략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도록 스스로 습관을 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물론 일정한 시간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운 나쁜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렇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은 건강하지 못하고 부유하지 않으며 지혜롭지도 않다. 그들은 주로 병약하고 가난하며 어리석다. 오히려 그들은 늦게 일어나는 사람들 밑에서 일한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아침 8시와 9시 사이에 런던, 도쿄, 뉴욕 등 거대한 산업 국가들의 대도시 지하철을 방문해보라. 그곳에서 우리는 절망에 찌든 일그러진 얼굴들을 실컷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건강해 보이는가? 그렇지 않다. 부유해 보이는가? 물론 아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붐비는 전철 안에서 출근 지옥을 겪을 리가 없다. 사실 최저임금 노동자일수록 가장 이른 시간에 전철을 타는 경우가 많다. 과연 그들이 지혜로울까? 그런 식으로 출퇴근하며 숨 돌릴 겨를 없이 사는 판에 지혜를 논할 틈이 어디 있겠는가. 건강하고 부유하고 행복해지고 싶다면, 가장 먼저 당신의 알람시계를 내다버리는 것부터 시작하라!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는 특히 어린아이들을 겁주고 통제하는 데 몰두했다. 그는 “아이들의 의지를 일찌감치 꺾으라”고 말했으며 다음과 같은 훈육법을 주장했다.
“아이들에게는 한 살 때부터 회초리에 대한 공포와 얌전하게 우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 나이 때부터 지시받은 대로 행동하게 해야 한다⋯⋯ 버릇없이 굴면 사악한 악마가 기다리는 지옥 불꽃에 떨어진다는 무서운 이미지로 겁을 주어야 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어린아이의 상상 속으로 녹아들어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점잖고 순종적인 성품을 갖게 만든다.”

“고된 노동이 뭐 대단히 낭만적이고 훌륭하기라도 한 거라면, 그게 정말이라면, 웨스트민스터 공작 역시 그 잘난 정원을 손수 파서 일궈야 하지 않겠어? 안 그래?”
- 제프리 버너드(Jeffrey Bernard)

상품을 구입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을 벌려면 힘든 일을 해야 하고, 아니면 빚을 져야 한다.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빚을 지게 되고, 그 다음엔 빚을 갚기 위해 계속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현대판 머슴살이라 부를 만하다.

신문이란 본래 게으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한테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신문은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책을 제안하는 도구다. 그들이 제시하는 문제란 전쟁, 기아, 정치 부패, 기근, 스캔들, 절도, 유괴, 강간 따위 사건으로 매일 같이 지면에 게재된다. 즉 신문들이 하는 일이란 사람들에게 불안을 부추기는 것이다. 이러한 불안 요인에 대한 해결책은 사설과 특집 기사 형식으로 제시되는데, 물론 냉장고, 자동차, 의류, 섹스 테크닉, 경보 시스템, 대출 정보, 보험 정책, 그리고 음악, 영화, 도서 등의 크고 작은 문화 상품들에 대한 광고가 그런 해결책의 하나로 한몫을 한다. 결국 신문들이 제시하는 문제는 불안이요, 해결책은 돈이요, 방법은 일이라는 뜻이 된다.

우리가 아무 것도 원하는 게 없다면 일할 필요가 없다. 욕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러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태복음 6:28~29>

기존의 제도는 게으른 인구가 많아지는 걸 두려워하는 겁니다. 게으른 사람은 생각을 많이 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대부분의 사회 제도에 거부감을 갖거든요. 사고하는 자는 반항아가 되고, 그러므로 게으른 자는 곧 반항아라는 말이 성립되는 겁니다. 결국 현재는 우리 모두 매우 바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됏지요⋯⋯ 어떤 환경하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볼 겨를이 없다는 말입니다. 프로이드는 게으름뱅이들의 자기 성찰 태도를 가리켜 병적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이 불건전하고 왜곡돼 있으며 반사회적이고, 지나치게 예민해서 잠재적인 질병과도 같다고 진단한 거지요.
- 테렌스 맥케나(Terrence Mckenna)

강제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게으름뱅이들은 검은색 삼각형이 새겨진 옷(정치범은 붉은색, 여호와의 증인은 자주색, 범죄자는 초록생, 동성애자는 분홍색 삼각형이었다)을 입어야 했다. 히믈러는 일을 기피하는 것을 일종의 전염병으로 보았다. 그 병원균이 국가라는 한 유기체를 좀먹고, 나아가 나치가 꿈꾸는 완벽한 세계를 내부에서부터 파괴시킬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따라서 게으름꾼들은 그들 구미에 전혀 맞지 않았다.

“올해 나는 정신적인 면에서 큰 발전을 이뤘네. <데일리 텔레그래프(Daily Telegraph)> 신문을 9일간 읽지 않았던 데 그 모든 공을 돌리고 싶어.”
- 마르셀 테로(Marcel Theroux)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요, 뿐만 아니라 가장 지적인 일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선택받은 사람만의 몫이다.
- <예술 평론(The Critic as Artist)>,1890, 오스카 와일드

농땡이를 부리는 것은 학교와 일터에서 주입받는 무미건조한 생활 원리, 즉 ‘지금 고생하면 나중에 행복해진다’는 통념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발하는 행위다. 그들은 내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가장의 안정된 미래를 위해 즐거움을 늦춘다는 것은, 부르주아들이 생각해낸 얕은 속임수일 뿐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지금 닥친 순간을 붙들고 달아나버리는 것이다.

농땡이를 공식적으로 아주 당당하게 실행하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거의 잊혀진 ‘성 월요일(Saint Monday)’이 바로 그것이다. E.P.톰슨과 더글러스 레이드(Douglas Reid) 같은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성 월요일은 제도화된 농땡이 관습이었다. 이 관습은 17세기의 기록에서 처음 언급되었고, 18세기 내내 지속되다가 19세기부터 차차 사라지더니 산업화에 의해 완전히 소멸되고 말았다. 성 월요일이란 안식일이 월요일가지 연장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성 월요일은, 아픈 직원에게 회사가 선심 쓰듯 허용해주는 현대의 휴일 제도와는 다르다. 아래서부터 자발적으로 진행되었다는 데 핵심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즉 이 관습은 노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들이 주축이 되었으며, 고용주의 반대 의사를 거스르고 시행되는 경우도 많았다. 성 월요일이 그토록 오래 지속되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관습을 실천했던 사람들이 오늘날처럼 재산축적에 열망을 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생존에 필요한 만큼 이상으로는 돈 벌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것을 하고 싶어 못 견디게 하려면, 그 어떤 것이 아주 손에 넣기 어려운 것으로 보이도록 만들면 되는 것이다. 톰이 위대하고 현명한 철학자라면, 일이란 몸이 해야만 하는 어떤 것이요. 놀이란 몸이 안 해도 되는 것임을 오늘 깨달았을 것이다. 조화를 만들거나 방아를 돌리는 것은 일이고, 반면 볼링을 하거나 몽블랑 산에 오르는 것은 왜 놀이가 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 <톰 소여의 모험(The Adventures of Tom Sawyer)>, 1876, 마크 트웨인(Mark Twain)

“숙취가 온다는 건 당신이 아직 끝까지 간 게 아니라는 신호입니다. 우리는 곯아 떨어져 잠들 때까지 술을 마시곤 하죠. 그러고는 일어나서 지난 서른여섯 시간 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시를 쓰고, 곯아떨어지기 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띄엄띄엄 기억해내며 웃음보를 터뜨리곤 합니다. 사실 숙취란 음주 이후를 어떻게 계획하느냐에 달린 문제입니다. 일단 과음한 뒤에는 하루나 이틀 정도 완전히 일을 중단하고 휴식 시간을 가져야 해요”
- 키이스 알렌(Keith Allen)

“Travailler moins, produire plus.”
적게 일할수록 많이 생산하게 된다.

“다른 어떤 계기도 아니고, 오직 질병을 통해서만 깨닫고 배우고 낱낱히 분석할 수 있는 사실들이 있다. 매일 밤 침대에 들어가자마자 잠에 떨어지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곧장 일어나는 사람이라면, 결코 위와 같은 세밀한 궁리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위대한 발견은 고사하고, 잠에 관해 최소한의 관찰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당신의 몸은 당신 스스로 보살펴야 한다. 각종 법규와 노동조합이 방해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우리 길을 가야 한다.

시에스타는 완강하고 강제적이고 관습적이며 기계적인 모든 활동으로부터 벗어나 잠시 쉬어가는 갓길이다⋯⋯ 시에스타는 칼날처럼 예리한 통제의 범위를 벗어나,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시간을 주장할 수 있는 수단이다. 시에스타는 우리의 해방자다.
- 티에리 파코(Thierry Paquot)

“뭘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면, 낮잠을 잘 때가 된 것이다.”
- 메이슨 쿨리(Mason Clloey)

근로 문화가 한층 여유로웠던 1950년대 미국에서, 직장인들은 잠을 푹 자고 술도 마셔야 한다는 권고를 공식적으로 듣곤 했다. 이와 같은 건강 유지법에 사람들은 ‘냅 앤드 닙(nap and nip)’이라는 매력적인 이름을 붙였다.

산책에 실패하여 다시는 산책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그때가 바로 산책에 성공할 수 있을 때다. 왜냐하면 그때야 말로, 차분한 심정으로 언제나 열려 있는 자연의 가슴을 노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널> 핸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플라뇌르는 어슬렁거리는 사람, 또는 게으름뱅이라는 뜻으로 19세기 프랑스에서 유래되었다. 이 말은, 당시 파리의 상가를 천천히 걷고 구경하고 기다리기도 하며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내던 신사들의 우아한 걸음걸이를 가리켰다.

이제 막 외국에서 들어온 사람이 된 듯한 마음으로 집을 나서라. 그래야만 이미 살고 있던 세상에서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다. 싱가포르에서 배를 타고 막 도착한 것처럼, 당신 집 현관의 매트나 주변 사람들을 한 번도 본적이 없던 것처럼 하루를 시작하라⋯⋯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하던 휴머니티가 당신 앞에 새로 전개될 것이다.
- <아케이드> ,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입구에 걸려 있던 전설적인 글귀 ‘Arbeit Macht Frei’는, ‘노동이 우리를 자유케 한다’는 뜻이다.

다크 자마이칸 럼 1온스.
골드 바베이도스 럼 2온스.
화이트 푸에르토리칸 럼 1온스.
살구 브랜디 1온스.
파파야 넥타 3/4 온스.
무가당 파인애플 쥬스 3/4온스.
커다란 라임 1개 즙낸 것.
곱게 가루 낸 설탕 1티스푼.
- 1960년대 좀비(Zombie) 제조법

인간의 삶이란 헛될 뿐,
고통과 슬픔은 이미 예정돼 있는 것.
게다가 물거품처럼 덧없는 것.
인간의 삶이란 비지니스,
돈과 걱정,
그 위에 또 걱정과 돈과 문제거리들.
허나 우리는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아.
맑은 날이건 흐린 날이건
성내지도 않지.
온갖 슬픔은 떨쳐버리고,
밤을 새워 내일까지라도 노래 부르며
낚시하고 또 낚시할 뿐.
- 아이작 월튼(Izaak Walton)

게으름으로 가는 여정은 평생의 여정이라 할 수 있다. 그 여정이 언젠가 끝나게 돼 있고, 완전한 게으름이란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이 안고 있는 참으로 위대한 진리가 아닌가 한다.

담배는 아마 내 평생을 함께 할 친구가 될 것이다. 따라서 담배를 포기한다는 것은 사별의 아픔을 겪는 것이요, 주변 사람들이 내 잃어버리는 친구를 즐기는 광경을 지켜보아야 하므로 그 아픔은 두 배로 커질 것이다.

“이 습관은 눈에는 가증스럽고 코에는 혐오스러우며 뇌에 해롭고 폐에 위험하다. 악취 나는 불길한 연기는 끝도 없는 지옥의 구덩이에서 올라오는 그 끔찍한 연기와 곡 닮았다.”
- <담배에 대한 맹비난(A Counterblaste to Tobacco)>, 제임스 1세

담배는 평범한 일상의 어느 한 부분을 괄호로 묶어 특별한 시간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뿜고, 그 불씨를 가슴으로 빨아들이고 다시 내쉬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무언가를 초월한 듯한 느낌을 갖는다. 담배를 피우는 그 순간만큼은 정신이 고양되는 특별한 계기가 생기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우리 생각에는 변화가 찾아오고, 아주 잠깐이기는 해도 자기 자신을 떠나 무아지경에 빠지는 황홀경을 경험하게 된다.
- <담배는 숭고하다>, 리처드 클라인(Richard Klein)

나는 이성적인 사람을 좋아하지만 완벽한 합리성을 추구하는 존재들은 증오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재떨이가 없는 집안에 들어갈 때면 늘 겁을 먹고 마음을 놓지 못한다. 실내는 너무 깨끗하고 질서정연하며 쿠션들은 모두 제자리에 얌전하게 놓인 데다, 그런 집에 사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단정하고 냉철하다. 그래서 나도 실수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나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행동일 뿐이다.
- 임어당

사실 많은 시인들이 흡연가들의 오랜 난제, 즉 담배와 아내 사이의 갈등 때문에 고민했고, 대개는 담배를 선택하고 있다.

세상에 담배의 멍에를 기꺼이 참아줄 여자들은 많고 많으니,
여자는 그저 여자일 뿐, 그러나 좋은 시가는 꼭 피워서 연기를 마셔보아야 한다.
- 루디야드 키플링(Rudyard Kipling)

“대부분의 세상 문제거리들이란 너무 바쁜 사람들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가와 과학자들이 조금만 더 게으르다면 우리 모두 얼마나 더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 이블린 워(Evelyn Waugh)

인테리어의 진정한 목적이란 자기 집을 꾸미는 일에 열중하도록 만드는 게 아니라, 바깥세상으로부터 벗어난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게으름꾼들이 자신의 내면세계에 집중함으로써, 바깥세상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과도 같은 원리다.

사람이 거주하는 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려함이 아니라 세련됨이며, 졍교한 장식이 아니라 고상함과 우아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부유함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과시하는 걸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독창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즉 무언가를 새로 생각해 내는 능력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려한 외양에만 집착하려 드는 것이다.
- <생활의 예술(The Art of Living>, 리 리원(Li Liwen)

반란을 일으키는 건 확실히 즐거운 자유정신의 표현이기는 하지만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지난 1,000년간 인간적인 법 제정을 위해, 또는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벌였던 혁명, 폭동, 반란들을 되짚어보면, 안타까운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변화를 가하자면 차라리 자기 자신과 아주 가까운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이다.

‘담화(談話, speaking)’와 ‘설화(說話, conversation)’ 후자가 말을 더 많이 하고 여유로우며 화제도 한층 사소하고 비지니스와는 동떨어진 것들이다.
- 임어당

“그가 사람들과 옥신각신 한다는 것은, 그 사람들을 말씨름을 벌일 수 있는 존재, 즉 존슨과 대등한 입장으로 보았다는 증거다. 존슨의 막무가내 식 대화 태도는, 축구처럼 양자가 평등한 입장에서 싸움을 벌인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 G. K. 체스터톤

지혜롭고 유쾌하게 대화를 이끌어 갈 줄 아는 사람이 너무나 드문 이유는, 사람들 대부분이 상대방이 한 말에 명확한 답변을 해주려고 고민하기보다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에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이제 사려 깊은 답변을 듣기란 너무나 어려워졌다. 대화중인 사람들의 눈을 들여다보면, 상대가 말하는 내용에는 점차 관심이 멀어지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화제로 돌아가고 싶어 초조해하는 걸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자기만을 만족시키려 한다면 결국 타인을 만족시키거나 설득하지 못하게 된다. 잘 듣고 요점에 맞게 대답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완벽한 대화의 자질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금언>, 라 로슈푸코(La Rochefoucald)

H. D. 소로우(Thoreau)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기란 무척 쉽다. 우리 스스로 자신을 위한 일련의 행동 규칙을 만든 다음, 그것들을 실천하지 못할 때만 죄책감을 느끼면 된다.

칠아웃(Chill-Out) 문화도, 사실 명상을 위주로 하는 것이었다. 레이브 주최자들이 춤에 지친 사람들한테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면서 칠아웃은 시작되었다. 참가자들은 편안하게 앉아 잔잔한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광적인 무아지경 상태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날에는 일을 하기가 무척 힘들어진다. 쉽게 짜증이 나고 비이성적이 되며 사람들과 자주 언쟁을 벌이게 되기 때문이다.

일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요즘 일을 전부로 여기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 외의 것에는 아무 관심도 두려 하지 않는다.
- 조지 기싱(George Gissing)

고대 이집트에서는 대중에 널리 퍼진 속설에 따라, 1년에 5분의 1은 일하는 걸 금지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1년에 축제일이 50~60일이나 되었고, 그리스의 도시 국가 타렌툼은 전성기 때 축제일이 근무일 수보다도 많았다. 고대 로마력을 보면 명목상 종교적인 이유를 들어 재관이나 공공 업무가 시행되지 않는 날이 108일이나 되었고, 율리우스 력에서는 그 숫자가 훨씬 많았다.
- <영국인의 휴일(The Englishman’s Holiday>, J. A. R. 핌로트(Pimlott)

꿈을 부정하는 현실 속에서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루는 작은 세계에만 관여할 뿐, 그 밖의 분야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입을 다문다. 정신세계는 정신 분석가가, 중부라는 세계는 정치인들이, 음식의 세계는 슈퍼마켓과 그곳의 점원들과 요리사들이 전담한다. 커다란 하나의 세계는 수백만 개의 작은 세계들로 갈라지고, 그것들은 서로 경쟁을 벌인다. 그 결과 인간은 절망과 어리석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불행을 겪고 있다. 누군가가 지정해준 룰을 따라가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청한다. 그것이 소용이 없으면 또 다른 사람한테 돈을 지불하고 다시 도움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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