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으로 유학을 배우고 공자를 알자.

‘공자’라는 이름에 나는 왠지 뻣뻣함이 생각나고 불편하고 고리타분하다. 그냥 느낌으로 그렇다. <대학‧논어‧맹자‧중용> 겨우 이 네 권의 책을 안 읽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불편하다. 어쩌면 공자는 괜한 오해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네 권 정도는 읽어야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넘겨짚음이 아니라 의견이 생긴다. 봉황을 한번 본 적도 없으면서 피닉스랑 닮았네 사실은 토루코막토보다 약하네 해봤자 그냥 헛소리다. 천천히 네 권을 읽고 공자가 어떤 사람인지 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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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도 이와 같은 뜻이다. 자신의 ‘밝은 덕을 밝혀 홀로 자신만 선하게 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다른 사람의 ‘밝은 덕’도 밝혀 줌으로써 천하와 함께 선을 하는 데로 나아감을 말한다. 이것은 대중‧민중을 교화시켜 나감을 의미한다.
유교가 종교인가 치세(治世)의 경륜인가 하는 문제는 우선 덮어 두기로 하자. 모든 종교는 자체의 주장에 따라 대중을 교화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음이 사실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행(火行)이나 기독교의 전도가 모두 그것이요, 여기서 말하는 ‘신민’도 같은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지선’은 칸트의 유명한 명제 “네 마음 속의 도덕률이 언제나 보편적 입법 원리로 적용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는 것과 같은 내용이라고 보아도 좋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절실한 문제이지 결코 잡기 어려운 먼 이상으로 떠 있는 것이 아니다.
‘명명덕’‧‘신민’에서 나와 너의 ‘밝은 덕’을 최대한으로 보전하고 고양시켜서 그 환한 덕성에 의해 서로의 관계를 이루어 나가고 온갖 사물에 대처해 감이 ‘지지선’이다.

사물이 구명된 뒤에야 앎이 투철해지고, 앎이 투철해진 뒤에야 뜻이 성실하게 되고, 뜻이 성실하게 된 뒤에야 마음이 발라지고,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야 몸이 닦이고, 몸이 닦아지고 난 뒤에야 집안이 바로 잡히고, 집안이 바로잡히고 난 뒤에야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지고 난 뒤에야 천하가 화평하게 된다.
(격물치지 성의정심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格物致知 誠意正心 修身齊家 治國平天下)

청송((聽訟)은 오늘날의 재판관이 하는 일로 ⟪주례周禮⟫에 의하면 당시 소사구(小司寇)가 이 일을 맡았다. ‘오청(五淸)’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악했다고 하는데, 그 오청이 재미있다.
첫째는 사청(辭聽), 소송 당사자들의 진술 태도를 살펴보면 정직하지 못할 경우 말이 수다스럽다고 한다. 둘째는 색청(色聽), 얼굴 색을 살펴보면 정직하지 못할 경우 얼굴이 빨개진다는 것이다. 셋째는 기청(氣聽), 숨쉬는 것을 살펴보면 정직하지 못할 경우 숨소리가 헐떡거린다는 것이다. 넷째는 이청(耳聽), 말을 듣는 태도를 살펴보면 정직하지 못할 경우 헛갈리게 듣는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목청(目聽), 눈동자를 살펴보면 정직하지 못할 경우 동자가 맑지 못하다는 것이다.

자기가 진실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진실로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남의 이목 때문에 혹은 외부의 어떤 것에 따라 구차스럽게 좋아하고 미워한다면 그것은 위선이요 사(邪)다. 그만큼 ‘자기 쾌족’은 선‧악‧사‧정을 제대로 판단하고 선택하여, 진실한 마음으로 그 길로 나아가는 자기를 전제로 하고서야 얻을 수 있는 경지이다. 끝까지 진실한 마음을 잃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길로 나아갈 때 비로소 마음이 발라지고 몸이 닦이는 것이다.

부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한다. 마음이 넓어지면 몸도 편안하나니,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뜻을 참되게 한다.

몸을 닦음이 마음을 바르게 함에 달렸다는 것은 마음에 노여워 하는 바가 있으면 바르게 할 수 없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바르게 할 수 없고, 좋아하는 바가 있으면 바르게 할 수 없고, 걱정하는 바가 있으면 바르게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마음이 있지 않으면 살펴도 보이지 않고, 귀 기울여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맛을 알지 못하니, 이를 두고 ‘몸을 닦음이 마음을 바르게 함에 달렸다’고 한다.

⟪강고⟫에 “갓난아기 돌보듯 하라”고 했다. 마음으로 정성껏 구하기만 하면 비록 딱 들어맞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멀리 벗아나지는 않으리니, 어린애 기르기를 배우고 난 뒤에야 시집갔다는 사람 아직은 없다.

‘서’는 ‘자신의 경우를 미루어 남에게 미치게 함 (추기급인推己及人)’이다. 세속적인 의미의 용서의 뜻도 여기서 나왔지만 ‘서는 그렇게 단순한 내용으로 받아들여질 성질은 아니다. ‘서恕’라는 글자의 본뜻은 ‘여심如心’이다. 자신을 다루는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남을 다루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늙은이를 늙은이로 섬김은 ‘효’요, 어른을 어른으로 받듦은 ‘제’요, 외로운 이들을 불쌍히 여겨 잘 보살핌은 ‘자’이다.

주희의 설을 따르면 ‘혈(絜)’은 ‘헤아리다’는 뜻이요, ‘구(矩)’는 네모난 물건을 만들 때 쓰는 곱자(曲尺)다. ⟪순자荀子⟫에 “다섯 치 짜리 곱자로 천하의 네모난 것을 다한다”고 했다. 여기서 혈구지도 ‘絜矩之道’는 자신의 마음을 잣대로 삼아 남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비유로 쓰였다.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서 남의 마음을 헤아려 가면 그가 바라는 것과 꺼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 그것은 마치 곱자를 가지고 모난 것을 재거나 마르면 천하에 재어지지 않거나 마르지 못할 것이 없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앞에서는 상행하효(上行下效)를 설명했고 ‘혈구’에 와서는 정사에 관련시켜 말했다. 착한 마음(善心)을 불러일으키기만 하고 그 마음을 실천할 수 있게 해주지 못하면 비록 착한 마음이 일어날 수 있다 해도 헛될 뿐이다. 가령 정치가 번잡하고 세금이 무거워서 부모를 봉양하고 처자를 돌볼 수 없다면 어떻게 그 착한 마음을 실천할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자신으 마음을 미루어 저들|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저들이 우러러선 부모를 섬기기에 넉넉하고 굽어선 처자를 돌보기에 충분하게 해주어야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 사람들을 감화시켜 분발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성인의 교화이고, 그 분발한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하는 것은 성인의 정사이다.
구(矩)는 마음이다. 내 마음이 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다른 사람이 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효’‧‘제’‧‘자’를 하고 싶으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도 다 나와 똑같이 ‘효’‧‘제’‧‘자’를 할 수 있게 해주어서, 제 하고 싶은 것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해야만 비로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 혼자만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할 수 없으면, 이것이 바로 불평(不平)이다.” ⟪朱子語類‧대학⟫
요컨대 ‘혈구지도’는 백성들에게 ‘효’‧‘제’‧‘자’를 할 마음이 일어나게 한 뒤에 그 일어난 마음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도록 베푸는 정사의 문제란 말이다.

재화가 모이면 민심은 흩어지고, 재화가 흩어지면 민심은 모인다. 그러므로 패역(悖逆)하게 나간 말은 패역한 말로 돌아오고, 패역하게 들어온 재화는 역시 패역하게 나간다.

그래서 다스리는 지위에 있는 이에게는 대도(大道)가 있나니, 반드시 충신해야 얻고 교만하면 잃는다.
재물을 불어나게 하는 데에는 대방(大方)이 있나니, 생산하는 사람은 많고 그저 먹는 자가 적으며, 만드는 사람은 부지런히 하고 소비하는 자는 천천히 하면 재물은 항상 풍족하게 된다.

주희는 ‘충’은 ‘스스로의 내부에서 움직여 자신의 마음을 다하는 것(발기자진 發己自盡)’이고, ‘신’은 ‘사물의 이치와 도리에 순응하여 위배되지 않는 것 (순물무위 循物無違)’이라고 정의 했다. 그리고 ‘충’은 ‘신의 바탕 信之本’이요 ‘신’은 ‘충의 드러남 忠之發’이라고 했다. 또 ‘충’과 ‘신’ 두 개념을 결합하여 ‘충신’이란 “자신의 마음을 다해 사물의 이치와 도리에 위배되지 않음”이라고도 정의 했다.

인자는 재화로 몸을 일으키고 불인한 자는 몸으로 재화를 일으킨다.
윗사람이 인을 좋아하는데도 아랫사람들이 의를 좋아하지 않는 일이란 없는 법이다. 아랫사람들이 의를 좋아하고서 윗사람이 꾀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못한 적은 아직 없었으며 곳간의 재화가 그의 재화가 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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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방랑자의 이야기.
    월풍도원에선 기부를 받습니다.

바른 자세로 앉으면 삶이 바뀐다?! 앉는 자세 3cm로 내 몸이 확 바뀐다.

온종일 앉아서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 눈도 아프지만 어깨가 왜 이리 결리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어깨. 너는 이미 죽어 다.’ 이런 최면을 걸어도 왜 이리 통증이 오는지. 뭔가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 책을 발견했다. 만화책처럼 대사는 별로 없고 그림이 그려진 책이라 한두 시간이면 충분히 읽는 책이지만 이 책에 나온 내용대로 자세를 바꿔보니 확실히 효과가 좋다. 우선 이 책과 별 상관은 없지만 이 책을 읽고 십여 년간 의문을 품어온 ‘더 킹오브 파이터즈의 이오리가 정신이 나갔나? 왜 다리에 끈을 묶고 다니나?’라는 의문이 어느 정도 풀렸다.이오리는 자세를 교정하고 싶었던 거다. 왜 쿄는 염색도 안 하고 평범한데 주인공이고, 이오리는 머리도 빨갛게 물들이고 튈라고 애쓰는데 주인공이 못 된건가 난 ‘이오리가 쿄보다 난 거 같은데 왜 그러지? 이름이 너무 긴가?’ 별 시답잖은 고민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내게는 꽤 큰 충격이다. (사실 더 킹오브 파이터즈는 별 관심 없고 던전앤드래곤즈에 열중했다.) 아무튼 이오리 하면 빨간 리와 끈인데, 이번에 ‘앉는 자세 3cm로 내 몸이 확 바뀐다.’를 읽고 이오리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밤에 잘 때 다리에 끈을 묶고 자고, 앉아 있을 때도 다리가 지나치게 벌어지지 않도록 다리에 끊을 묶었더니 어깨가 한결 편해졌다. 자세 교정에 분명히 효과가 있다.
맨날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느라 머리 어깨 발 무릎 발 어깨 허리가 아프다면, 밥 먹고 간식으로 호떡 사 먹을 시간에 잠깐 시간을 내서 이 책을 보는 게 큰 도음이 된다. 이 책을 보고선 잘 때 끈으로 다리를 묶고 자는데, 아침이 전보다 개운하다. 야가미 이오리가 왜 다리에 끈을 달고 다니는지 알겠다.

앉는 자세 3cm로 내 몸이 확 바뀐다. - 책갈피

바른 자세로 앉는 법

궁둥뼈의 앞부분으로 몸무게를 떠받치는 것이 바른 자세로 앉는 법의 핵심이다.
1. 의자 앞쪽에 손을 짚고 발에 몸무게를 싣고 궁둥뼈를 조금 띄워서 3cm 뒤로 당긴다.
2. 허리를 펴고 그 상태를 유지하면서 상체를 일으킨다.
3. 앉을 때 발은 무릎 아래에 수직으로 놓는다.
4. 남성과 여성은 골반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남성은 어깨너비 정도, 여성은 주먹 하나 만큼 무릎을 벌렸을 때 엉덩관절이 가장 안정된다.

바닥에 앉을 때

무릎을 꿇고 단정하게 앉는다.
평소 바닥에 앉는 자세보다 궁둥뼈를 뒤로 3cm 당기고 넓적다리 전체로 몸무게를 떠받치는 것이 좋다.
궁둥뼈를 무릎보다 높은 위치에 두면 허리가 구부정해지지 않는다.

책상에 앉을 때

팔꿈치를 책상에 올릴 때는 팔을 어깨보다 넓게 벌리지 않아야 자세가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오래 앉아 있어서 다리가 부을 때는 발끝으로 바닥을 누르고 발꿈치를 위로 들어 올린다.

컴퓨터를 할 때 바른 자세

  1. 컴퓨터는 몸의 정면에 설치한다.
  2. 손목이 팔꿈치보다 밑으로 오는 위치에 키보드를 높는다.
  3. 모니터 화면은 시선보다 비스듬히 낮은 위치가 좋다.
  4. 때때로 몸의 무게 중심을 점검한다.

바르게 앉는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4가지

  • 허리를 뒤로 젖히지 않았는가?
    • 궁둥뼈 3cm 자세는 ‘엉덩이를 3cm 뒤로 내미는 자세’도 아니거니와 가슴을 펴고 허리를 앞으로 내미는 자세도 아니다.
  • 머리 위치는 올바른가?
    • 궁둥뼈 3cm 자세로 앉았을 때 목이나 어깨 주변이 불편하다면 고개를 숙여서 머리 위치를 앞뒤로 조금 움직여본다.
    • 머리가 지나치게 뒤로 기울면 고개를 숙여도 턱이 갑갑하고 목덜미가 거의 펴지지 않는다. 반대로 고꾸라질 듯 앞으로 기울어 있으면 머리가 무겁게 느껴지고 목덜미가 세게 당긴다.
  • 넓적다리 안쪽은 펴져 있는가?
    • 지금까지 넓적다리 안쪽이 움츠러든 상태로 앉던 사람일수록 바른 자세로 앉았을 때 넓적다리 안쪽이 펴지는 감각을 맛볼 수 있다.
  • 허리 근육은 부드러운가?
    • 허리 부근에 엄지손가락을 깊숙히 넣는다.
    • 상체를 앞뒤로 움직여서 근육이 가장 부드러워지는 자리를 찾는다.

바르게 걷는 법

발꿈치로 딛고 엄지발가락으로 차올리고 뒷무릎을 편다.

무게 중심이 바깥으로 쏠렸는지 점검 방법

  • 신발 뒤축이 바깥쪽부터 닳는다.
  • 둘째 발가락이나 가운데 발가락 아래쪽에 티눈이나 굳은살이 생긴다.
  • 새끼발가락 아래쪽에 티눈이나 굳은살이 생긴다.
  • 어깨에 멘 가방이 양옆으로 흔들린다.

휜 다리 교정 운동

  • 궁둥뼈 3cm 자세로 앉은 다음 넓적다리 바깥쪽에 툭 튀어나온 커다란 돌기(큰돌기)를 손바닥으로 감싸듯 쥔다. 손가락으로 꼭 붙잡고 그대로 뒤쪽 45도 각도 위 방향(팔꿈치와 같은 방향)으로 약 3cm 잡아당긴다. 양쪽을 번갈아 한다.
  • 남자는 어깨너비, 여자는 주먹 하나 크기만큼 무릎을 벌린다. 그 이상으로 벌어지지 않도록 수건 등으로 무릎을 고정해 놓는다.
  • 신발이나 받침대로 무릎 높이를 조정한다.
  • 잘 때 넓적다리 위쪽, 무릎 위쪽, 무릎 아래쪽 이렇게 세 군데를 묶되 오목하게 올라온 무릎뼈가 있는 부분은 피해서 묶는다.
  • 다리를 묶고 앉았다가 일어난다.
  • 바닥에 수건이나 천을 펼쳐놓고 한쪽 구석에 맨발로 올라선다. 발꿈치를 수건 구석에 고정한 채로 발가닥으로 수건을 발바닥 한가운데로 그러모은다.

아랫배 단련 운동

  1. 엉덩이와 허리 근육을 단련하는 방법
    • 궁둥뼈 3cm 자세를 유지하면서 손으로 의자 밑을 잡고 팔꿈치를 뻗어서 의자를 들어 올리듯 힘을 넣는다.
    • 머리 위치를 유지한 채 아랫배에 힘을 주어 배꼼을 척추에 가까이 가져가고, 척추를 의자의 등받이에 가까이 댄다. 동시에 항문에 힘을 주고 항문을 앞으로 비스듬히 들어 올린다.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10초 동안 자세를 유지한다. 여러 번 반복한다.
  2. 배 근육을 단련하는 방법
    • 궁둥뼈 3cm 자세로 앉아서 자연스러운 호흡을 유지하면서 배꼽을 척추 쪽으로 당겼다가 다시 1cm 정도 들어 올린다.
    • 그 위치를 유지하면서 천장으로 머리를 잡아당긴다는 생각으로 5회 심호흡을 한다. 이때 배꼽 위치를 움직이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 틈틈이 실천한다.

쉽게 할 수 있는 어깨뼈 운동

  • 궁둥뼈 3cm 자세로 앉은 다음 어깨뼈를 척추 쪽으로 3cm 끌어당긴다.
  • 어깨뼈를 으쓱으쓱 하듯이 위아래로 움직인다.
  • 궁둥뼈 3cm 기본자세로 의자에 앝게 앉아서 몸을 정면을 향한 채 의자 등받이를 짚고 팔꿈치를 직각으로 구부린다. 여유가 된다면 그 상태에서 팔꿈치를 돌려보자.

꼼지락 체조

밀어내기 (뇌척수액 순환을 좋게 한다.)

침대 위에 똑바로 누워서 온몸의 긴장을 푼다. 엉덩뼈를 손바닥으로 감싸고 아주 살짝 1cm 정도 두덩뼈 쪽으로 민다. 힘을 너무 많이 주면 엉치엉덩관절이 자물쇠를 채운 것처럼 옴짝달싹 못해서 운동 효과가 없으므로 두부를 손으로 쥐었을 때 으깨지지 않을 만큼의 힘만 준다.
이때 몸에서 힘을 뺀 상태를 유지하면서 발꿈치 양쪽을 번갈아 2cm 정도 밀어낸다. 발꿈치를 직각으로 밀어낼 필요는 없으며 어디까지나 편안한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5~10회 반복한다. 무심코 발꿈치를 크게 내밀기 쉬운데 그러면 허리 전체가 움직여서 엉치엉덩관절에 자극이 가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아주 조금만, 말 그대로 꼼지락꼼지락 움직인다.

턱 내밀기 (머리뼈와 척주 사이의 뇌척수액 흐름을 개선한다.)

귓바퀴 뒤쪽에서 바로 아래로 뻗은 관자뼈 돌기인 꼭지돌기 밑에 손가락 끝을 대고, 손바닥 전체로 아래턱을 감싼다. 그대로 천천히 턱을 3~4cm 들어올린다.

와이퍼 운동 (뇌척수액을 생산한다.)

침대에 똑바로 누워서 엉덩뼈를 손바닥으로 살짝 감싸고 두 발을 동시에 양옆으로 움직인다. 요컨대 자동차 와이퍼처럼 움직이면 된다. 힘을 주지 않고 편안하게 발을 움직일 수 있는 범위에서 움직인다. 억지로 힘을 줘서 크게 움직이면 효과가 없다.

순서

밀어내기 ➔ 턱 내밀기 ➔ 밀어내기 ➔ 와이퍼 운동 ➔ 밀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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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방랑자의 이야기.
    월풍도원에선 기부를 받습니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남긴 최후의 메시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지난 몇 년간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 중에서 가장 씁쓸하고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별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부분 즉 인간의 그림자를 똑바로 봐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 나온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은 환경에 처한다면 과연 나는 어떤 행동을 할까? 살아남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 적과 타협할 수 있을까? 적과 타협하고 나 자신과도 타협하여 살아남았다면, 그 삶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울까?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두렵고 손이 떨린다.
누군가 지독한 공포를 담은 이야기를 써 나간다 해도 이런 참혹한 현실보다 무서울까? 더 무서운 건 이런 잔혹한 이야기가 픽션이 아닌 현실에서 르완다 학살, 천안문 사태, 킬링필드 등이 끊임없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무자비하고 무분별한 폭력 앞에서 나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책갈피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은 그 자체로 트라우마다. 트라우마를 회상하는 일은 고통스럽고 적어도 피해자의 마음을 심란케 하기 때문이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고통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그 기억을 지우려는 경향이 있다. 상처를 준 사람은 그 기억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신의 죄의식을 덜기 위해 마음 깊숙히 그 기억을 몰아내버린다.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다른 사람들(내 상관들)은 나보다 더 나쁜 일을 저질렀다. 내가 받아온 교육과 살아온 환경을 감안했을 때 나는 다르게 행동할 수 없었다. 내가 하지 않았다면 내 대신 다른 사람이 더욱 엄하게 했을 것이다. 등과 같은 답변이다. 이러한 변명을 읽는 사람이 맨 처음 보이는 반응은 몸서리나는 혐오감이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믿어줄 거라고 생각할 수 없다. 자신들이 야기한 죽음과 고통의 어마어마함과 늘어놓는 변명 사이의 불균형을 못 볼리 없다. 그렇다. 그들은 속이는 줄 알면서 속이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악의적이다.

정신적인 명료함은 소수의 것이다. 또한 그 소수조차도 어떤 이유에서든지 간에 과거나 현재의 현실이 그들 마음속에 불안이나 불편함을 불러일으킬 때에는 즉시 그 명료함을 잃게 된다. 선의와 악의의 구별은 바로 이러한 정신적 명료함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데 익숙한 자는 결국 사적인 자리에서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한테도 거짓말을 하게 된다. 자신을 평안하게 살도록 해주는 편리한 진실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특정한 행위를 저지른 사실이나 또는 그 행위가 저질러졌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란 어렵다. 반면에 우리를 어떤 행위로 이끈 동기들과 행위 자체에 수반하는 우리 안의 열정을 바꾸는 것은 매우 쉽다. 이것은 아주 약한 힘에도 변형되기 쉬운 지극히 유동적인 물질이다. “왜 그랬나?” 또는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라는 질문들에 믿을 만한 대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정신 상태는 애초에 불안정한 것이고, 그 기억은 훨씬 더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부담스런 기억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아예 기억의 진입을 저지하는 것, 즉, 경게를 따라 방역선(防疫線)을 치는 것이다. 기억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기억이 기록된 뒤에 그로부터 해방되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보통 ‘이해하다’의 의미는 ‘단순화시키다’라는 말과 일치한다. 심오한 단순화 과정이 없다면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정의할 수 없고 끝도 없이 얽히고설킨 실타래와 같을 것이다. 이는 곧 우리의 방향설정 능력과 행동결정 능력을 위협할 것이다. 요컨대,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인식 가능한 것들을 도식적으로 축소시킬 수밖에 없다. 인류가 진화 과정에서 만들어낸, 언어나 개념적 사고와 같은 인간 고유의 놀라운 도구들은 모두 이러한 목적에 맞춰진 것이다.

라거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 사회에서 특권층의 부상은 걱정스럽지만 반드시 일어나는 현상이다. 특권층은 유토피아에만 없다. 모든 부당한 특권에 대항해 전쟁을 하는 것은 의로운 인간의 과제이다. 하지만 이것은 끝이 없는 전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소수 또는 한 사람이 다수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는 곳에서 특권은 태어나고, 권력 자체의 의지에 반하면서도 특권은 증식한다.

“기쁨은 괴로움의 자식”이 아니다. 괴로움이 괴로움의 자식이다.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은 단지 운 좋은 소수나 굉장히 단순한 영혼들에게만 잠시 환희를 가져왔을 뿐, 거의 언제나 불안의 양상과 겹쳐져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나라와 문화뿐만 아니라 가족과 과거, 우리가 그렸던 미래 또한 잊어버렸다. 왜냐하면 우리는 동물들처럼 현재의 순간에만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포로생활 도중에 자살이 일어난 경우는 드물다. 나는 세 가지 해석을 제시하는 데, 이 해석들이 상호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첫째, 자살은 동물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라는 점이다.
둘째, 흔히 말하듯이, “생각할 다른 일이 있었다.”는 점이다.
셋째, 대부분의 경우, 자살은 어떤 형벌도 덜어주지 못한 죄책감에서 생겨난다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는 경솔하고 짜증나는 이론이지만, 그 당시에 유행한 한 이론에 따르면 “소통불가능성”은 인간의 조건 속에, 특히 산업사회의 삶의 방식 속에 내재하는 빠질 수 없는 요소이고 종신형과도 같은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단자(單子)들이고 상호 메시지를 주고받는 능력이 없거나 단지 토막 난 메시지만을(출발 시 거짓이고 도착 시 곡해되는) 주고받을 줄 안다는 것이다. 담화는 허구이고, 순전한 소음이며 실존적 침묵을 덮어버리는 도색된 장막이다. 그러니, 오호 통재라, 우리가 짝을 지어 산다 해도(또는 그렇다면 특히 더) 외롭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한탄은 정신적 나태함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나태함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위험스론 악순환속에 정신적 나태함을 조장하기도 한다. 병리학적 무능력의 경우를 제외하면, 의사소통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의사소통은 타인의 평화와 자기 자신의 평화에 기여하는 쉽고도 유용한 방식이다.

하루에 수톤 씩 화장터에서 나온 인간의 재는 대개 치아나 척추뼈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것은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습지대를 메우기 위해, 목조 건물의 벽 사이에 넣을 단열재로, 심지어는 인산비료로 말이다. 특히 수용소 옆에 위치한 SS 군의 마을길을 포장하는데 자갈 대신에 사용되었다. 나는 이것이 순전한 냉담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 재의 출처 때문에, 곧 그것이 짓밟아야 할 재료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에 익숙한 단순한 인간은 이유를 묻는 쓸데없는 고문으로부터 안전한 곳에 있었다.

가스실 선발이나 공중 폭격 같은 결정적 순간들에서뿐만 아니라, 고된 일상 속에서도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살았다. 아메리와 나, 우리 둘 다 그것을 알아차렸다. 종교적 믿음이든 정치적 믿음이든 그들의 믿음이 무엇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 속에서 구원의 힘을 얻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우주는 우리의 우주보다 더 방대하고, 시간과 공간 속에 더 확장되어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열쇠와 기댈 버팀목이 있었다.

반란자들과 도전받은 권력 각각의 수적‧군사적‧이념적 힘, 각각의 결집과 내적 분열, 외부의 도움, 유능함, 지도자의 카리스마 또는 악마적 힘, 행운 등 거기에 작용하는 변수들은 많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간에 가장 억압받는 개인들은 운동의 선봉에는 결코 서지 않는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오히려 보통은 대담하고 편협하지 않으며, 개인적으로는 안적적이고 평온하며, 심지어 특권을 누릴 수도 있는 삶을 살 가능성이 있음에도 관대함으로(또는 야망으로) 투쟁에 투신하는 지도자들이 혁명을 이끈다. 기념물에서 자주 되풀이되는, 자신의 무거운 사슬을 끊는 노예의 상(像)은 수사적인 것이다. 그의 사슬은 좀 더 가볍고 느슨한 구속에 메인 동료들에 의해 끊어진다.

상상 속의 과거를, ‘만약 그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그려보는 일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 만큼이나 쓸데없는 짓이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평균적 인간이었고, 평균적 지능을 가졌으며, 평균적으로 악한 사람들이었다.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면 그들은 괴물이 아니었으며 우리와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된 교육을 받았다. 그들 대부분은 거칠고 부지런한 관리들이었고 추종자들이었다. 일부는 나치의 신조를 광신적으로 믿었고, 많은 이들이 그것에 무관심하거나 처벌을 두려워하거나 출세를 바라거나 지나치게 복종하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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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방랑자의 이야기.
    월풍도원에선 기부를 받습니다.

전세계가 주목한 코넬대학교의 인류 유산 프로젝트.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나보다 먼저 흰머리가 난 사람들은 이걸 새치인 줄 알고 뽑았을까 아니면 그러다가는 머리가 다 뽑힐 것 같아서 염색을 했을까?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은 최소 환갑은 넘은 사람들이 살면서 어떤 기쁨을 느꼈고, 무엇이 후회되는지.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지. 만 명이 넘는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들은 이야기를 엮은 책으로,
‘인간에게 나이가 들어서도 변하지 않는 보편적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궁금함을 어느 정도 해소 해 준다.
책 대부분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다루는데,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서로 간의 소통이 삶에 얼마나 큰 부분인지 잘 보여준다.
움직이고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도 하고 어쩌면 평생 보지 않기도 하며 새롭게 알게 된 새로운 누군가가 알고 보면 서로의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던 누군가와 가까운 사이기도 하고 난 웃자고 한 소린데 죽자고 달려들고 누군가 힘내라는 격려에 힘이 빠지기도 하며 비싼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김밥에 라면을 먹으면서도 흥겨운 사람이 있다. 이렇게 여러 사람과 관계 속에서 울고 웃고 짜증 내다가도 신나서 폴짝폴짝 뛰다가 지쳐 쓰러져 누우면 어느덧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닐까?
삶의 시작점보다는 끝에 가까운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분명히 흥미로웠다. 내가 만약 저 나이까지 산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굴업도 석양-'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 책갈피

“오늘, 이곳에서,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야.”
- 준 드리스콜

아름다운 동행 - 잘 맞는 짝과 살아가는 법

‘배우자와 근본적으로 비슷할 때 더 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

결혼을 하면서 배우자를 변화 시키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결혼하기도 전에 관계가 파탄에 이를 것이라고 조언한다.

“오랫동안 행복한 결혼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뭡니까?’ 하고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바로 “제일 친한 친구와 결혼을 했지.”였다. 반대로 결혼에 실패한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대답한 사람이 많았다. “우린 연인으로서는 좋았지만 친구가 되는 법은 알지 못했어.”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 사람 모두 상대에게 항상 100퍼센트를 주는 거야.”
- 엘빈 베이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갖고 한팀처럼 ‘협력’해나간다면 삶의 무게를 덜 수 있다는 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상대를 단 5분이라도 더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크게 달라질 거야. 늘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한 배를 탄 사람들처럼 지내야 해. 그러면 남은 날들을 아주 잘 지낼 수 있지. 지금부터라도 당장 시작하는 거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일 말이야.”

“잠자리에 들 때는 반드시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말해도 괜찮아요. 꼭 하세요. 말한 대로 될 겁니다. 밤새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 윌마 야거

현명하게 싸우는 방법
  • 논쟁을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함께 집 밖으로 나와라.
  • 먼저 화를 풀 방법을 찾아라. 그리고 나서 이야기하라.
  • 위험요소는 없앤다.
  •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라

행복하게 맞는 아침 - 평생 하고픈 일을 찾아가는 법

“가장 중요한 건 말이야 무조건 사랑하는 일, 매일 하고 싶어 설레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거지.”
- 윌리 브래드필드

“사람들이 시간당 얼마를 버는지에만 관심을 쏟는 건 큰 문제야.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네. ‘행복하지 않다면 당장 그 일을 그만두십시오.’ 나는 사람들이 시간당 얼마를 버는지에는 관심이 없다네. 하지만 아침에 출근해서 ‘아, 진짜 하기 싫다. 그만두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면 당장 그만두어야지. ‘이제야 재미있는 일을 찾았군.’ 하는 말이 절로 나올 때까지 눈과 귀를 열고 그런 일을 찾아야 하고. 그리고 나서 자신에게, 또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도 말하는 거야. ‘앞으로 일주일에 200달러 정도 손해 볼 거야. 하지만 난 훨씬 더 행복해질 거야. 삶도 훨씬 편해질 거고. 먹고 사는 데도 문제 없어.’ 세상에는 좋아하지도 않는 일에 묶여 지독하게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지. 그들은 삶이 아니라 돈 때문에 그렇게 매여 사는거야.”
- 모르간 그랜디슨

좋아하지 않는 일을 선택했을 때 가장 큰 비극은 직업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직장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가치를 찾아라.”

“일을 하면서 늘 배울 기회를 찾고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봐. 기회를 그냥 날려버리지 말게. 의식적으로 배우려고 노력해야 그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반드시 거기서 뭔가를 배우게.”
- 키스 쿤

“그 사람이 누구건, 어떤 사람이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건 신경 쓰지 않아. 적군이 아닌 이상 괜찮아. 직장생활에서 필요한 것도 바로 이거야. 사교성 있게 직장 동료들과 잘 지내는 것이 정말 중요하지.”
- 레리 타이스

“자신을 그만 들여다보세요.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은 거울 속 자신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저 당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당신 모습만 보이지요. 창가로 가세요. 그리고 창밖을 내다보세요.”
- 짐 스콧

등을 보고 자라는 아이 - 건강한 아이로 키우는 법

그는 자녀들에 대해 제대로 알려면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조개를 비유로 들었다. 그는 아이들이란 조개 같아서 평소에는 껍데기를 꽉 닫고는 딱딱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속은 더없이 연약하고 상처받기 쉽다고 설명한다. 예기치 못한 순간, 아이들이 단단한 껍데기를 열 때가 있다. 바로 그 순간 부모가 그 자리에 없다면 “달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그는 말한다.
- 로버트 라이시 <아버지가 된다는 것>

양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수록 더욱 명확해지는 것은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많을수록 관계도 좋아진다는 점이다. 이때 기억할 것은 ‘특별한 사건’보다는 일상을 함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시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희생도 기꺼이 감수하라.

편애 사실에 대해 침실에서 방문을 다고 배우자에게 은밀히 털어놓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절대 아이들이 알게 해서는 안된다. 편애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비교해서도 안 된다.

저명한 아동발달 학자들은 체벌이 평생에 걸쳐 부정적 효과를 미친다는 사실에 만장일치로 동의한다. 체벌을 받은 아이들이 더 공격적이고 반사회적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완벽한 아이로 키우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완벽한 부모가 되겠다는 생각도 버려라. 가능한 쉽게 키워라.”

관계의 균열을 방지하는 법
  • 균열의 조짐을 초기에 파악하고 진정시켜야 한다.
  • 균열이 발생하면 즉각 조치를 취하라.
  • 불화가 생겼을 때 화해가 필요한 쪽은 부모다.

하강의 미학 - 지는 해를 즐기는 방법

“내가 왜 지금이 더 행복한지를 줄곧 생각했지.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 우선, 젊어서는 그토록 중요했던 일들이 이젠 그리 대단치 않아졌어. 그리고 늘 지고 살아온 책임감도 더 이상 느낄 필요가 없고. 난 책임감이 꽤 강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책임질 일이 별로 없지.”
- 세실 램킨

건강을 돌보지 않고 되는 대로 살면서 “뭐 어때서? 누구나 언젠가는 다 죽어.” 하는 것은 비겁하다. 과식하고 운동을 게을리하고 담배를 피우며 살다가 때가 되면 편안하게 세상을 떠난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언제 죽을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몇십 년이라는 시간을 건강하게 살다 떠날지 끔찍한 육체의 고통을 이고 하염없이 고통받다가 떠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 나이 먹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다.
  • 100년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몸을 아껴라.
  • 아직 오지도 않은 죽음을 미리 걱정하지 마라.
  • 관계의 끊을 놓지 마라.
  • 노후의 거처를 계획해두라.

후회 없는 삶 - ‘그랬어야 했는데’에서 벗어나는 법

“주방을 개조할지 여행을 할지 결정해야 한다면 단연 여행이죠! 젊어서 여행하면 나이 들어서는 하지 못하는 것들을 더 많이 할 수 있답니다. 돈이야 나중에라도 벌면 되니까요.”
- 도나 로플린

“산 사람에게 꽃을 보내라. 죽은 사람에겐 보내도 보지 못한다.”

“다른 사람을 다정하게 대해야 하듯이 자신에게도 다정해야 하네. 나는 걱정도 많고, 기대도 많고, 죄책감도 많은 집안에서 자랐어.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에게 관대해지고, 자신을 소중하게 대접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네.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너무 가혹하게 굴거든.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정한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진 마. 편하게 생각해. 스스로를 좀더 편하게 대해주라고.”
- 마릴린 스티플러

행복은 선택일 뿐 - 나머지 인생을 헤아리는 법

“자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책임질 필요는 없네. 하지만 어떤 태도를 취할지, 어떻게 반응할지는 스스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지. 짜증, 두려움, 실망 같은 감정들은 모두 자신이 유발한 감정이야. 반드시 잡초 뽑듯 없애야 하는 것들이지. 그런 감정들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고 수용한 다음에는 흘러가게 두는 거야. 외부로부터 온 압박이 내 감정과 행동을 결정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내 인생의 최고경영자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네.”
- 모 아지즈

“걱정을 하려면 그 걱정거리가 뭔지는 알아야죠. 최소한 이유라도 알고 정의하는 겁니다. ‘나는 X가 걱정이다.’ 하는 식으로 말이죠. 때론 걱정할 만한 이유가 있을 때도 있겠죠. 이것이 합리적인 상황 파악입니다. 상황 파악이 되면 걱정이 아닌 대비를 할 수 있습니다.”
- 조슈아 베이트먼

걱정을 버리는 법
  • 하루에 한 가지만 걱정하라.
  • 비가 올 때 필요한 것은 걱정이 아니라 우산이다.
  •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라.

“나는, 매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는 데 평생이 걸렸어. 그렇게 오래 걸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말일세. 내가 너무 미래에만 매달려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물론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긴 해. 누구나 미래를 생각할 테니. 그렇게 사는 것이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네. 하지만 잘 듣게나. 그저 순간 속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척 많다네. 또 지금 바로 이 순간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감사할 수 있다면 역시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지.”
- 말콤 캠벨

인생의 현자들은 어째서 종교적 실천이 좋고 필요한지에 대해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한다. 하나는 공동체 생활의 기본이 되고 또 하나는 힘겨운 시기에 대처하는 유효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절대자를 향한 깊은 신앙은 좋지만 광신은 안 되네.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배려하고 그들에게 관대한 것이 종교의 기본이지.”
- 코라 젠킨스

측은지심이라는 말은 인생의 현자들이 내게 했던 말들을 완벽하게 함축하고 있다. 이 말은 타인을 측은하게 여기는 착한 심성을 의미하며 영어의 ‘Compassion’은 라틴어 파티(pati, 고통)와 쿰(cum, 함께)에서 파생된 말로 ‘함께 괴로워하다.’라는 의미다. 즉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은 타인과 공감하고,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고, 타인의 감정을 느끼고, 타인을 힘겨운 삶의 여정을 걷고 있는 여행자처럼 생각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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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을 결정하는 일자리의 새로운 지형. 직업의 지리학.

왜 도시는 이렇게 붐비는 걸까?
왜 공기 좋고 물 맑은 데서 살다가 매연투성이에 별도 안 보이는 복잡한 서울로 모여들까?
엔리코 모레티 교수는 통계를 인용하여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대하여 설명한다.

직업의 지리학 - 책갈피

무역은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이 지는 축구 같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교역 대상국들 가운데 한 곳의 생산성이 높아지면, 우리가 그 나라에서 사는 상품이 더 싸진다는 게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 즉 소비자를 약간 더 부유하게 만든다.

앞날에 대한 기대가 너무 낮다 보니 이런 문구를 담은 거대한 옥외 광고판마저 등장했다. “시애틀을 떠나는 마지막 사람은 전등을 꺼주시기 바랍니다.”

1979년에는 앨버커키가 시애틀보다 더 안전한 곳이었지만, 이제 그곳의 범죄율은 시애틀보다 높으며 살인사건 발생률은 시애틀의 두 배가 넘는다.

한 도시의 숙련 근로자 수와 그 도시의 미숙련 근로자 임금 사이에 주된 연관성은 세 가지가 있다.
* 숙련 근로자와 미숙련 근로자는 서로를 보완한다. 전자의 증가는 후자의 생산성을 높인다.
* 교육을 더 많이 받은 노동 인구는 지역 고용주들이 더 새롭고 더 개선된 기술을 채택하도록 촉진한다.
* 셋째, 한 도시 인적 자본의 전반적 수준 향상은, 경제학자들이 인적 자본 외부효과(externalities)라고 부르는 것을 발생시킨다.

사회적 승수효과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소득과 교육 수준이 비슷한 공동체의 주민들과, 소득과 교육 수준 차이가 많이 지는 공동체 주민들 간에 건강상의 격차를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질적으로 다음 사실을 의미한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형태의 사회경제적 분리는 사람들의 건강과 장수에 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 간접적으로 영향이 사람들 자신의 교육과 소득이라는 직접적 영향보다 크다. 이는 놀라운 결론으로 이어진다. 당신이 어디 사느냐가 당신이 얼마나 오래 사느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성공적 신생 기업을 만드는 열쇠로는 많은 지원, 많은 팀 빌딩(team building - 조직 개발 기법의 하나로서, 팀의 목표 설정, 각 구성원의 책임 명확화, 구성원간의 커뮤니케이션 개선 등에 의해 집단의 일체화와 작업효율 향상을 꾀하는 것), 다수의 조직화, 기업가와 모험자본가 사이의 관계가 있다. - 빌 드레이퍼

새 아이디어는 진공 상태에서 탄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창의적 근로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혁신과 생산성을 높이는 학습 기회를 창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지식의 흐름과 확신은 근로자들과 기업들이 혁신 단지 안에 자리 잡아야 할, 매우 중요한 세 번째 장점이 된다.

지리는 지식 확산에 중요하며, 지식은 거리가 멀면 신속하게 죽는다. 인용자가 피인용 발명가에게서 0~40킬로미터 사이 거리에 있을 때 인용 정도가 가장 높다. 인용하려는 발명가가 피인용 발명가에게서 4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을 때 인용비율을 현저하게 낮아지며, 그 효과는 거리가 160킬로미터가 넘으면 완전히 사라진다.

똑똑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면 우리는 더 똑똑해지고 더 창의적이 되고 궁극적으로 더 생산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똑똑할수록 그 효과는 그만큼 더 강하다.

시장 경제는 절대 고정적이지 않다. 최첨단인 제품도 이내 상품화되며 만들기 쉬워진다. 기술의 최첨단에 있는 산업들도 이내 주류가 되며 시간이 더 흐르면 과거의 유물이 된다. 오늘 좋은 일자리도 미래에 안 좋은 일자리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러한 역학을 처음 인식한 사람은 카를 마르크스였다. 그는 그것을 자본주의 체제에 내재한 불안정성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80년 뒤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결함이기는커녕 이러한 ‘창조적 파괴’의 과정은 자본주의의 가장 큰 힘이며 그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지적했다.

우리의 혁신 단지들이 그 우위를 지켜나가기 위해 적응하며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단지들은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하지 않다. 어느 시점이 되면 그 단지들을 지탱하는 산업이 성숙하며, 번영을 가져오기를 멈추고, 골칫거리로 변모할 것이다. 끌어당기는 힘은 중요한 장점을 제공하지만, 한때 막강했던 단지들도 극적 방식으로 붕괴했다.

고실업의 현지 노동시장에 그대로 남는 실직 근로자들은 실질적으로 그 노동시장의 모든 타인들에게 비용 또는 부정적 외부효과를 부담 지우는 반면, 멀리 이동하는 근로자들은 긍정적 외부효과를 발생시킨다. 이주 바우처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법이다. 이주 의사를 지닌 근로자의 수를 늘림으로써 바우처는 이주를 택해 다른 곳에서 더 나은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과 그대로 남아서 더 나은 취업 기회를 갖게 되는 사람들을 모두 이롭게 한다.

존스타운 같은 도시들에서 사람들이 받는 명목 봉금(nominal salaries)은 낮다. 하지만 주거비가 다른 곳들보다 낮기 때문에 보통의 봉급이 더 많은 구매력을 갖는다. 이에 반해 뉴욕, 워싱턴, 보스턴 주민들은 명목 봉급은 많이 받지만 실질 봉급(effective salaries)은 많지 않다. 봉급 가운데 많은 부분이 주택 대출금 상환에 들어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주택 고급화 문제의 진정한 해법은 주택 재개발 제한과 정반대이다. 혁신 중심지들은 주택 신축을 제한할 게 아니라 오히려 권장해야 한다. 현명한 성장 정책을 통해 바르게 관리된다면, 특히 시가지 중심부에 집중되고 대중교통망의 확충이 뒤따른다면, 주택이 더 많이 생기는 게 도시 외곽 지역의 무질서한 확장과 교통 혼잡을 야기시키지는 않는다. 이런 종류의 시가지 개발 정책들은 주택 고급화의 부정적 영향을 완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식 전파와 혁신을 조성하는뜻밖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도시 내에서 촉진할 수 있다.

학자들이란 어느 정도 첨단 기업들과 같다는 사실, 즉 학자들은 아이디어를 교환할 만한 우수한 동료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경향이 있음을 재빨리 깨달았다. 혼자 내버려두면 학자들은 침체되는 편이다. 따라서 이미 강한 학과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생산적인 연구자들의 존재가 다른 생산적인 연구자들에게 매력적이며, 약한 학과들은 같은 이유로 더 약해지기 때문이다. 훌륭한 학자는 절대 먼저 약한 학과로 이동하지 않으려 한다. 단지 위신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생산성 때문에 그렇다.

도시를 나쁜 평형 상태에서 좋은 평형 상태로 옮기는 유일한 방법은 대대적 지원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착 상태를 끊고 숙련 근로자들, 고용주들, 전문적인 사업 서비스 업체들을 동시에 새로운 장소로 데려오는 합동 정책이다. 오직 정부만이 이러한 대대적 지원 정책들을 주도할 수 있다. 정부만이 개별적 행위자들(근로자들과 고용주들)을 조직화해 뭉침의 과정을 작동시킬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정책은 먼저 이동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에게 공족 보조금을 제공하되, 그 과정이 자동으로 굴러가게 되면 보조금을 끊는 방식이다.

오늘날 미국 내 불평등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거물급 인사 수천 명에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그들이 가진 부의 비중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것은 확실히 문제이긴 해도, 대학 졸업장을 가진 4,500만 근로자와 대학 졸업장이 없는 8,000만 근로자 간에 급속히 커지는 격차만큼 중대하지는 않다. 이제 밝혀볼 텐데, 임금 불평등은 사람들의 삶에(그들의 생활 수준, 그들의 가계 건전성, 그들의 건강, 심지어 그들 자녀의 건강에까지)정말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또 다른 오해는 임금 불평등의 확대가 주로 의도적인 경제 정책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최저임금의 실질가치 하락, 노조와 같이 저임금 소득자들을 보호하곤 했던 기관들의 약화, 규제 완화로 나아가는 일반적 추세를 예로 든다. 하지만 자료를 세심하게 살펴보면 제도적 요인들은 단지 부차적 역할밖에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964년 시카고대학교의 경제학자 게리 베커는 <인적 자본>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으로 뒷날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이 책의 핵심 아이디어는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대학 진학 결정은, 그 핵심을 살펴보면, 다른 어떤 투자 결정과도 똑같다. 국채를 살 때 당신은 비용을 선불로 지불하며 시간이 흐른 뒤 그 수익을 받는다. 대학 진학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베커는 지적했다.

폭발적 상호 연결, 거리의 종말에 주목하는 온갖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고 일하는 장소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의 최고 아이디어는 여전히, 우리가 마주치는 사람들, 우리 주변에 바로 펼쳐져 잇는 사회 환경에서 우리가 얻는, 일상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자극을 반영한다. 우리의 중요한 상호작용 가운데 대부분은 여전히 얼굴을 마주하고 나누는 대화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배우는 가치 있는 것의 대부분은 위키피디아가 아니라 우리가 아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인터넷을 통해 어디서든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사람이 하는 일이다. - 야니브 벤사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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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방랑자의 이야기.
    월풍도원에선 기부를 받습니다.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만약 지금.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뭐가 달라졌을까?

십 오 년쯤 전.
그 무렵의 나는 왠지 모를 위안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아직 어리니까 모를 수도 있지.'
생각해보면 그보다 훨씬 더 어렸을 때도 그런 마음을 품었더랬다.
아마도 어리고 덜 자라고 부족한 존재에게 사람들이 더욱 관대해진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인듯하다.
서른이 진작에 넘은 지금.
수염은 까칠하게 자랐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다.
지금 내 핏속에 녹아든 것들을 예전에 알았다고 해서,
그것이 어린 내게 스며들었을까?
물에 젖은 종이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쓸데없이 많이 알아봤자 머리만 복잡하고,
삶에 녹아드는 지식은 지극히 일부니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때 알게 될 걸 지금 알게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른다.

백령도 두무진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두고두고 읽고 싶은 열 세 편의 시



만일

만일 네가 모든 걸 잃었고 모두가 너를 비난할 때
너 자신이 머리를 똑바로 쳐들 수 있다면,
만일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할 때
너 자신은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기다릴 수 있고
또한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거짓이 들리더라도 거짓과 타협하지 않으며
미움을 받더라도 그 미움에 지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너무 선한 체하지 않고
너무 지혜로운 말들을 늘어놓지 않을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꿈을 갖더라도
그 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또한 네가 어떤 생각을 갖더라도
그 생각이 유일한 목표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인생의 길에서 성공과 실패를 만나더라도
그 두 가지를 똑같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네가 말한 진실이 왜곡되어 바보들이 너를 욕하더라도
너 자신은 그것을 참고 들을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너의 전생에를 바친 일이 무너지더라도
몸을 굽히고서 그걸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한번쯤은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걸 걸고
내기를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다 잃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네가 잃은 것에 대해 침묵할 수 있고
다 잃은 뒤에도 변함없이
네 가슴과 어깨와 머리가 널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설령 너에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다 해도
강한 의지로 그것들을 움직일 수 있다면,

만일 군중과 이야기하면서도 너 자신의 덕을 지킬 수 있고
왕과 함께 걸으면서도 상식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적이든 친구든 너를 해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모두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되
그들로 하여금
너에게 너무 의존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네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간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60초로 대신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너의 것이며
너는 비로소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

  • 루디야드 키플링

젊은 수도자에게

고뇌하는 너의 가슴속에만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모든 마당과
모든 숲
모든 집 속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들 속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목적지에서
모든 여행길에서
모든 순례길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길에서
모든 철학에서
모든 단체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행동에서
모든 동기에서
모든 생각과 감정에서

그리고 모든 말들 속에서
진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마음속의 광명뿐 아니라
세상의 빛줄기 속에서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온갖 색깔과 어둠조차
궁극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진정으로 진리를 본다면
진정으로 사랑하기 원한다면
그리고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광활한 우주의 어느 구석에서도
진리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 스와미 묵타난다(20세기 인도의 성자)

그런 길은 없다

아무리 어둔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고,
아무리 가파른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가 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다.
나의 어두운 시기가
비슷한 여행을 하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 베드로시안

무덤들 사이를 거닐며

무덤들 사이를 거닐면서
하나씩 묘비명을 읽어 본다.
한두 구절이지만
주의깊게 읽으면 많은 얘기가 숨어 있다.

그들이 염려한 것이나
투쟁한 것이나 성취한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태어난 날과
죽은 날짜로 줄어들었다.
살아 있을 적에는
지위와 재물이 그들을 갈라 놓았어도
죽고 나니
이곳에 나란히 누워 있다.

죽은 자들이 나의 참된 스승이다.
그들은 영원한 침묵으로 나를 가르친다.
죽음을 통해 더욱 생생해진 그들의 존재가
내 마음을 씻어 준다.

홀연히 나는
내 목숨이 어느 순간에 끝날 것을 본다.
내가 죽음과 그렇게 가까운 것을 보는 순간
즉시로 나는 내 생 안에서 자유로워진다.
남하고 다투거나 그들을 비평할 필요가 무엇인가.

  • 임옥당

사랑은

종은 누가 그걸 울리기 전에는
종이 아니다.
노래는 누가 그걸 부르기 전에는 노래가 아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도
한쪽으로 치워 놓아선 안 된다.
사랑은 주기 전에는 사랑이 아니니까.

  • 오스카 햄머스타인

어느 9세기 왕의 충고

너무 똑똑하지도 말고, 너무 어리석지도 말라.
너무 나서지도 말고, 너무 물러서지도 말라.
너무 거만하지도 말고, 너무 겸손하지도 말라.
너무 떠들지도 말고, 너무 침묵하지도 말라.
너무 강하지도 말고, 너무 약하지도 말라.
너무 똑똑하면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걸 기대할 것이다.
너무 어리석으면 사람들이 속이려 할 것이다.
너무 거만하면 까다로운 사람으로 여길 것이고
너무 겸손하면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말이 많으면 말에 무게가 없고
너무 침묵하면 아무도 관심갖지 않을 것이다.
너무 강하면 부러질 것이고
너무 약하면 부서질 것이다.

  • 코막(9세기 아일랜드 왕, 아일랜드 옛 시집에서)

일찍 일어나는 새

당신이 새라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벌레를 잡아먹을 수 있을 테니까.
만일 당신이 새라면
아침에 일찍 이러나라.
하지만 만일
당신이 벌레라면
아주 늦게 일어나야 하겠지.

  • 쉘 실버스타인

진리에 대하여

우리가 최상의 진리라고 여기는 것은
절반의 진리에 불과하다.

어떤 진리에도 머물지 말라.
그것을 다만 한여름밤을 지낼 천막으로 여기고
그곳에 집을 짓지 말라.
왜냐하면 그 집이 당신의 무덤이 될 테니까.

그 진리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할 때
그 진리에 반박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슬퍼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히 여기라.

그것은 침구를 거두어 떠나라는
신의 속삭임이니까.

  • 벨포 경

해답

해답은 없다.
앞으로도 해답이 없을 것이고
지금까지도 해답이 없었다.
이것이 인생의 유일한 해답이다.

  • 거투르드 스타인

모든 것

모든 것을 맛보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맛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지식에도 매이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이 아직 맛보지 않은 어떤 것을 찾으려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야 하고,
소유하지 못한 것을 소유하려면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곳으로 가야 한다.
모든 것에서 모든 것에게로 가려면
모든 것을 떠나 모든 것에게로 가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로 함이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 십자가의 성 요한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마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 칼릴 지브란

술통

내가 죽으면
술통 밑에 묻어 줘.
운이 좋으면
밑둥이 샐지도 몰라.

  • 모리야 센얀(일본 선승, 78세)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테니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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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방랑자의 이야기.
    월풍도원에선 기부를 받습니다.

개발의 통찰. 글로벌 소프트웨어를 말하다, 지혜.

기술 서적을 거의 읽지 않는다. 개발에 필요한 대부분 자료는 웹에서 찾아보면 되기 때문이다. 기술 관련 책은 두껍고 시간이 얼마 지나면 전혀 쓸모가 없어져 버린다. 이런 책들은 쓸데없이 책꽂이 공간만 차지하고 있다가 색이 바래고 다시는 펼쳐져 보지 않은 채 버려지기 마련이다. 그중에는 가끔 다른 용도로 활용되는 책이 있기도 한데, <비주얼 C++ 6> 과 <자바 2 프로그래밍 바이블>. <실무에 강해지는 JSP 프로그래밍>은 책이 튼튼해서 이 세 권을 잘 쌓아 그 위에 모니터를 올려놓고 쓴다.
자료를 찾아보는 면에서 더 편한 걸 쓰면 되므로 책이 편한 사람은 책을 보면 되고 인터넷이 편한 사람은 인터넷을 보면 된다. 이건 개인의 취향이니까.

<글로벌 소프트웨어를 말하다, 지혜.>는 고수의 비급을 풀어놓은 책으로 개발자로서 자신을 한번 돌아볼 기회를 준다. 분명 IT에 대해 말하지만, 글쓴이의 삶의 방향과 의지를 느끼게 하는 수필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때로는 당연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맞네, 맞아!’하고 손뼉을 치게 하는 글귀도 나온다. 그동안 개발을 업으로 하며 느꼈던 좌절감을 다시 느끼기도 하고, 그래도 이 정도면 썩 괜찮은 개발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개발자로 살아갈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건 내 개발 인생의 끝을 마주하고 싶다는 것이다. 설령 언젠가 개발을 그만두게 되더라도, ‘아 개발자로 계속 살아갈 것을...’ 이런 미련이 남지 않도록.



글로벌 소프트웨어를 말하다, 지혜. 책갈피.

미국의 직업선호도 조사에 의하면 수만 개의 직업 중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과거 수년 동안 직업선호도 1위를 차지해 왔다. 노동집약 산업이라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눈이 충혈되고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일하는 모습으로는 직업선호도 1위가 될 수 없다.

비용평가와 가치평가는 노동집약 산업과 지식 산업의 대표적인 차이이다. 어떤 제품의 가치를 판단할 때 ‘누가 얼마나 걸려 만들었는가?’라는 원가산출 방식으로 제품의 가치를 산정하는 것이 노동집약 산업의 특징이다. 반면에 ‘고객이 느끼는 가치가 제품의 가치’인 것이 지식 산업이다. 즉, 모차르트가 하나의 곡을 하루 동안에 작곡을 하든 한 달에 걸쳐 작곡을 하든 곡의 가치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잘못된 길을 멀리 가느니 안 가는 게 낫다”라는 격언이 있다. 모험과는 다르다. 모험은 잘 될 수 있는 확률이라도 있지만 원칙이 잘못된 경우는 모험이 아니라 그냥 100% 오류인 것이다. 잘못된 길을 모험이나 열정적인 노력으로 미화하지 않기를 바란다.

음악을 작곡하는 사람과 연주를 하는 사람이 다르듯이 ‘한 사람이 분석(작곡)도 하고 설계와 구현(연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소프트웨어에서는 연주할 곡은 ‘소프트웨어 요구사항 분석서(Software Requirements Specification, SRS)’라는 문서로 작성된다. SRS라는 곡을 가지고 연주하는 것이 설계와 구현이다. 먼저 SRS가 아름다워야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연주를 해야 한다.

음악에서는 연주할 곡이 완성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연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국내 소프트웨어에서는 무엇을 만드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만들기 시작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쯤 작곡된 곡을 미리 연주하겠다는 것이다.

대개 아름다움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만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충분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아름답지 않으면 절대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즉,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인 것이다.

“개는 그들이 던지는 돌을 쫓아다니지만, 사자는 더 이상 돌은 거들떠보지 않고 돌을 던진 자를 문다”고 했다. 우리는 적어도 인간으로서 개가 아닌 사자만큼은 인과관계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감동은 근본적으로 자기가 할 수 없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자기가 스스로 실행하고 있는 사람은 감동받을 일이 없다. 기부를 늘 해 온 사람들은 아름다운 기부 얘기를 들어도 별 감동이 없는 법이다. 그냥 동질감을 느낄 뿐이다.

리눅스의 창시자인 리누스 토발즈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혜는 일을 하는 것을 피하면서 일을 완수하는 역량이다.”
(Intelligence is the ability to avoid doing work, yet getting the work done.)

가장 상위 개념으로 올라가서 “당신이 추구하는 인생의 목표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거의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그럼 궁극적인 목표를 알기 위해서는 “왜 행복하기를 원합니까?”라는 질문도 답을 해야 하는데 대부분 여기서 답이 막힌다. 답을 한다고 해도 다음 질문이 또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형이상학의 영역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에게는 짜증나는 대화일 뿐이고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대화가 가능하다. 결국은 거의 모든 인간은 동물과 같이 오욕에 집착하며 목표도 모른 채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아도취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공학에서의 정의는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적은 비용으로 좋은 품질의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공학에서도 지적하는, 개발자가 믿는 대표적인 미신이 ‘분석할 시간이 없어서 바로 코딩에 들어가겠다’이다. 이 한마디가 회사 전체의 역량이 초급 수준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우리 몸에는 방위체력과 운동체력 두 가지가 있고 총합이 일정하다. 그러니 운동체력이 올라가면 방위체력은 떨어진다. 어느 순간 운동을 열심히 하면 병에 걸리기 쉽다는 얘기이다. 총합을 올리려면 운동을 장기간 꾸준히 해야 서서히 올라간다.

깨달음은 스스로 얻어야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처럼 제자들이 깨달을 때까지 계속 질문을 던지는 것이 스승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깨달음의 세계는 다 그런 식으로 진행된다. 그냥 일방적으로 가르쳐서 배울 수 있다면 그건 지혜가 아닌 지식의 세계이다.

국내 팬들이 실리콘밸리의 어느 누구보다 훨씬 더 존경하는 스티브 잡스는 사용자 대표들의 모임인 Focus Group 미팅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만일 이에 의존했다면 애플의 혁신적인 제품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고객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고객 자신보다도 고객을 더 잘 알고 있었다. 고객선호도를 알아내겠다고 설문조사의 결과를 맹신하는 것이 창조와 혁신의 세계에서는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의 의견보다 전문가 한명의 통찰력이 중요하다.

혁신적인 이슈로 강연을 했을 때 50%이상이 공감하면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혁신적인 이슈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이 공감대를 가질 수 있다면 대부분 선동가나 사기꾼이다. 선각자와 공감대는 본질적으로 서로 모순된 용어이다.

감정적인 이슈를 논리적으로 해결하려 들고, 논리적인 이슈를 감정적으로 해결하려 들고, 공감대가 필요한 이슈를 독단으로 하고, 독단으로 결정할 이슈에서 공감대를 찾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개발자는 하루종일 혼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공유해야 할 이슈가 있다면 자기가 집중력을 회복하기 위해 쉬는 시간에 이슈관리시스템을 보면서 처리하면 된다. 하지만 자신이 집중하고 있는 중에 누가 불러댄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를 ‘일체성’이라고 한다. 한 번에 완성되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 바둑도 마찬가지고 당구도 마찬가지다. 조엘 스폴스키는 그의 책에서 “개발자가 한 번 전화를 잠깐 받으면 원상복구하는 데 평균 30분이 걸린다”고 했다. 하루에 전화 다섯 번을 받고, 회의에 몇 차례 다녀 오면 개발 일은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열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키텍트의 삶을 살 것인가, 고참 개발자의 삶을 살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소수의 경우에는 어떤 삶이 좋을지는 가치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아니다.

글로벌 회사가 될 수 있는가 아닌가를 평가할 때 고객이 직접 방문을 하는 모델로 만들었다면 일단 아니다.

예외처리나 디버그 문장이 습관상 게을리 하기 가장 쉬운 것들이다. 귀찮은 코드이기도 하고 일단 구동이 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나중에 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못 한다.

좋은 프로그래밍의 필요 조건은 손가락이 아닌 머리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 훈련도 많이 해야 하고 빨리 타이핑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정으로 해야 하는 중요한 것은 다 장기적이고 일만 시간의 법칙이 필요한 것이다. 힘든 노력은 하지 않고 돈으로 재미있고 쉬운 것에 유혹될 때 못하게 하는 것이 회사의 비용을 절약하고 주화입마에 빠질 위험성을 줄이는 것이다.

‘과거에 내가 한 일이 나만의 가치가 되는 일’은 없애야 한다. 그런 가치를 인정해주는 회사라면 희망이 없는 회사니 빨리 이직을 하기 바란다. 과거의 정보는 모든 사람이 나누어 가지고 미래의 가치를 키우는 회사가 바로 개발자가 열정을 가지고 일할 가치가 있는 회사다.

이해할 수도 없이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설계는 100% 나쁜 설계이다. 왜 이 설계가 좋은 설계냐고 물어볼 필요가 없다. 인간이라면 아름다움은 스스로 판단할 줄 안다. 결국 아름다운 설계가 좋은 설계이다.

Top-down을 하기 위해서는 다음 네 가지 역량이 필요하다.

  • 자연스러운 습관의 거부
  • 외로움을 이기는 강력한 의지
  • 예술적인 창조성
  • 방법적인 역량

이 중에 하나라도 해당되면 글로벌 회사의 역량은 없다고 보면 된다.

  • 개발자가 재택근무를 할 수 없다.
  • 회의한다고 개발자를 계속 불러 댄다.
  • 멘토가 가르쳐주지 않고는 신입사원이 일을 시작할 수 없다.
  • 제품 릴리즈를 일 년에 세 번 이상 한다.
  • 백발이 성성한 개발자가 한 명도 없다.
  • 지금 없어지면 제품 유지보수에 큰일 나는 개발자가 있다.
  • 시장에 나온 새로운 개발도구는 다 가지고 있다.
  • 코드를 많이 복사해서 사용한다.
  • 코딩하면서 예외처리를 하지 않는다.
  • 코딩을 각자 다 자기 스타일로 한다.
  • 어느 개발자가 마지막 일주일에 소스코드를 왜 몇 줄을 고쳤는지 모른다.
  • 착한 개발자가 피해를 입는다.
  • 보고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낸다.
  • 개발자가 2주 휴가를 갔다 올 시간이 없다.
  • 모든 결정에 ROI(투자대비효과)를 달라고 한다.
  • 다음에 개발할 제품이 무엇인지 모른다.
  • 문서를 만들기는 하나 보지는 않는다.
  • 물려줄 자산이 없다.


링크

저자 블로그 (http://ikwisdom.com)
SWEBOK (http://www.computer.org/portal/web/swebok)
The evolution of a softwareengineer (https://medium.com/@webseanhickey/the-evolution-of-a-software-engineer-db854689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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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방랑자의 이야기.
    월풍도원에선 기부를 받습니다.

류시화 시인이 엮은 시 모음집.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시.
어릴 적 내겐 너무도 먼 존재였다.
컴퓨터 자판을 익히기 위한 한메 타자 교실에서 아무런 감정도 운율도 없이 투다닥 투다닥 쳐나가던 글씨였을 뿐.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은 생소하기만 했고,
이를 언급한 별 헤는 밤의 윤동주 시인 역시 너무나 멀리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를 하나쯤 외운다는 건 멋진 일일 거 같아.’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왜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때 외우기 쉬워 보이는 시는 구르몽의 낙엽이었는데,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이 이후로는 도통 외워지지가 않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시몬한테 낙엽이 좋으냐고 물었는지,
혹은 낙엽 밟는 소리를 알았느냐고 물었는지조차 헛갈리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내게 한편의 시를 소개했는데,
류시화 시인의 ‘새와 나무’라는 시였다.

여기 바람 한 점 없는 산속에 서면
나무들은 움직임 없이 고요한데
어떤 나뭇가지 하나만 흔들린다

그것은 새가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별일 없이

살아가는 뭇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홀로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나무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지만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이때 처음으로 시인이란 위대한 존재라고 느꼈다.
그 이후로 류시화 시집을 몇 권 읽었던 것 같긴 한데 오래 된 일이고 기억이 희미하다.

한해 한해 살아가며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매년 읽게 되는 글자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눈을 피로하게 하고 머리를 아프게 하거나 의미가 없는 글자들. 먹고 살기 위한 문서나,
남들은 어떻게 사나 기웃거리며 읽게 되는 문장들.
그렇게 눈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글 중에 과연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흘러가는 것이 얼마나 될까?
좋은 시는 몇 자 되지도 않으면서 곧장 심장을 향해 흘러 온다. 아름답다.

글을 잘 쓰는 수필가를 보면 멋있어 보이고,
소설을 잘 쓰는 사람은 존경스러우며,
시인은 위대하다.
그 위대한 시인 중 한 명인 류시화 시인의 가슴으로 흘러들어 간 시 모음집.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심장에 시가 돌지 않아 손발이 저리고 차가운 사람에게 좋은 시집이다.

코타키나발루-'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Love, like you’ve never been hurt.'

이 시집에서 고른 아홉 편의 시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알프레드 디 수자


삶을 위한 지침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더 많이, 그리고
진심으로 기뻐하며 주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시를 외우라.
들리는 모든 것을 믿지는 말라.
때로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써버려라, 아니면
실컷 잠을 자라.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으라.
다른 사람의 꿈을 절대로 비웃지 말라.
꿈이 없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니까.
사랑은 깊고 열정적으로 하라. 상처받을 수도 있지만,
그것만이 완전한 삶을 사는 유일한 길이다.

위대한 사랑과 위대한 성취는
엄청난 위험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배움을 얻는 일에까지
실패하지는 말라.

때로는 침묵이 가장 좋은 해답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라.
변화하는 데 인색하지 말라. 그러나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라.
무엇보다 바람직하고 존경할 만한 삶을 살라.
늙어서 자신의 생을 돌아볼 때
또다시 그것을 살게 될 테니까.

신을 믿으라, 하지만 차는 잠그고 다니라.
숨은 뜻을 알아차리라.
당신의 지식을 남과 나누라.
그것이 영원한 삶을 얻는 길이므로.
기도하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힘이 거기에 있다.

자신이 실수한 것을 깨닫는 순간, 즉시 바로잡으라.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늙으면 그것이 아주 중요해질 테니까.
하지만 가끔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라.

일 년에 한 번은, 전에 전혀 가보지 않았던 곳을 찾아가라.
돈을 많이 벌었다면
살아 있을 때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쓰라.
그것이 부가 가져다주는 가장 큰 만족이다.

자신이 원하는 걸 얻지 못하는 것이 때로는
큰 행운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규칙을 배우고 나서, 그중 몇 가지를 위반하라.
무엇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포기했는가를
자신의 성공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으라.
자신의 성격이 곧 자신의 운명임을 기억하라.


- 작자 미상. 처음에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네팔 탄트라 토템> 또는 <달라이 라마의 만트라>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어느 날 페르시아의 왕이 신하들에게
마음이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때는 슬프게 만드는 물건을 가져올 것을 명령했다.

신하들은 밤새 모여 앉아 토론한 끝에
마침내 반지 하나를 왕에게 바쳤다.
왕은 반지에 적힌 글귀를 읽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만족해 했다.
반지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기쁨과 환희로 가득할 때
근심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적인 것들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이 진실을 조용히 가슴에 새기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 랜터 윌슨 스미스


봄의 정원으로 오라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 잘랄루딘 루미


무사의 노래

나에겐 부모가 없다
하늘과 땅이 나의 부모
나에겐 집이 없다
깨어 있음이 나의 집
나에겐 삶과 죽음이 없다
숨이 들고 나는 것이 나의 삶과 죽음
나에겐 특별한 수단이 없다
이해가 나의 수단
나에겐 힘이 없다
정직이 나의 힘
나에겐 비밀이 없다
인격이 나의 비밀
나에겐 몸이 없다
인내가 곧 나의 몸
나에겐 눈이 없다
번개의 번쩍임이 나의 눈
나에겐 귀가 없다
예민함이 나의 귀
나에겐 팔다리가 없다
신속함이 나의 팔다리
나에겐 기적이 없다
바른 행동이 나의 기적
나에겐 고정된 환칙이 없다
모든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나의 원칙
나에겐 전략이 없다
비움과 채움이 나의 전략
나에겐 벗이 없다
내 외로운 마음이 곧 나의 벗
나에겐 적이 없다
부주이가 곧 나의 적
나에겐 갑옷이 없다
관대함과 의로움이 나의 갑옷
나에겐 굳건한 성이 없다
흔들림 없는 마음이 나의 성
나에겐 검이 없다
나를 버림이 곧 나의 검


- 15세기 일본 무사들의 노래


뒤에야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상시의 마음이 경박했음을 알았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네.
일을 돌아본 뒤에야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음을 알았네.
문을 닫아건 뒤에야
앞서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이전의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네.
마음을 쏟은 뒤에야
평소에 마음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네.


- 중국 명나라 문인 진계유


진정한 여행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나짐 히크메트


힘과 용기의 차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부드러워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힘이
방어 자세를 버리기 위해서는 용기가

이기기 위해서는 힘이
져주기 위해서는 용기가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의문을 갖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힘이
전체의 뜻에 따르지 않기 위해서는 용기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기 위해서는 힘이
자신의 고통과 마주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학대를 견디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그것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홀로 서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누군가에게 기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힘이
사랑받기 위해서는 용기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힘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 데이비드 그리피스


하지 않은 죄

당신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하지 않고 남겨 두는 것이 문제다
해질 무렵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잊어버린 부드러운 말
쓰지 않은 편지
보내지 않은 꽃
밤에 당신을 따라다니는 환영들이 그것이다

당신이 치워 줄 수도 있었던
형제의 길에 놓인 돌
너무 바빠서 해 주지 못한
힘을 북돋아 주는 몇 마디 조언
당신 자신의 문제를 걱정하느라
시간이 없었거나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사랑이 담긴 손길
마음을 끄는 다정한 말투

인생은 너무 짧고
슬픔은 모두 너무 크다
너무 늦게까지 미루는
우리의 느린 연민을 눈감아 주기에는

당신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하지 않고 남겨 두는 것이 문제다
해질 무렵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 마가렛 생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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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방랑자의 이야기.
    월풍도원에선 기부를 받습니다.

SF 고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작년에 친구네 막걸리 한 사발 하러 갔다가 취기에 소설책 한 권을 빌렸다. 사고 싶던 책인데 다섯 권을 묶어서 아주 저렴하게 팔아서 냉큼 샀다는 거다. 3분의 1쯤 읽고 쉬고 있다는 말에 금방 읽고 준다며 빌려와서 거의 일 년 만에 돌려줬다. 이 책을 읽으며 정말 큰 교훈을 얻었는데, 만화책이 아니라면 합본은 절대 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두꺼워서 들고 다니기가 어려우니 집에서만 읽어야 한다. 팔이 아파서 들고 보기가 어렵다. 아마도 지금껏 소설을 읽다가 팔이 아프긴 처음이었지 싶다.
어찌 보면 팔운동과 독서를 함 하는 최고의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위안으로 책을 읽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다 읽었어도 팔 근육은 전혀 발달하진 않았지만, 안면 근육은 확실히 발달했다.
웃을 일이 많기 때문이다.:D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더글라스 애덤스가 존경스럽다. 6권은 이오인 콜퍼라는 아일랜드 작가가 썼는데, 이름만 같은 다른 소설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꽤 재미있는 편이지만, 웃기는 방법이 다른 시리즈와 전혀 다르다. 더글라스 애덤스와 이오인콜퍼가 닮은 점이라면 둘 다 말장난의 대가라는 것이다. 그들은 진지하게 웃기기도 하고 무작정 웃기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하게 웃기기도 한다. 아무튼, 웃기다. 풍자와 재치 넘치는 이야기로 책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는 총 여섯 권으로 대체로 재미있다.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 우주 끝에 있는 레스토랑 (The Restaurant at the End of the Universe)
  •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 (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
  • 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 (So Long, and Thanks for All the Fish)
  • 대체로 무해함 (Mostly Harmless)
  • 그런데 한 가지 더 (And Another Thing...) - 이오인 콜퍼

재미도 재미지만 인생의 답이 무엇일까 궁금하다면 꼭 한번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그 이유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엔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그 엄청난 해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삶은 무엇인가?’
‘우주는 왜 생겨났는가?’
이런 궁금증을 가져봤던 사람이라면 이 내용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건 깊은 생각이라는 엄청난 슈퍼컴퓨터가 몇 세대에 거쳐 계산해야 나오는 답인데,
요즘엔 세상이 좋아져서 그런지 구글도 답을 알고 있다.
구글 검색창에 ‘the answer to 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 이라고 치면 이 엄청난 질문에 대한 해답이 튀어나오는데,
혹시 심장이 약하다면 검색 전에 우황청심환을 한 알 먹어두는 편이 좋다.

시리즈-'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책갈피


인간은 계속해서 입을 움직이지 않으면 머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이론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이 이론 역시 단념했고, 거추장스럽기만 한 냉소주의도 포기했다. 그는 결국 자신이 인간들을 꽤 좋아한다고 결론지었지만, 이들이 모르고 있는 그 수많은 것들을 생각하면 언제나 지독하게 걱정스러웠다.

뿌연 안개에 싸인 저 과거의 옛 시절, 전대(前代) 은하 제국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시절에는 인생은 멋지고 풍요로웠으며 대략 면세였다.

아서는 눈을 껌뻑이며 스크린을 바라보다가 자신이 뭔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게 무엇인지 그는 문득 깨달았다.
"이 우주선에는 홍차가 없나?"그가 물었다.

그는 열까지 세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지각 있는 생명체들이 이것마저 영영 잊어버리지 않을까 진심으로 걱정됐다. 숫자를 세는 것만이 인간이 컴퓨터로부터 독립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난 제멋대로야.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여어, 못할 거 뭐 있어, 하고는 해버리지. 은하계의 대통령이 되어야지 생각하면 그대로 돼버리는 거야. 쉽다고. 이 배를 훔치자, 마그라테아를 구경하자, 하고 결심하면, 모두 그대로 되는 거야. 물론 어떻게 하면 가장 잘할 수 있을까 하고 계획을 꾸미는 것은 사실이애. 그래, 하지만 언제나 쉽게 잘 된다고. 마치 은하 신용 카드를 가지고 있는데, 내가 한 번도 지불 수표를 보내지 않았는데도 계속 사용이 가능한 거나 마찬가지야. 그러고는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싶어 했지?', ' 그 방법을 어떻게 생각해냈지?' 이런 질문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려 할 때마다 그 생각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되지. 지금처럼 말이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만 해도 너무 힘이 들어."

마치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가 여자의 남편이 방에 들어오는 바람에 혼비백산했는데 그 남편이라는 자가 바지를 갈아입더니 날씨가 어쩌고 하는 대수롭지 않은 말만 몇 마디 건네고 그냥 다시 방에서 나가버리는 일을 당한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친구. 법률에 의하면, 궁극적인 진리 탐구는 사상가들의 양도할 수 없는 특권이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소. 어떤 빌어먹을 기계가 정말 진리를 찾아내 버리면, 우리는 당장 실직자가 된단 말이오. 안 그렇소?

그는 아서에게 마치 스테고사우루스 공룡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의자 쪽으로 오라고 손짓해 보였다.
"그 의자는 스테고사우루스의 갈비뼈를 뽑아 만든 거라오."

"정말 한 가지 해답이 있나?" 푸흐그가 헐떡였다.
"정말 한 가지 해답이 있습니다." 깊은 생각이 확인해주었다.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그 엄청난 질문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말해줘!"
"그러죠." 깊은 생각이 말했다. "위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해답은……!"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은……." 깊은 생각이 말했다.
"해답은……!"
"그 해답은……." 깊은 생각이 말을 멈췄다.
"해답은……!!!"
"42입니다." 무지무지하게 엄숙하고 침착하게 깊은 생각이 말했다.

왜냐하면, 굉장히 지성적이고 꽤 재미있고 또 인간적인 이야기를 할 거니까! 자, 너희가 항복하고 나와서 우리한테 때릴 기회를 주든지…… 물론 우리는 쓸데없는 폭력에는 반대하기 때문에 너무 많이 때리지는 않을 거지만……아니면, 우리가 이 행성 전체를 날려버리고 가는 길에 눈에 띄는 한두 개를 더 날려버리게 하든지 선택해라!

은하계의 모든 주요 문명은 다음과 같이 뚜렷하고 확연한 세 단계를 거친다. 즉 생존, 의문, 그리고 세련의 단계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 왜, 그리고 어디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단계를 특징짓는 질문은 '어떻게 먹을까'이고, 두 번째 단계는 '우리는 왜 먹는가'이고, 마지막 단계는 '어디서 점심을 먹을까'이다.

나는 죽었기 때문에 알지. 죽음이라는 건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놀라운 혜안을 주거든. 여기 명부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생명은 산 자들에게 쓸데없이 낭비되고 있다.

오래전, 이곳은 대단히 번창했고, 행복한 행성이었습니다. 사람들, 도시들, 가게들이 가득한 정상적인 세상이었죠. 이 도시들의 번화가에 좀 필요 이상으로 구두 가게가 많았다는 것만 제외하면요. 그런데 이 구두 가게들의 수가 서서히,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늘어난 겁니다. 그건 아주 널리 알려진 경제 현상이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 보는 건 참 비극적이었죠. 즉, 구두 가게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 많은 구두를 만들어내야 했고, 그러면 그럴수록 구두들은 점점 더 질이 나빠지고 신을 수 없는 구두가 되었고, 구두의 질이 안 좋아질수록 신발을 신고 다니기 위해선 점점 더 많은 구두를 사야만 했죠. 그래서 신발 가게는 더 늘어만 갔고, 결국 전 경제는 신발 파동 수평선이라 불리는 선을 넘어버린 겁니다. 그 시점이 되면 신발 가게 외에 다른 것을 만드는 것이 경제학적으로 불가능해져버리죠. 그 결과는 파국과 폐허, 기근이었습니다.

당신은 그저 자기 시대에 예금 통장에 일 페니만 저금하면 된다. 시간이 끝나는 날에 당신이 도착하면, 복리(複利) 작용에 의해 엄청난 식사 비용은 이미 지불이 되어 있을 것이다.

포드는 팬 갈랙틱 가글 블래스터를 한 잔 더 마셨다. 이 술은 강도(强盜)의 술 버전에 해당되는 술이라고 회자되는 술이다. 즉, 대가가 값비싸고 머리가 빠개진다.

"난 자기를 먹어달라고 청하는 짐승을 먹고 싶진 않다고. 냉혹한 짓이야." 아서가 말했다.
"먹히고 싶어 하지 않는 짐승을 먹는 것보단 낫지." 자포드가 말했다.

예술의 기능은 자연에 거울을 들이대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큰 거울은 없다.

고(故) 핫블랙 데지아토 씨가 그의 보디가드의 도움을 받아 움직이는 통로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이쯤에서 포드가 지구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의 특이한 버릇에 대해 정립했던 이론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 게 좋겠다. 그가 보기에 지구인들은 너무너무 명백한 사실들을 계속해서 말하고 또 말하는 괴상한 버릇이 있었다. '아, 좋은 날씨로군'이라든지 '키가 상당히 크시군요'라든지 '그래서 이걸로 끝이군, 우리는 죽는 거야'같은 소리들 말이다.
그의 첫 번째 이론은, 만일 지구인들이 계속해서 입술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입은 시들어빠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몇 달간 관찰한 뒤 그는 두 번째 이론을 내놓았다. '만일 지구인들이 계속 입술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들의 머리가 작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계획은 이런 거였어요. 첫 번째 우주선인 A 방주에는 뛰어난 지도자들, 과학자들, 위대한 예술가들, 뭐 그런 성공한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타고, 세 번째 우주선인 C 방주에는 진짜 일을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물건을 만들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 탔죠. 그리고 B 방주에는---그게 우리 우주선이죠---그 밖의 사람들이 탔어요. 중간치들 말이에요.

내가 어찌 알겠어요? 과거란 현재의 나의 육체적 감각과 마음 상태 사이의 괴리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일지도 모르는데.

"좋아요. 그게 존재한다는 건 어떻게 알죠? 당신이 잘해준다는 걸 그 녀석이 아는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당신이 친절이라 생각하는 그걸 저 녀석이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아요?" 자니우프가 자기의 주장을 밀어붙이며 말했다.
"물론 모르죠."그 사람이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전혀 몰라요. 고양이처럼 보이는 대상에게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했을 때 내 기분이 좋을 뿐이죠. 당신은 다르게 행동하나요? 하여간, 이제 난 피곤한 것 같아요."

"우선 먹고 나서 나중에 생각해 보면 어떨까?" 아서가 말했다.
"아마 그게 바로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일 거야."
"좋아, 그럼 이렇게 생각해봐……."
"아직까지는 괜찮게 들리는데."
"저 과일은 우리가 먹으라고 저기 있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지. 우리 배를 불려줄 수도 있고, 독으로 우리를 죽일 수도 있어. 만일 저게 독이 든 건데 우리가 안 먹는다면, 그들은 다른 방법으로 우리를 공격 할 거야. 우리가 먹지 않더라도 우리는 어쨌든 지는 거라고."
"네가 생각하는 방식이 맘에 들어. 그럼 하나 먹어봐."

다른 사람의 문제(Somebody Else’s Problem)
SEP라는 건, 우리가 볼 수 없는, 아니 보지 않는, 우리 뇌가 못 보게 하는 광경이야. 왜냐하면 다른 사람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SEP의 뜻이 그거야. '다른 사람의 문제.' 뇌가 그 부분을 편집해 잘라내기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맹점 같은 거라고.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르는 경우에는 똑바로 쳐다보면 보이지 않아. 유일한 희망은 곁눈질로 어쩌다 재수 좋게 힐끗 보게 되는 거지.

식당의 구역 내에서 식당 청구서에 적히는 숫자들은 식당을 제외한 우주의 다른 구역에서 다른 종이 위에 적히는 숫자들이 따르는 수학적 법칙들을 전혀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단 한 가지 사실이 전체 과학계를 폭풍처럼 초토화했으며, 과학 전체에 완벽한 혁명을 몰고 왔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수학 학회들이 훌륭한 식당에서 열리는 바람에, 당대 최고의 지성들 중 많은 이가 비만과 심장마비로 죽어나갔고 수학이라는 과학의 발전이 몇년씩 뒷걸음질을 쳤다.

이 쓰레기 같은 건 안 봐도 돼요. 그저 고개만 끄덕이지 마시오. 그러면 괜찮아.

이 치들은 뭘 믿냐 하면…… '평화, 정의, 윤리, 문화, 스포츠, 가족 생활, 그리고 다른 생명체의 말살'을 믿는다고 하는군요.

그는 검은 바지에, 배꼽 비슷한 데까지 단추를 풀어 젖힌 검은 실크 셔츠를 입고 있었다.

싸움은 ‘스트리테락스 행성의 사일라스틱 갑옷 악마’ 종족이 몹시 잘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워낙 잘하는 일이다 보니 싸움을 아주 많이 했다. 적들(즉, 다른 사람들 모두)과 싸웠고, 자기네끼리 서로 싸웠다. 그들의 행성은 철저히 폐허가 되었다. 행성 표면은 버려진 도시들로 가득 찼고, 주위는 버려진 무기들이 가득했으며, 그 주위에는 또 사일라스틱 갑옷 악마 종족이 살면서 시시한 일들로 서로 싸워대는 깊디깊은 벙커들이 있었다.
이 종족과 싸우려면, 제일 좋은 방법은 그냥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었다. 그들은 누가 태어나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심지어 몹시 비위 상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이 종족이 성이 나면 꼭 다치는 사람이 생겼다. ‘인생을 뭐 그렇게 피곤하게 산담’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종족은 정력이 어마어마하게 샘솟았던 모양이다.

“핑!” 자포드가 말했다. “피유우우우우우! 빵빵빵!”
“이봐요.” 컴퓨터가 일 분 후 명랑하게 말했다. “당신은 삼 점을 받았어요. 이제까지의 최고 점수는 칠백오십구만 칠백오십구만 칠천이백…….”

그는 새들과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웠지만, 그들의 대화가 기가 막히게 지루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개가 바람의 속도, 날개 길이, 체력과 무게의 비율에 대한 것이었고, 나아가 상당 부분이 딸기에 대한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일단 새의 말을 배우게 되면 머지않아 허공에서 새의 말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저 무의미한 새들의 수다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피해 도망갈 데가 없었다.

그날 저녁에는 해가 일찍 저물었다. 그맘때는 그게 정상이었다. 춥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그맘때는 그게 정상이었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이건 더더구나 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 우주선 한 대가 착륙했다. 이건 정상이 아니었다.

청구서는 상당히 길었다.
맨 아래에는 오디오 세트 밑바닥에 새겨진 제품 번호와 비슷한 숫자가 쓰여 있었다. 등록을 하려고 베껴 쓰는 데 몹시 오래 걸리는 그 일련 번호들 말이다.

“구즈나…….” 포드 프리펙트가 말했다. 이건 뭔가 말은 하고 싶은데 특별히 할 말이 없을 때 그가 잘 쓰는 베텔게우스 행성어였다.

“이봐요, 당신도 그때 그 사건은 다 기억할 거 아뇨. 환각 말이에요. 사람들은 다 CIA가 전쟁에 마약을 사용하려고 실험을 했다든가 뭐 그랬다고 합디다. 다른 나라를 진짜로 침략하는 대신, 사람들이 침략당했다고 믿게 만드는 게 훨씬 비용이 저렴하다든가 뭐 그런 미친 이론이었지요.”

사브는 분노로 이글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아서는 떠나는 자동차 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꼬락서니는 마치 오 년 동안 자신이 장님이 된 줄 알고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 너무 큰 모자를 쓰고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달은 물기를 촉촉이 머금은 채 하늘에 떠 있었다. 방금 세탁기에서 꺼낸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나온 종이 한 뭉치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다림질을 해야, 간신히 그것이 쇼핑 목록인지 오 파운드 지폐인지를 분간할수 있는 그런 꼬깃꼬깃한 종이들 말이다.

그는 BBC에 전화를 걸어서 팀장에게 연결해달라고 부탁했다.
“아, 안녕하세요, 아서 덴트입니다. 저, 육 개월 동안 결근을 해서 죄송한데요. 그동안 제가 좀 돌았었어요.”
“오, 걱정할 것 없네. 아마 그런 일일 거라고 생각했었지. 여기서는 늘 있는 일이니까. 그럼 언제부터 다시 출근할 수 있나?”
“고슴도치들이 동면을 시작하는 게 언제죠?”
“아마 봄쯤일걸.”
“그때쯤 뵙죠.”
“좋았어.”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과잉 체지방을 황금으로 바꾸는 법을 발견했어.”

“그대의 땋아 내린 머리카락들이 모조리 풀려 / 한 올 한 올이 빳빳이 서리라 / 불안한 고슴도치의 가시들처럼”

“아주 굉장히 특별한 이유로 당신이 내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당신은 모르지만, 나도 그쪽한테 아주 중요한 사람이고 말이죠. 하지만 갈 길이 겨우 오 마일밖에 남지 않은 데다, 내가 멍청한 바보 천치라서 화물 트럭에 치이지 않고는 방금 처음 만난 사람한테 아주 중요한 말을 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서 그 모든 게 다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되겠어요……그러면 내가…….”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말을 멈추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앞을 봐요!”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이런 망할!”
그는 수백 대의 이탈리아 세탁기들을 싣고 있는 독일 화물 트럭 측면에 충돌하는 사태를 간신히 면했다.
“내 생각에는…….” 그녀는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쉰 후 이렇게 말했다.
“제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저한테 뭐 마실 거라도 한 잔 사셔야 할 거 같네요.”

영국에는 끈질기게 사라지지 않는 특유의 정서가 있다. 바로 샌드위치를 어떤 식으로든 흥미진진하고 매혹적이고 먹을 때 기분좋게 만드는 것은 죄악이며, 그건 오로지 외국인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생각이다.
‘되도록 말라빠지게 만들라’는 게 집단적인 국민 의식에 깊이 박혀 있는 요리 수칙이었다. “되도록 고무처럼 만들어라. 햄버거를 굳이 신선하게 보관해야 한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 물로 씻도록 하라.”

햇살이 옥상의 정원들에 내리쬐었다. 건축가들과 배관공들의 머리 위에도 내리쬐었다. 변호사들과 강도들 머리 위에도 내리쬐었다. 피자 위에도 내리쬐었다. 부동산 중개업자의 명세서 위에도 내리쬐었다.

그도 태평양을 바라보았다. 해변을 따라 달리는 도요새가 몇 마리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있었다. 모래 속에 묻어둔 먹이가 방금 파도에 쓸려갔는데, 발이 물에 젖는 건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도요새들은 굉장히 똑똑한 스위스 사람들이 만든 기계처럼 괴상하게 팔짝팔짝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쑤시개의 중간 부분을 손으로 잡는다. 뾰족한 부분을 입 속에서 촉촉하게 적시도록 한다. 이빨 사이의 공간에 삽입하고, 뭉툭한 부분을 잇몸에 대도록 한다. 부드럽게 넣었다 뺐다 하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러니까.” 정신 멀쩡한 윙코가 말했다. “이쑤시개 상자에다가 사용설명서를 붙일 만큼 제정신을 잃어버린 문명이라면, 그런 문명 속에서 더 이상 우리가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니까 투표를 해서 도마뱀을 뽑았단 말이야?”
“오, 그럼.” 포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당연하지.”
“하지만.” 아서는, 다시 큰 걸 하나 터뜨리기로 작정했다. “왜?”
“왜냐하면 도마뱀들한테 표를 던지지 않으면, 잘못된 도마뱀이 정권을 잡을까 봐 그렇지.” 포드가 말했다.

그들은 경이에 차서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를 바라보았고, 천천히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온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궁극적으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펜처치가 한숨을 쉬었다. “맞아요.” 그녀가 말했다. “저거였어요.”
그들은 족히 십 분 동안 글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그제야 두 사람의 어깨 사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마빈이 곤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로봇은 이제 더 이상 고개를 들 수도 없었고, 아직 메시지를 읽지도 못했다. 그들은 마빈의 고개를 들어 올려주었지만, 그는 자신의 사각 회로가 거의 다 망가졌다도 투덜거렸다.
그들은 동전을 찾아서 그를 부축해 유료 망원경 앞으로 데리고 갔다. 마빈은 투덜거리면서 그들을 욕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마빈이 글자 하나 하나를 차례대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첫 번째 글자는 ‘불’이었고, 두 번째 글자는 ‘편’이었고, ‘을’이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는 한 칸이 떨어져 있었다. ‘끼’다음에는 ‘쳐’. 마빈은 잠시 쉬고 휴식을 취했다.
몇 분 후 그들은 다시 글자를 읽기 시작했고, 마빈이 ‘드’, ‘려’까지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다음 글자는 ‘서’였다. 마지막 단어가 길어서, 마빈은 그 단어에 도전하기까지 한 번은 더 쉬어야 했다.
그 단어는 ‘죄’로 시작했고 다음에는 ‘송’이었다. 그리고 ‘합’.
마지막으로 숨을 돌린 후, 마빈은 힘을 내어 마무리에 도전했다.
그는 ‘니’라는 글자와 마침내 ‘다’를 읽었고, 휘청거리며 아서와 펜처치의 품에 쓰러졌다.

“이 바다 밑바닥에 침몰한 배가 당신이 백 퍼센트 침몰 안 한다고 백 퍼센트 장담한다고 말했던 그 배가 맞다고 백 퍼센트 장담한단 말이죠?”

현재가 정말로 궁핍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그리고 그 이유가 저 이기적인 미래의 약탈꾼 녀석들이 똑같은 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고 나서야, 모든 사람들은 모든 아오리스트 막대 하나하나와 그걸 만드는 끔찍한 비법이 완전히, 영구히 폐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이는 자신들의 할아버지와 손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물론 자신의 할아버지의 손자들, 자기 손자들의 할아버지를 위한 것이었다.

사실 빛의 속도를 넘어설 수는 없다.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여행하는 것은 없다. 나쁜 소식 정도라면 예외가 될 수 있을까. 나쁜 소식은 자신만의 특별한 법칙을 따르는 법이다.

“인생을 살면서 제가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트리시아가 말했다. “절대로 가방을 가지러 되돌아가지 말라는 거예요.”

조그마한 플라스틱 렌즈를 눈에 살살 집어넣으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살아가면서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가방을 가지러 되돌아가서는 안 되는 때가 있고 그래야 하는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두 가지 경우를 구분하는 법은 아직 배우지 못했다.

그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얼굴들을 지나쳐갔다. 그들은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너무 말쑥하게 단장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너무나 죽어 있었다. 저 멀리 자기가 아는 사람을 본 겉 같아서 인사를 하려고 달려가 보면, 항상 뭔가 다른 사람이었다. 자신이 아는 그 누구보다도 훨씬 더 단정한 헤어스타일에 위압적이고 결단력 있는 모습의 사람이었다.

“그건 하나의 미래죠.” 할이 말했다. “당신이 그걸 받아들이면, 그건 당신의 미래에요. 당신은 다차원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이 순간으로부터 모든 방향으로 헤어릴 수 없이 많은 미래들이 뻗어나가고 있다고요. 또 지금 이 순간에서부터, 그리고 또 지금 이 순간에서부터. 수십억 개의 미래들이, 매 순간마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겁니다! 가능한 모든 전자들의 가능한 모든 위치가 급속히 증대하면서 수십억 개의 가능성으로 변하는 거죠! 수십억 개, 그리고 또 수십억 개의 반짝거리며 빛나는 미래들!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방의 왼쪽 편에서는 은하계 전역에서 현장 연구자들이 보내는 보고서들이 서브-에서-넷에 모아져서 곧바로 부편집자들의 사무실 네트워크로 입력되었고, 거기에서 괜찮은 부분은 몽땅 비서들에 의해 잘리게 된다. 왜냐하면 부편집자들은 점심식사를 하러 나가고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원고는 법무 팀이 있는 건물의 나머지 반쪽――에이치 모양 건물의 다른 한쪽 다리 말이다――으로 쏘아 보내진다. 법무 팀은 남은 원고 중에서 아직 조금이라도 괜찮은 부분을 잘라낸 뒤, 중역 편집자들의 사무실로 다시 날려 보내는데, 그들 역시 점심 먹으러 나가고 없다. 그래서 편집자들의 비서들이 그걸 읽어보고는 시시하다고 말한 뒤 대부분의 남은 원고를 잘라내 버린다.
편집자들 중 누군가는 마침내 점심식사를 마치고 비틀거리며 들어오면, 그들은 이렇게 소리 지른다. “X――X는 문제의 현장 연구자의 이름이다――가 젠장맞을 은하계 반대편에서 보내온 이 시시껄렁한 잡소리가 다 뭐하자는 거야? 이 매가리 없는 설사 같은 게 녀석이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원고라면, 그 젠장맞을 가그라카카 마인드 존에서 공전 주기를 세 번이나 꽉 채워 보낼 필요가 뭐가 있어? 그렇게 사건들이 수도 없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말이야. 활동 경비를 없애버려”
“원고는 어떻게 할까요?” 비서가 묻는다.
“아, 네트워크 상에 발표해. 거기도 뭔가 있기는 해야 할 테니까. 난 머리가 아파서 집에 가야겠어.”
그래서 편집된 원고는 법무 팀을 돌며 마지막으로 난도질과 화형을 거치고 나서 다시 이곳으로 내려 보내지며, 여기서 원고는 은하게 어디에서건 즉시 검색할 수 있도록 서브-에서-넷을 통해 방송된다. 그 과정은 방의 오른쪽에 있는 터미널들에 의해 모니터되고 통제되는 장비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건 다른면에선 멀쩡하던 사람이 정치 고관만 되면 늘 생기는 일종의 정신 이상적 심리 차폐를 역으로 뒤집어 처리한 프로그래밍 기술이었다.

그는 은하계의 동쪽 경계로 향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거기에서는 지혜와 진실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사제들과 선지자들과 점쟁이들, 그리고 배달 전문 피자집――신비주의자들은 거의 대부분 요리를 전혀 못하니까――의 행성인 하와리우스 행성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그녀는 아서에게 복사물을 건넸다.
“이게, 어, 이게 그러니까 당신의 충고입니까?” 아서가 자신 없이 복사물들을 뒤적이며 말했다.
“아냐.” 노파가 말했다. “이건 내가 살아온 이야기야. 알겠지만, 어떤 사람이 충고를 하던 간에, 그 충고의 질은 그 사람이 실제로 살아온 삶의 질에 견주어 판단해야 하는 거야. 이제 이 문서를 죽 훑어보면, 내가 중요한 결정들은 모두 잘 보이라고 밑줄을 쳐놓은 게 보일거야. 그것들은 다 색인이 되어 있고 앞뒤로 참조가 가능해. 알겠지? 내가 제안할 수 있는 건 다만, 내가 내린 결정과 정 반대의 결정을 내린다면, 아마도 인생의 말년을…….”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허파 가득 숨을 들이켜고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이런 냄새 나는 낡은 동굴에서 보내진 않을 거야!”

거기서는 또한 굉장히 달고 끈적끈적한 다양한 초콜릿 케이크를 사서 수도자들 앞에서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그것 때문에 대부분의 수도자들은 이제 사라져버리고 없다.

“내가 마흔 번의 봄, 여름, 가을을 장대 위에 앉아서 알아낸 것을 그런식으로 말해줄 거라고 생각하나?”
“겨울에는요?”
“겨울?”
“겨울에는 장대 위에 앉아 있지 않나요?”
“내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장대에 앉아 보낸다고 해서 내가 바보인 건 아니지. 겨울에는 남쪽으로 간다네. 바닷가에 별장을 가지고 있거든. 굴뚝에 앉아 있지.”
“여행자들에게 해줄 충고라도 있나요?”
“응, 바닷가에 별장을 가지게.”
“알겠어요.”

“바닷가 별정이라고 해서 꼭 바닷가에 있어야 할 필요도 없어. 물론 최고로 좋은 것들은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모이고 싶어 하거든.” 그가 말을 이었다. “경계 상황에 말이야.”
“그래요?” 아서가 말했다.
“땅과 물이 만나는 곳. 흙과 공기가 만나는 곳. 육체와 정신이 만나는 곳. 공간과 시간이 만나는 곳. 우린 한 쪽에서 다른 한쪽을 보는 걸 좋아하지.”

“자넨 자네가 보는 걸 보기 때문에 내가 보는 것을 볼 수 없어. 자넨 자네가 아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아는 것을 알 수 없어. 내가 보고 내가 아는 것은 자네가 보고 자네가 아는 것에 보태질 수가 없어. 왜냐하면 같은 게 아니니까. 그건 자네가 보고 자네가 아는 것을 대신할 수도 없어. 왜냐하면 그건 자네 자신을 대신하는 게 될 테니까.”

“아, 맞아.” 노인이 말했다. “여기 자네를 위한 기도가 있네. 연필 있나?”
“네.” 아서가 말했다.
“이런 거야. 이제 보자고. ‘제가 알 필요가 없는 것들로부터 저를 보호하소서. 제가 알아야 할 모르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도록 저를 보호하소서. 제가 알지 않기로 결심한 것들에 대해 알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모르도록 저를 보호하소서. 아멘.’ 이거야. 어쨌거나 이건 자네가 속으로 조용히 기도하는 바 아닌가. 그러니 내놓고 기도하는 게 더 좋을 거야.”
“음, 저, 고맙습니다.” 아서가 말했다.
“그것과 짝을 이루는 굉장히 중요한 기도가 하나 더 있어. 그러니까 이것도 적는 게 좋을 거야.” 노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좋아요.”
“이거야. ‘주여, 주여, 주여…….’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이 부분을 넣는 게 좋아. 이왕이면 확실하게 하는 게 좋잖아. ‘주여, 주여, 주여. 위의 기도의 결과로부터 저를 보호하소서. 아멘.’ 이거야.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이 마지막 부분을 빼먹어서 생기지.”

자연스러움. 그건 교묘한 말이었다.
그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 예컨대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산다거나 빨간 불에 멈춰 선다거나 초당 삼십이 피트의 속도로 떨어진다거나 하는 일들이 그저 자기 세계의 습관에 불과했으며 다른 곳에서도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는 오래 전에 깨달았다. 하지만 바라지 않는다는 것――그건 정말로 자연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그건 숨을 안 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모든 것은 창립 멤버 중 몇 명이 정착을 하고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서 생겼다. 그러는 동안 그와 다른 사람들은 계속 현장에 있으면서 조사를 하고 히치하이크를 하면서 악몽의 법인으로 냉혹하게 변해버린 <안내서>와 그것이 차지하게 된 괴물 같은 건축물에게서 점점 더 소외돼갔다. 그 안 어디에 꿈들이 있었나? 그는 건물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회사 변호사들, 지하층을 차지하고 있는 ‘직공들’, 모든 부편집자들과 그들의 비서들, 그 비서들의 변호사들과 그 비서들의 비서들, 변호사들의 비서들, 그 중 최악으로, 회계사들과 마케팅 부서들을 생각했다.

한 행성에서만 십오 년씩이나 조사를 해서 기사를 보냈는데, 녀석들은 단 두 마디로 줄여버렸지. “대체로 무해함.”

다른 히치하이커들은 타월을 색다른 방식으로 변형시키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해서, 온갖 종류의 비밀 도구들과 설비들, 심지어 컴퓨터 장치들까지 직물 안에 짜 넣었다.

그 빌딩은 프로그스타 공격 이후 완전히 새로 지어지면서 단단하게 강화되었고, 아마도 그 업계에서 가장 중무장한 출판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법인 위원회에서 디자인한 모든 시스템에는 항상 뭔가 약점이 있었다. 창문을 디자인한 기술자들은 그 창문들이 건물 안에서 짧은 사정거리에서 날아오는 로켓에 맞는다는 것은 예상하지 않았고, 그래서 창문이 깨졌던 것이다.

“전화 끊어, 새끼야! 네가 무슨 번호를 원하든, 어느 내선에서 전화를 걸든 내 알 바 아니야. 가서 불꽃놀이나 네 엉덩이에 쑤셔 박으라고! 이이이야아아! 우 우 우! 꽥꽥!”

물론, 칼들 중에서도 지존은 고기를 써는 칼이었다. 이는 빵 써는 칼처럼 칼질을 하는 대상을 뚫고 지나가면서 의지를 행사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대상과 협력해야만 했다. 힘을 합쳐 고기의 결을 따라가며, 고깃덩어리에서 얄팍하게 접히며 썰려나가는, 최고로 훌륭한 질감과 투명감을 지닌 고기 조각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트릴리언은 아서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어조를 싹 바꾸어 이렇게 말했다. “너도 이젠 책임을 좀 져야 할 때가 됐어, 아서.”

그는 여자아이에게로 걸어가서 안아주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단다.” 그가 말했다. “미안하구나. 아직 널 알지도 못하는걸. 하지만 몇 분만 시간을 주겠니.”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찌무룩하고 불안한 납빛 하늘은 묵시록에 나오는 4인의 기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 나와도 정신 나간 멍청이들처럼 보이지 않을 만한, 그런 하늘이었다.

“비입니다.” 새가 말했다. “아시겠어요? 그냥 비지요.”
“비가 뭔지는 나도 알아요.”
비가 겹겹이 겹쳐진 장막처럼 밤공기를 가르며 세차게 떨어지고 있었고, 그 사이로 달빛이 비쳐 들어오고 있었다.
“그럼 비가 뭡니까?”

“어떻게, 어, 어떻게 이 훌륭한 물건들의 값을 치르시는지요?”
지도자가 다시 킬킬거리고 웃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를 씁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트리시아는 다시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그 회사는 특히 ‘아무나’한테 카드를 발급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가끔 이럴 때는, 사실 공간-시간의 결이라든가 다차원적 개연성의 도상의 심상한 완전성이라든가 온갖 종류의 총체적 혼란에 발발한 파동 형태의 잠재적인 붕괴 가능성이라든가 내 머릿속을 괴롭히던 온갖 문제들이 그렇게 걱정할 가치가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아마 저 덩치 큰 남자가 한 말이 옳다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가봐. 그냥 될 대로 되라 마음을 놓으라고 하더군.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느냐고? 될 대로 되라 하는 거지.”


<그리고 한가지 더> - 책갈피


“감정이라고? 너는 어떻게 머리도 하나밖에 없는 주제에 그렇게 멍청할 수가 있냐?”
“나는 멍청한 게 좋아. 너는 상황을 명료하게 보잖아. 멍청하다는 건 햇살을 통해서 곁눈질로 흘겨보는 거랑 비슷하니까.”
포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젖은 수건으로 때리는 것처럼 왼쪽 두뇌의 구체를 흔들어 놓았다. “햇살? 대체 무슨 헛소리야? 멍청하다는 건 무지와 암흑이야.”

“한동안 소아시아를 돌아다니면서 약간의 공포를 불어넣으려고 해봤는데, 이제 사람들은 페니실린을 갖고 있고, 심지어 가난한 사람들도 읽을거리를 가지고 있더란 말이요. 그러니 신들을 어디다 쓰겠소?”

홍차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좀 좋아졌다. 홍차가 없으면 아일랜드 사람은 사족을 못 쓰는 법이다.

“사전적 의미로 사랑이 무슨 뜻인지는 말해줄 수 있지요. 동의어도 다 말해줄 수 있고요. 그리고 엔도르핀과 시냅스와 근육의 기억 같은 얘기도 해 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심장에서 울리는 열정의 메아리는 내게도 미스터리랍니다. 나는 컴퓨터에요, 아서.”

과거에 대한 그 문장 기억나? 그건 벌써 과거에 있잖아. 그 문장이 ‘과거’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거 말고는, 거의 기억도 안 나네. 과거는 기억들로 이루어지고, 기억은 이미 죽은 것들이라 상처를 줄 수가 없다고. 뭐랄까 뾰족한 막대기 구름 같은 것처럼 말이야.

“사람들은 편안함을 돈 주고 산단다.” 그녀는 옥수수 베는 낫으로 돼지 멱을 따면서 이렇게 말했다. “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면, 네가 파는 건 뭐든지 살 거야.”
지혜와 동맥에서 뿜는 피의 조합은 불가항력적이었고, 힐먼은 할머니의 가르침을 절대 잊지 않았다.

옛날 것보다 훨씬 낫고 고장 나면 알아서 제조사에 연락을 취하는 인공 바이오 하이브리드 골반의 도움을 받아 넓은 영지를 걸어 다니곤 했다.
힐먼이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왼쪽 골반이 일본에 전화를 넣을 지경이었다.

“여기 속아 넘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요”라고 관광위원회에서 코웃음을 쳤다. “몹시 개연성이 없어요.” 이 말은 당연히 전체 사업이 엄청난 성공을 거둘 것임을 보장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창문도 필요하다고요?” 눈썹이 올라가다 못해 아예 날아갈 정도로 놀라더니, 십장이 물었다. “그런 건 육 개월 전에 미리 말씀해 주셨어야죠. 미리 알기만 했으면 우리 애들이 설치했을 거 아닙니까. 지금 창문을 설치하려고 하면, 벌써 현장에 와 있는 배관공들 일을 좀 보류해야 해요. 그러면 배관공들 다음에 일하는 도색업자들이 싫어할 거고요. 게다가 도색업자 중에는 배관공하고 결혼한 친구들이 있어서, 가정불화가 일어날 겁니다. 그리고 일하는 동안 현장에서 마사지해주는 인력이 부족해서, 현재 우리 애들 어깨에 극심한 젖산 축적이 일어나고 있단 말이에요. 어쨌든, 뭐 선생님이 물주니까 돈은 마음대로 쓰세요. 제 말은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요구해서 프로젝트 전체를 경제적 자유낙하 상태로 만들 게 아니라, 좀 편할 때 미리미리 말했으면 좋았지 않았겠느냐 이거죠.”

“하지만 이건 빵이잖아.”
“그래서?”
“오후 세 시 이후에 탄수화물? 너 미쳤냐?”
“그냥 빵 껍데이 하나만 먹을게. 그게 다야.”
티드필은 개인 트레이너와 미용 관리사들이 다 볼 수 있게 빵을 높이 치켜들었다. “빵 껍데기 하나래. 그게 다란다. 이 빵 껍데기 하나에 설탕 몇 숟가랑이 들었는지 알아? 누구 아느냐고?”
“두 숟가락.” 펙스가 용기를 내어 보았다.
“일곱이야!” 티드필이 빽 소리를 질렀다. “일곱. 세 시 이후에 이걸 먹느니 엉덩이에 차라리 설탕 펌프를 꽂아 넣는 게 낫다고.”

우리는 단 하루를 함께 보냈는데, 그 하루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었어.

“당신도 썩 괜찮은 친구요, 비블브락스 씨. 우리가 원하는 건 뭐든, 그 멋진 우주선으로 가져다주니까. 가끔은 당신이 아예 안 오면, 우리도 필요한 게 아예 없을 거 같기도 하다니까.”

“당신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죽었다고 생각했던 연쇄살인범이 되돌아와 가슴이 제일 큰 여자애만 빼고 다 죽이기 전에 잠시 갖는 짧은 휴지기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 여자애는 다음 해에 나오는 속편에서 제일 먼저 죽는다.”

“엔딩이라는 건 없다. 그렇게 따지면 시작도 없다. 모든 건 중간이다.”

교과서적인 인간 > 지독한 개자식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온 영어 속어와 농담

Closed book : 닫힌 책 (알 수 없는 일)
bee’s knees : 대단히 훌륭하다는 뜻의 속어
now what : 자, 이제 뭘 하지?
oh, well : ‘오, 이거 원’정도의 의미로 실망 낭패의 감정을 전달한다.
out of thin air : 희박한 대기 속에서 ‘느닷 없이’를 뜻하는 관용어.
lose one’s mind : 정신을 잃다. ‘미치다, 돌아버리다.’를 뜻하는 관용표현.
Silver-Tongued : 입담이 매끄러워 설득력이 있다.
STD(Sexually Transmitted Disease) : 성행위로 감염되는 질병
crap out :똥을 싸다. 혼비백산하다.
stiff upper lip : 사립학교 출신의 영국 지식인층은 발음할 때 윗입술을 잘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빳빳한 윗입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je ne sais quoi : 쥐느세쿠아. 프랑스어로 ‘나도 뭔지 몰라’라는 뜻.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뜻한다.
paddy : 패디. 패트릭의 애칭으로 영국 영어에서 아일랜드인을 폄하해 부르는 말이다.
begorrah : 베고라! 아일랜드 특유의 감탄사 신으로 부터(by God)의 완곡한 표현. 예) 날씨 참 좋네, 베고라!
보드라운 날씨를 하나님께 감사. 아일랜드식 표현
froody : 프루디는 grand; wonderful; cool과 동의어이다. 멋지다. 히치하이커 위키피디아(http://hitchhikers.wikia.com/wiki/Froody) 에는 The quality of being a frood.라고 나와있다.
Oh really, O’Reilly? : 오리얼리, 오라일리? ‘오, 그러셔, 이 친구야?’ 정도의 뜻으로 비꼬는 의미가 담겨 있는 말.
jumentous : ‘말 오줌 냄새가 나는’이라는 뜻의 형용사. 사전을 찾아보니 jument는 불어이고, 영어로는 mare(암말)을 뜻한다.
Go screw yourself : ‘엿 먹어’ 정도에 상응하는 욕. go f*ck yourself을 완화한 표현. f*ck you!의 다른 표현이다.
fruity pants: 영국 영어에서 여자 같은 동성애자를 폄하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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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방랑자의 이야기.
    월풍도원에선 기부를 받습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이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문제는 별 다를 바 없나 보다.
국부론에 쓰인 얘기가 요즘에도 통용되기 때문이다.
예전엔 경제학 얘기만 나오면 머리가 아팠는데 국부론을 읽고서 좀 나아졌다.
이런 좋은 서적을 한국어로 읽어볼 수 있도록 잘 번역해주신 김수행 교수님께 고마운 마음이다.

국부론은 경제학 고전이라 널리 알려졌으나, 인간 삶과 문화에 대해 폭넓게 다룬다.
예를 들면 종교의 발생에 대해서라든지, 인간 문명의 발전 과정 등 재미난 이야기가 많다.
예를 들자면 그 당시엔 인도의 힌두교를 젠투(gentoo)라고 불렀다는 내용이 흥미로웠다. 젠투라면 펭귄 이름이고 리눅스 배포판 중 하나로만 생각되는데, 하나의 단어가 이런 다양한 뜻을 지녔다는 게 참 재미있다.
만약 이 책이 숫자와 통계들로만 가득한 경제학책이었다면 읽다가 중간에 치워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부론에 담긴 내용을 보자면 인문학 고전이라고 봐도 좋겠다.
경제 분야에 전문지식이 없더라도 읽는 데 무리가 없으니 말이다.
경제학에 지독한 난시 상태에서 국부론이라는 렌즈로 경제를 바라보니, 전보다 선명히 보인다.


국부론 책갈피

분업의 결과 동일한 수의 노동자들이 수행할 수 있는 작업량이 이처럼 크게 증하가는 원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정 때문이다. 첫째, 전업(專業)으로 인하여 노동자 각자의 숙련도가 높아지고, 둘째, 한 가지 일로부터 다른 일로 옮길 때 보통 허비하게 되는 시간이 절약되고, 셋째, 노동을 수월하게 해주고 단순하게 해주는 많은 기계의 발명으로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의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양치기가 양털을 깎을 때 쓰는 큰 가위와 같은 매우 단순한 도구를 만드는 데도 얼마나 다양한 노동이 필요한가를 생각해 보자. 광부•광석을 녹이는 용광로를 만드는 사람•용광로용 목재의 벌채자• 용광로용 석탄을 때는 사람•벽돌제조공•벽돌 쌓는 사람•용광로를 지키는 사람•기계설치공•단조공•대장장이 등 모두가 큰 가위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그들의 상이한 기술들을 결합시켜야만 한다.

인간은 항상 다른 동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단지 그들의 선심에만 기대해서는 그 도움을 얻을 수가 없다. 그가 만약 그들 자신의 자애심(自愛心: self-love)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발휘되도록 할 수 있다면, 그래서 자기가 그들에게 해주기를 요구하는 일을 그들이 자기에게 해주는 것이 그들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들의 도움을 얻으려는 그의 목적은 더 효과적으로 달성될 것이다. 타인과 어떤 종류의 거래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렇게 제의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나에게 주시오,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될 것이오."

분업은 시장의 크기에 의해 제한된다.

자연 가격은 실제 가격이 그것을 향해 움직이는 중심가격이다.

독점가격은 어떤 경우에도 구매자들로부터 짜낼 수 있는, 또는 구매자들이 주는 데 동의할 것으로 가정되는, 최고가격이다. 자연가격은 판매자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동시에 그들의 사업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최저가격이다.

노동자는 가능한 한 많이 받기를 원하며, 고용주는 가능한 한 적게 주기를 원한다. 노동자는 노동임금을 올리기 위해 단합하는 경향이 있고, 고용주는 노동임금을 낮추기 위해 단합하는 경향이 있다.

느동자들의 단합은, 공격적인 것이든 방어적인 것이든, 항상 세상의 이목을 끈다. 왜냐하면,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언제나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우고, 때로는 매우 놀라운 폭행과 폭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절망하고, 그리고 절망적인 사람처럼 온갖 황당하고 제멋대로인 행동을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은 고용주를 위협해서 자기들의 요구를 곧바로 받아들이도록 하거나 아니면 굶어죽기 때문이다.

일부 노동자들은, 만약 그들이 나흘 동안에 일주일간의 생활물자를 벌 수 있다면, 나머지 사흘은 놀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이와는 반대로, 노동자들은 성과급제(成果給制) 임금에 의해 후한 보수를 받을 때 과로하기 쉽고, 수 년 안에 자신의 건강과 육체를 망치기 쉽다.

정신적인 노동이든 육체적인 노동이든 간에 계속해서 며칠간 많은 노동을 하고 난 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쉬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데, 이 욕구는 폭력 또는 어떤 강력한 필요성에 의해 저지되지 않는 한 거의 억제할 수 없다. 이 휴식에 대한 욕구는 본성의 요구이므로, 어떤 방식으로든, 때로는 편히 쉬는 것에 의해, 때로는 유흥과 오락에 의해, 그 요구는 충족되어야 한다. 그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그 결과는 흔히 위험하고, 때로는 치명적이며, 거의 언제나 조만간 특유한 직업병을 유발하게 된다.

식료품의 값이 싼 해에는 임금이 상승한다.
식료품이 비싼 해에는 임금이 낮다.

(기존의 법과 제도하에서 가능한) 최대의 부를 이미 획득한 나라, 각 사업분야마다 사용될 수 있는 최대의 자본량이 이미 사용된 나라에서는 통상의 순이윤율이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거기로부터 지불될 수 있는 통상의 시장이자율도 너무 낮으므로, 매우 부유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자기의 화폐이자로 살아가기가 불가능하다. 중소 규모의 재산을 가진 사람은 모두 스스로 자기 자본을 운용해야 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사업가가 되거나 어떤 사업에 종사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상품가격을 인상시키는 형태에 있어 임금인상은 채무의 누적에서 단리(單利)와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고, 이윤인상은 복리(複利)처럼 작용한다.

다음의 다섯가지 사정들은 어떤 직업에서는 금전상의 수익이 적은 것을 보상해 주고, 다른 어떤 직업에서는 금전상의 수익이 큰 것을 상쇄시키는 주요한 사정들이다. 첫째, 직업 자체가 사람들을 유쾌하게 하는가 불쾌하게 하는가. 둘째, 그 직업을 습득하기가 쉽고 비용이 저렴한다,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드는가. 셋째, 취업이 안정적인가 불안적적인가. 넷째,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신임(信任), 곧 그의 책임이 큰가 작은가. 다섯째, 그 적업에서 성공가능성이 있는가 없는가이다.

진보된 사회 상태에서는 타인이 오락으로 추구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매우 가난하다.

모든 사람들은 이득의 기회를 과대평가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실의 기회를 과소평가하는데, 상당히 건강하고 원기 좋은 사람치고 손실의 기회를 그 정당한 기대치보다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동업조합이 있는 업종 대부분에서 도제수업 연한은 유럽 전체에서 옛날에는 대개 7년이었던 것 같다. 이러한 동업조합 모두를 옛날에는 유니버시티(university)라고 불렀는데, 이 용어는 사실상 어떤 동업조합에 대해서도 붙일 수 있는 정확한 라틴어 이름이었다.

자기 자신의 노동에 대한 소유권은 기타 모든 재산권의 근본적인 토대이며, 따라서 가장 신성불가침의 것이다.

보통의 기계적인 직업에서는 며칠의 교육으로 충분하다. 물론 손의 기교는 보통 직업에서도 많은 실습‧경험 없이는 얻어질 수 없다. 그러나 젊은 사람이 처음부터 직인으로서 일하고, 따라서 그가 하는 작업에 따라 보수를 받고, 그 대신 숙련과 경험의 부족으로 때때로 못쓰게 만다는 원료에 대해 배상하도록 한다면, 그는 훨씬 더 부지런하고 주의깊게 실습할 것이다.

도시의 주민들은 한 장소에 집합하고 있으므로 쉽게 단결할 수 있다. 따라서 도시에서 행해지는 가장 보잘것없는 직업까지도 동업조합을 결성한다. 동업조합이 결성되지 않는 직업에서도 동업조합의 정신, 즉 외부인에 대한 질투나, 도제를 받아들이거나 직업상의 비법을 전달하는 것에 대한 혐오가 일반적으로 지배하며, 이러한 동업조합의 정신은 규칙으로써 금지할 수 없는 자유경쟁을 자발적인 협의‧동의에 의해 저지할 것을 가르쳐 준다.

물론 농부는 도시에 사는 기계 노동자보다 사교에 덜 익숙하다. 농부의 목소리와 말은 더 투박하고, 그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의 이해력은 사물의 다양한 변화를 고려하는 데 습관이 되어 있으므로, 아침부터 밤까지 한두 가지 매우 간단한 작업의 수행에 모든 신경을 쏟고 있는 기계 노동자의 이해력보다 일반적으로 훨씬 더 우수하다.

동업조합법은 도시 주민들로 하여금 자기 나라 사람들과의 자유경쟁을 걱정하지 않고 자기들의 가격을 인상할 수 있게 해주지만, 기타 규정들은 외국인들과의 자유경쟁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준다. 위의 두 가지 방법에 의한 가격인상은, 결국 이런 독점의 결성에 반대한 적이 없는 농촌의 토지소유자‧차지농업자‧노동자에 의해 지불된다.

인쇄술의 발명 이전에는 학자(scholar)와 거지(beggar)는 거의 동의어(同義語)였다.

농업이 조잡하게 이루여졌던 초기에는, 당시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황무지는 가축들을 위해 방치되었다. 빵보다도 식용육이 더 많았으며, 따라서 빵을 구하기 위해 마우 심각한 경쟁이 있었고, 빵의 가격도 높았다.

야만민족들 사이에는 연간 노동의 1% 또는 그보다 조금 더 많은 것으로써 그들의 대부분을 만족시킬 만한 의복‧주거를 공급하는 데 충분하다. 나머지 99%는 흔히 모두 그들의 식량을 마련하는 데 쓰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토지의 개량‧경작으로 한 가족의 노동이 두 가족에게 식량을 공급할 수 있을 때, 그 사회의 절반의 노동은 사회 전체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데 충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나머지 반, 또는 적어도 그들 중의 대부분은 다른 물건을 마련하는 일, 다시 말하면 인간의 다른 욕망‧기호를 만족시키는 일에 종사할 수 있다.

효용(utility)‧아름다움(beauty)‧희소성(scarcity)이란 성질은 귀금속의 높은 가격, 즉 귀금속이 어디에서나 다량의 다른 재화와 교환될 수 있는 것의 본원적인 토대이다.

시장에 출하되는 값싼 상품은 총량에서 비싼 상품보다 많을 뿐만 아니라 총액에서도 크다.

가격이 비용을 보상할 수도 없는 그런 생산물을 위한 토지개량은 반드시 손실을 야기한다. 만약 농촌의 완전한 개량‧경작이 최대의 공공이익이라면(사실 그렇지만), 모든 종류의 천연생산물의 가격상승을 공공의 재난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며, 최대의 공공이익의 필연적인 징조이자 동반자로 간주해야 한다.

어떤 특정 상품, 예를 들면 가축‧가금‧모든 종류의 수렵물 등의 화폐가치가 곡물의 화폐가치에 비해 싸다는 것은 빈곤의 가장 결정적인 증거이다.

세 계급 중에서 지주계급은 스스로 노동도 하지 않고, 조심도 하지 않고, 마치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것처럼 자기의 의도‧계획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수입을 얻고 있는 유일한 계급이다. 그들의 상황은 편안하고 안전하기 때문에 자연히 나태하게 되며, 따라서 그들은 어떤 국가 정책의 결과를 예견‧이해하는 데 필요한 통찰력을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사회가 번영하는 시기예는 노동자계급에 비해 토지 소유자계급이 더 큰 이익을 얻으며, 사회가 쇠퇴하는 시기에는 노동자보다 더 코통받는 계급은 없을 것이다. 노동자의 이익이 사회의 이익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회의 이익을 파악할 수도 없고, 자신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 사이의 관계를 인식할 수도 없다. 노동자의 생활상태는 그것에 필요한 견문을 넓힐 여유를 주지 않는다. 더욱이 그의 교육‧관습은, 그가 비록 충분한 정보를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바르게 판단할 수 없게 한다. 그 까닭에 정부의 정책적 논의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는, 다만 노동자의 이러저러한 불평이 그의 고용주에 의해, 노동자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용주 스스로의 목적을 위해, 고무‧선동‧지지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경청되지 않으며 별로 존중되지도 않는다.

상인과 공장주 두 계급 사람들은 일생동안 여러가지 계획‧목표에 몰두하고 있으므로 대부분의 대지주보다 예리한 이해력을 갖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의 이익보다도 자신의 특수한 사업상의 이익을 더 많이 고려하므로, 그들은 판단은 가장 공평한 경우에도(그들의 판단이 모든 경우에 공평한 것은 아니다) 사회의 이익보다는 자기 계급의 이익을 더욱 고려하고 있다. 그들이 대지주보다 나은 점은, 그들이 공공의 이익에 더 밝다는 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익에 대해 지주보다 더 밝다는 데 있다.

유동자본(circulating capital) : 재화를 생산‧제조하는 데, 또는 재화를 구입해서 다시 판매하여 이윤을 얻는 데 사용된다. 이런 방식으로 사용되는 자본은, 사용자의 수중에 그대로 남아 있거나 또는 같은 형태를 띠고 있는 한, 수입이나 이윤을 낳지 않는다.

고정자본(fixed capital) : 토지의 개량에 사용되거나, 유용한 기계‧생산도구의 구매에 사용되거나, 소유주를 바꾸지 않고 또는 더이상 유통하지 않고 수입이나 이윤을 가져다 주는 물건들에 사용될 수 있다.

사회의 총재고도 마찬가지로 세 부분으로 분할된다. 첫째는 직접적인 소비를 위해 보유되는 부분으로, 이것의 특징은 아무런 수입이나 이윤도 낳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고정자본이다. 이것의 특성은 유통하지 않고, 즉 소유주를 바꾸지 않고, 수입이나 이윤을 낳는다는 점이다. 마지막 세번째는 유동자본이다. 이것의 특징은 유통하여 소유주를 바꿈으로써 수입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비교적 안전한 모든 나라에서는,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장의 즐거움이나 미래의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서 자기가 지배할 수 있는 모든 재고를 이용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만일 당장의 즐거움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 재고는 직접적 소비를 위한 재고이고, 장래의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사용한다면, 그것을 보유하거나 그것을 지출함으로써 이윤을 얻을 수 있다. 보유하는 경우는 고정자본이고, 지출하는 경우는 유동자본이다.

고정자본의 유지비 절약은, 노동생산력을 감소시키지 않느다면, 노동을 가동시킬 자금을 증가시키고, 결과적으로 한 사회의 토지‧노동의 연간생산물, 즉 진정한 수입을 증가시킨다.

은행은 자기의 장보가 제공해 주는 증거 이외의 다른 것을 살펴볼 필요 없이, 채무자들의 번성‧쇠퇴에 관해 믿을 만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상황이 번성하는가 쇠퇴하는가에 따라 대개의 경우 상환을 정기적으로 또는 부정기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사업가 자신들의 곤경은, 의심할 여지 없이, 은행측의 이런 신중하고도 필요한 유보적 태도에 의해 직접적으로 조성된 것인데도, 그들은 자기들의 곤경을 나라의 곤경이라 불렀으며, 그리고 나라의 곤경은 전적으로 은행의 무지‧소심함‧좋지 못한 행동애서 비롯된 것이며, 나라를 아름답게 하고 발전시키고 부유하게 하려는 사람들의 용감하고 진취적인 사업을 은행이 충분히, 너그럽게 도와주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업이 사회를 이롭게 한다면, 그 사업에서 경쟁이 더 자유롭고 일반적일수록 사회를 더욱더 이롭게 할 것이다.

자본을 증가시키는 직접적 원인은 근면이 아니라 절약이다.

진보는 때때로 너무나 점진적이어서 가까운 두 시기에는 거의 인식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비록 그 나라가 일반적으로 크게 번영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가끔 일어나는 현상인 특정 산업부문이나 특정 지역의 쇠퇴로 인해, 나라 전체의 부와 산업이 쇠퇴하고 있다는 의심이 가끔 일어나게 된다.

수입이 같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출한다면, 주로 내구재에 지출하는 사람의 장엄함은 계속 증가할 것이고, 매일의 지출은 그 다음날의 지출효과를 보조하고 높이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반대로 곧 소비되어 없어지는 물건에 지출하는 다른 한 사람의 장엄함은 한 기간이 끝날 때도 처음보다 결코 커지지 않을 것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법정 이자율(legal rate)이 최저 시장이자율보다 약간 높아야지 그것보다 훨씬 높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만일 토지 지대가 화폐이자보다 크게 모자라면 아무도 토지를 사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토지의 보통 가격은 곧 떨어질 것이다. 반대로, 토지의 이점이 그 차이를 보상하고도 남는다면 모두 다 토지를 사려고 할 것이고, 따라서 보통의 토지가격은 곧 올라갈 것이다.

자본은 네 가지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 첫째, 그 사회의 해마다의 사용‧소비를 위해 요구되는 천연생산물(rude produce)을 획득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둘째, 그 천연생산물을 직접적인 사용‧소비를 위해 가공하고 제조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셋째, 천연생산물 또는 제조품을 그것이 풍부한 지역으로부터 부족한 지역으로 운송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넷째, 위의 상품들 각각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그때그때의 수요에 맞게 작은 묶음으로 나누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모든 도매업, 즉 도매로 팔기 위해 도매로 사는 것은 세 종류로 분류될 수 있다. 국내 상업, 국내 소비를 위한 대외무역(대외 소비무역 forign trade of consumption)과 중개무역이 그것이다.

사물의 본성상 생필품은 편의품‧사치품에 우선하는 것과 같이, 전자를 생산하는 산업은 후자를 생산하는 산업에 반드시 우선해야 한다.

인간이 만든 제도가 사물의 자연적 경로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도시의 부의 증가와 도시의 성장은 어느 사회에서나 국토‧농촌의 개량‧경작의 결과이며 그것에 비례한다.

사물의 자연적 진행과정에 따르면, 모든 성장하고 있는 사회의 더 많은 자본은 우선은 농업으로 향하고, 다음으로 제조업으로, 마지막으로 외국무역으로 향한다.

장자상속법(長子相續法: law of primogeniture)은 그것이 상속에 의해 분할되는 것을 뱅해했으며, 한정상속제(限定相續制: entail)[상속인을 한정하는 제도]의 도입은 양도에 의해 그것이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방해했다.

화폐 부족하다는 불평보다 더 일반적인 불평도 없다. 화폐는, 포도주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구입할 수단도 없고 그것을 빌릴 만한 신용도 없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구입할 수단이나 신용 중 어느 하나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필요로 하는 화폐나 포도주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첫째 군대의 급여와 식량의 조달 때문에 외국 앞으로 발행된 환어음(수출상이 외국 수입상 앞으로 발행하고 정부가 구매했음)의 내용을 채우는 데 필요한 수출용 재화들을 제조해야 할 것과, 둘째 자기 나라에서 보통 소비되는 수입품의 구매를 위해 필요한 재화를 제조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므로 가장 파괴적인 외국과의 전쟁중에 제조업의 대부분은 종종 크게 번창할 수 있다. 그리고 반대로 평화가 도래할 때 쇠퇴할 수 있다.

데르실리다스(Dercyllidas)가 페르시아의 궁전에 대해 말한 것은 유럽 여러 군주들의 궁전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는 거기에서 많은 화려함을 보았지만 힘은 보지 못했으며, 많은 하인들을 보았지만 군인들을 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나는 공공이익을 위해 사업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실 상인들 사이에 이러한 허풍은 일반적인 것도 아니며, 그런 허풍을 떨지 않게 하는 데는 몇 마디 말이면 충분하다.

어떤 나라가 거대한 자연적인 이점을 거역하면서까지 노력해야 한다고 제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자연적인 것이든 노력으로 획득한 것이든 간에, 아무리 작은 이점이라도 그것을 거역하면서까지 노력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것은 완전한 자유무역을 통해 모든 나라들로 하여금 그들이 생산한 재화를 자기 나라로 가져오도록 장려할 때이며, 마찬가지 이유로, 가장 비싸게 팔 수 있는 것은 자기 나라의 시장이 가장 많은 구매자들로 붐빌 때이다.

제조공은 언제나 자기 노동에 의해 생계를 얻는 데 익숙해 있으나, 병사들은 봉급에 의존한다. 전자는 열성과 근면이 몸에 배어 있으나, 후자는 나태와 방탕이 몸에 배어 있다. 한 종류의 노동에서 다른 종류의 노동으로 직업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것이 나태와 방탕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것보다는 확실히 훨씬 쉽다.

개개인은 때때로 과음 때문에 재산을 탕진하는 수도 있으나, 한 나라가 그렇게 될 염려는 없다. 어느 나라에나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도 있지만, 덜 소비하는 사람이 그들보다 항상 많다.

인류의 지배자들의 폭력‧부정은 오래된 악이며 그 성질상 치유될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인류의 지배자도 아니고 또 지배자로 될 수도 없는 상인‧제조업자들의 비열한 탐욕과 독립정신이, 비록 교정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평온을 교란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것은 매우 용이할 것이다.

돈을 벌기를 원하는 사람은 외지고 가난한 지방으로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수도나 커다란 상업도시로 가려고 한다. 즉, 적은 부(富)가 유통하는 곳에서는 적은 것만을 얻을 뿐이고, 큰 부가 움직이는 곳에서는 그 중의 일부분이 그들에게 떨어질 것으로 알고 있다.

상인적 질투는 국민적 적개심을 자극하고, 또한 상인적 질투와 국민적 적개심은 상승작용을 한다. 양국의 무역업자들은 자신들의 사리(私利)에서 나온 거짓말을 열렬히 확신하고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즉, 상대방과 제한 없는 무역을 행하면 필연적으로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하며, 그 결과 각자는 반드시 파멸할 것이라고.

생활의 절대적 필수품에 대한 이러한 증세(重稅)는 노동빈민의 생활자료를 등귀시키거나, 또는 생활자료의 화폐가격의 등귀에 비례하여 그들의 화폐임금을 증가시키게 될 것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노동빈민이 그들의 자녀를 교육‧양육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감소시킬 것이고, 따라서 그 나라의 인구증가를 억제할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을 경우보다 고용주가 노동빈민을 고용하는 능력을 감소시킬 것이며, 따라서 그 나라의 산업의 발전을 제한할 것임에 틀림없다.

댐을 만들어 물의 흐름을 막을 때, 댐에 물이 가득 차고 나면 마치 댐이 없었던 것처럼 물이 넘쳐 흐른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출을 금지하더라도 이 두 나라가 사용할 수 있는 한도, 즉 그들의 토지‧노동의 연간생산물이 금은을 주화‧식기‧도금‧기타 금은 장식품으로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한도 이상의 금은을 보유할 수는 없다. 이만큼의 양을 가졋을 때는 댐은 이미 채워졌고, 그 뒤에 흘러들어온 물은 넘쳐흐르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곡물이 부족할 때 대중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부족의 곤경을 그 해의 어러 달‧주일 전체에 걸쳐 가능한 고르게 분산시키는 것이다. 곡물상이 이익을 얻으려면 이것을 가능한 한 정확히 예측하도록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어떤 사람도 그것을 정확히 연구하는 데 곡물상과 동일한 이익‧지식‧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상업의 가장 중요한 이 일은 전적으로 그에게 맡겨져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곡물상업은 적어도 국내시장에 대한 공급에 관한 한 완전히 자유롭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현세에서의 생활이나 내세에서의 행복에 관련된 것에 무척 관심이 있기 때문에, 정부는 그들의 편견에 복종할 수밖에없고, 또 사회의 안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제도를 수립할 수밖에 없다. 합리적인 제도가 곡물과 종교라는 이들 두 가지 주요 대상에 대해 수립되지 않는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황금의 나라(Eldorado)를 꿈꾼다.

많은 주민들에게 자신들의 생산물을 이용하여 자신들이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거나, 자신들의 자본‧노동을 자신들이 판단하여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는 것은 인간의 가장 신성한 권리에 대한 명백한 침해다.

로마의 역사에서 주인의 폭력으로부터 노예를 보호하기 위해 행정장관이 간섭한 최초의 시기는 황제가 지배한 시대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우구스투스의 재임시 베디우스 폴리오(Vedius Pollio)가 사소한 잘못을 저지른 노예의 몸을 찢고 연못에 던져 물고기의 먹이가 되도록 했을 때, 황제가 크게 노하여 즉시 그가 소유하고 있던 다른 모든 노예들을 해방시키라고 명했다. 공화정 하에서는 행정방장관이 노예주를 처벌하기는커녕 노예를 보호할 만한 권위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본국에서 박해를 받은 영국의 청교도들은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로 도피하여 그곳에서 뉴잉글랜드의 네 개 주를 건설했다. 아주 부당한 취급을 받았던 영국의 가톨릭교도들은 메릴랜드 식민지를, 그리고 퀘이커교도들은 펜실베니아 식민지를 건설했다. 포르투갈의 유태인들은 종교재판에 의해 박해를 받고 재산을 몰수당해 브라질로 추방된 뒤에 원래 이 식민지에 살고 있었던 유배된 죄인과 매춘부들 사이에 약간의 질서와 산업을 도입하고 그들에게 사탕수수 경작을 가르쳤다. 이 중의 어느 경우든 아메리카에 사람을 거주시켜 경작하게 한 것은 유럽 여러 정부의 지혜나 정책이 아니라 그 정부의 무질서와 불법이었다.

독점의 효과는 영국 제조품의 양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조품 중 일부의 질과 형태를 바꾸어 이것을(독점이 아니었다면 대금회수의 빈도가 잦고 대금회수가 신속한 시장으로 향했을 것을) 대금회수가 느리며 장시간이 걸리는 시장으로 돌린 것이었다. 이 효과는 결과적으로 영국 자본의 일부를 더 많은 제조업 노동자를 유지했을 부문으로부터 훨씬 적은 수를 유지하는 부문으로 전환시켰기 때문에, 영국에서 유지되는 제조업 노동자의 총수를 증가시키기는커녕 감소시켰다.

독점으로 인해 모국의 자본은 ( 그 자본의 크기가 어떻든) 독점이 없다면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생산적 노동량을 유지할 수 없으며, 독점이 없다면 주민에게 줄 수 있는 정도의 수입을 줄 수 없게 된다. 자본은 수입으로부터의 저축에 의해서만 증식되기 때문에, 독점은 (자본으로 하여금 독점이 없다면 제공할 수 있는 정도의 수입을 제공할 수 없게 함으로써) 독점이 없는 경우와 같은 빠른 자본증식을 반드시 방해하고, 따라서 자본이 더욱 많은 생산적 노동을 고용하는 것을, 그리고 더욱 많은 수입을 주민에게 주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독점은 수입의 큰 원천 중 하나인 임금을 독점이 없었을 경우보다 언제나 필연적으로 감소시키게 된다.

독점은 모국에서 임금을 떨어뜨린다. 독점은 이윤을 높임으로써 토지의 지대와 토지가격을 떨어뜨리는 경향이 있다. 독점은 이윤의 절대액을 감소시킨다. 그리하여 수입의 모든 본원적인 원천들을 풍족하지 않게 한다.

보통의 소비풍조는 어디서나 소비할 수 있는 진정한 능력에 따라 정해지기 보다는 소비할 돈을 얼마나 쉽게 벌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

거대한 상업자본의 소유자는 그 나라 산업 전체의 지도자‧지휘자이므로 그들의 생활태도는 다른 어떤 계급의 사람들의 행동보다 국민 전체의 생활태도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친다. 만일 고용주가 주의 깊고 절약하는 사람이라면 노동자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고용주가 방탕하고 규율을 지키지 않는다면, 고융주의 지시에 따라 일을 하는 노동자 역시 고용주의 생활태도를 본받게 될 것이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에노{henault:1685-1770]는 “우리는 지금 동맹(Ligue)에 관한 수많은 사소한 사건들의 기록을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이 사건들은 당초 발생했을 때에는 아마 별로 중요한 뉴스거리로 간주되지도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말하기를, “그러나 당시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을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라고 상상했으며, 그 당시로부터 우리에게 전해져온 수많은 회상록들은 그 대부분이 자신이 상당히 중요한 배우로서 참여했다고 자부하는 사건들을 기록하고 과장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에 의해 씌어진 것이다.”고 했다.

다른 나라의 산업에 대한 부당한 억압은, 말하자면, 그 억압자의 머리에 떨어지고, 다른 나라의 산업을 파괴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자국의 산업을 파괴시킨다.

거대한 상업을 독점하는 것이 당연히 최고의 가치를 획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목표물의 휘황찬란함이, 그 상업의 무한한 거대함이 곧 그것을 독점하면 손해를 보게 하는 본질인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많은 자본의 용도보다 본질상 그 나라에 덜 유리한 용도가 그 나라의 자본을 자연적으로 그 부문으로 흘러들어갈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흡수하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의 상업자본은 이런 방식으로 자연히 가까운 투자처를 찾고 멀리 떨어진 투자처를 꺼리게 되며, 자연히 자본의 회전속도가 빠른 투자처를 찾고 그 회전시간이 오래 걸리는 투자처를 꺼리게 되며, 자연히 많은 양의 생산적 노동을 유지할 수 있는 투자처를 찾고 가장 적은 생산적 노동을 유지할 수 있는 투자처를 꺼리게 된다. 상업자본은 자연히 그 나라 전체에 가장 유리한 투자처를 찾고 그 나라 전체에 가장 불리한 투자처를 꺼리게 된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독점은 자본을 끌어들인다. 부유한 나라에서는 독점은 자본을 배척한다. 독점의 결과는 두 가지 경우 모두 유해하다.

회사에 의한 독점은 잉여생산물 중에서 만약 자유무역이라면 유럽으로 수출될지도 모를 부분의 자연스런 증대를 억제할 뿐이지만, 직원들에 의한 독점은 그들이 거래하려는 생산물 전체[즉, 수출용 및 국내 소비용]의 자연스런 증대를 억제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러하여 전국의 경작을 퇴보시키고 주민수를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회사 직원들에 의한 독점은 모든 종류의 생산물의 수량, 심지어 생활필수품의 수량까지도 [그들이 그것들을 거래하려고 결정하는 경우에는 언제나] 그들이 구매할 수 있고 또 만족스러운 이윤으로 판매할 수 있다고 예상하는 수준까지 감축시키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의 중상주의에 의해 주로 장려되는 것은 부자와 권력자의 이익을 위한 산업뿐이다. 가난한 사람과 빈궁한 사람의 이익을 ㅅ위한 산업은 너무나 자주 무시되거나 억압을 받고 있다.

중상주의의 고안자는 생산자이고, 특히 상인과 제조업자이다.

수입(revenue)은 소득(income)으로 소비되거나 자본(capital)으로 축적된다.

프랑스나 잉글랜드 같이 토지소유자와 경작자가 많은 나라들은 근면과 향유에 의해 부유하게 될 수 있다. 그와는 반대로 네덜란드나 함부르크와 같이 주로 상인‧수공업자‧제조업자로 구성된 나라들은 오직 절약과 내핍을 통해 부유하게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상이한 조건에 처해 있는 나라들의 관심사가 매우 다르듯이 국민성도 서로 다르다. 전자의 나라에서는 관대함‧솔직함‧우애가 자연히 국민성의 일부를 이룬다. 후자의 나라에서는 모든 사회적 쾌락과 향유를 싫어하는 편협함‧비열함‧이기적 성향이 국민성의 일부를 이룬다.

완전한 정의, 완전한 자유, 완전한 평등을 확립하는 것이 생산적 계급과 비생산적 계급 모두의 최고도의 번영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증하는 매우 단순한 비밀이다.

고대 이집트인은 바다를 매우 싫어하는 미신을 갖고 있었다. 한편 힌두교는 그 신도둘이 물 위에서 불을 켜는 것, 따라서 물 위에서 음식을 요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으므로 사실상 그 신도들의 장거리 항해를 금지했다.

자연적 자유의 제도하에서는 국왕은 오직 세 가지의 의무에 유의해야 하는데, 이 세 가지 의무는 물론 매우 중요하지만 명백해서 보통의 이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파악할 수 있다. 세가지 의무란, 첫째 사회를 다른 독림사회의 폭력‧침략으로부터 보호하는 의무, 둘째 사회의 각 구성원을 다른 구성원의 불의‧억압으로부터 가능한 한 보호하는 의무, 또는 엄정한 사법(司法)행정을 확립하는 의무, 셋째 일정한 공공사업‧공공시설을 건설‧유지하는 의무이다.

유목민은 상당히 많은 여가를 가지고 있고, 농민은 원시적은 농경상태에서는 약간의 여가가 있지만, 직공‧제조업자들은 전혀 여가를 가지지 못한다.

질투하고 저주하고 노여워하는것만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신체나 명성에 대해 하를 끼칠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감정에 쉽사리 휩싸이지 않으며, 아주 나쁜 사람일지라도 항상 그런 감정을 가진 것은 아니다. 또한 이런 감정을 통해 얻는 만족은, 특의한 성격을 지닌 사람에게는 매우 기분 좋은 일일지 모르지만, 어떤 실질적인 이익이나 항구적인 이익을 수반하지 않으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냉정히 판단한 끝에 이런 감정을 억제해 버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람들은 이런 감정으로 말미암은 침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공권력이 없더라도 상당히 안전하게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부자의 탐욕‧야심, 그리고 빈민이 노동을 싫어하고 눈앞의 안일과 향락을 좋아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재산을 침해하게 하는 감정이며, 또한 끊임없이 작용하고 더욱 큰 영향을 미치는 감정이다. 큰 재산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큰 불평등이 존재한다. 한 사람의 큰 부자에 대하여 적어도 500명의 가난한 사람이 있으며, 소수의 풍요로움은 다수의 빈곤을 전제로 한다. 부자의 풍요는 가난한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하는데, 빈민들은 빈곤에 내몰리고 질투심에 의한 부추김을 받아 부자의 재산을 침해하려고 한다. 수년에 걸친 노동에 의해, 또는 수세대에 걸친 노동에 의해 획득한 귀중한 재산의 소유자가 하룻밤이라도 안전하게 잘 수 있는 것은 공권력의 보호 아래에서만 가능하다.

장교는 자신이 언제나 지휘를 받던 상관에게는 기꺼이 복종하지만, 자기의 부하가 자기의 상관이 되는 것은 도저히 참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자기의 선조가 언제나 복종해 왔던 집안에 대해서는 쉽사리 복종하지만, 자신들이 단 한 번도 우월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집안이 자신들을 지배하려고 하면 분기탱천하게 된다.

사치스러운 마차(예컨대 사륜 대형 마차나 역전마차 등)에 대한 통행료를 피수적인 마차(예컨대 이륜짐마차나 사륜짐마차 등)에 대한 통행료보다 높게 한다면 무거운 상품들을 각 지방으로 수송하는 것을 더 싸게 함으로써 부자들의 교만함‧허영심이 빈민들의 구제에 매우 간단한 방법으로 기여하게 될 것이다.

주식회사가 독점적 특권 없이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유일한 사업은, 그 업무가 이른바 천편일률적이어서 임기응변이 필요 없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 중의 첫째는 은행업이고, 둘째는 화재보험업‧해상보험업 및 전쟁시에 나포(拿捕)될 위험에 대한 보험업이며, 셋째는 운송 가능한 수로나 운하를 개설하고 운영하는 사업이며, 넷째는 대도시에 식수를 공급하는 사업[즉, 수도업]이다.

주식회사의 설립이 완전히 합리적이려면 업무가 엄격한 규칙과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정 이외에 두 가지 추가적인 사정이 필요하다. 첫째로, 그 사업이 보통 다른 사업보다 더 크고 사회에 더 큰 이익을 준다는 점과, 둘째로, 합명회사가 쉽게 모집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는 점이 명백하게 드러나야 한다. 만약 적은 자본으로 충분하다면, 비록 그 사업의 사회적 이득이 크다고 하더라도 주식회사를 설립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실험과 관찰에 적합한 학문들, 즉 주의 깊게 관찰하면 아주 많은 유용한 발견들을 할 수 있는 학문들은 거의 완전히 무시되었다. 몇몇 아주 단순하고 거의 명백한 진리 이외에는, 아무리 자세하게 살펴보더라도 애매함과 불확정적인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고, 따라서 미묘하기 짝이 없는 것과 궤변 이외의 어떤 것도 만들어낼 수 없는, 그런 학문이 도리어 사람들에 의해 크게 연마되었던 것이다.

고대 도덕철학에서 인간생활상의 의무들은 인간생활의 행복‧완성에 기여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자연철학‧도덕철학이 오로지 신학에 봉사하는 것으로 가르쳐지게 되었을 때, 인간생활에서의 의무들은 주로 내세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고대 도덕철학에서는, 덕(德)의 완성은 덕을 소유한 사람에게 현세에서 가장 완전한 행복을 필연적으로 가져다 준다고 했다. 그러나 근대 도덕철학에서는 종종 덕의 완성은 일반적으로, 또는 거의 항상, 현세의 어떤 행복과도 관련이 없다고 했으며, 천국은 인간의 포용령 있고 관대하며 활기찬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참회와 금욕, 스도승과 같은 내핍과 신에 대한 맹종에 의해서만 획득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유년시기와(죽을 때까지 진지하게 세상의 실무에 종사하게 되는) 연령 사이의 오랜 기간을 더욱 유익하게 소비하는 방법은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사립학교와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들의 대부분은 그런 실무에 가장 적합한 준비인 것 같지는 않다.

신체의 가장 필요불가결한 부분 중 하나를 박탈당하거나 사용할 수 없게 된 사람이 육체적으로 불구‧기형인 것과 마찬가지로, 겁쟁이는 정신적으로 불구‧기형인 것이다. 이들 중 후자가 더욱 비참하고 불쌍하다. 왜냐하면 마음에 달려 있는 행복‧불행은 필연적으로 육체보다는 정신의 건강‧불건강, 불구‧정상상태에 더욱 의존하기 때문이다.

종교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신도 앞에서 자기 자신을 더욱 고귀하고 신성하게 보이기 위해 다른 모든 종파에 대해 가장 격렬한 증오를 가지도록 신도들을 고무하며, 이적(異蹟: miracle)을 통해 신도의 해이해진 신앙심을 자극하려고 계속 노력할 것이다. 그들은 교리를 설명하면서 진리‧도덕‧예절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 기분의 불규칙한 정서에 가장 적합한 교리들만을 뽑아내서 설교할 것이다. 새로운 방식의 근면과 기교로써 대중들의 감정과 쉽게 믿는 경향을 이용하여 청중들을 모든 비밀집회에 끌어들일 것이다.

모든 문명사회, 즉 계층의 구별이 이미 완전히 확립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두 개의 상이한 도덕체계 또는 도덕관이 항상 동시에 존재했다. 하나는 엄격주의(嚴格主義) 또는 엄숙주의(嚴肅主義)라고 부를 수 있으며,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自由主義) 또는 원한다면 방탕주의(放蕩主義)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전자는 일반적으로 서민들에 의해 숭배되고 존경받으며, 후자는 보통 이른바 상류층에 의해 더 많이 존경받고 채택되고 있다.

거의 모든 종파들은 서민들 사이에서 창시되었으며, 대개 서민들로부터 최초의 또한 가장 많은 개종자들을 흡수했다. 따라서 거의 모든 종파들은 거의 예외 없이(약간의 예외는 있었다) 도덕의 엄격주의를 채택하였다. 이 엄격주의에 의해 각 종파들은 기성 종교에 대한 자기들의 개혁안을 처음으로 제시한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가장 쉽게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국가는 이 구제책들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나라를 분할하고 있는 모든 소종파들의 비인간적이고 지나치게 엄격한 도덕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첫 번째 구제책은 과학과 철학의 학습이다. 국가는 이런 학습을 중류 또는 중류 이상의 지위와 재산을 가진 모든 사람들 사이에 보편화시킬 수 있다.
두 번째 구제책은 흥겨운 공중오락을 자주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국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그림‧시‧음악‧무용‧각종 연극‧공연‧전시회 등을 통해 남들을 즐겁게 하고 기분전환 시키면서도 사회풍속을 해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격려함으로써 (즉, 그들에게 완전한 자유를 부여함으로써) 대중의 미신과 광기의 온상이 되고 있는 우울하고 침울한 기분을 대다수 사람들에게서 쉽께 쫓아낼 수 있다.

장로들에 의해 관리되는 교회제도(presbyterian form)가 목사들 사이에 확립하는 평등은 첫째는 권위의 평등 또는 교회 재판권의 평등이고, 둘째는 성직봉록(聖職俸祿)의 평등이다.

어떤 사람에게 매년 학문의 특정 분야를 가르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그 분야를 완전히 습득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매년 똑같은 학문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으므로,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유능하다면, 그는 반드시 몇 년 안에 그 분야 전부에 정통하게 될 것이다.

다음의 네 가지 경우에는 조세가 국고에 들어가는 금액보다 훨씬 큰 금액을 국민들의 주머니로부터 끌어내거나 국민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첫째는, 조세 징수에 많은 수의 관리들이 필요해서 그들의 봉급이 조세 수입의 대부분을 갉아먹고 또한 그들의 부수입이 국민들에게 추가적인 부담으로 되는 경우다.
둘째는, 조세가 국민들의 근면을 방해하고, 그들로 하여금(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고용할 수 있는) 어떤 산업부분에 종사하는 것을 단념하도록 만드는 경우이다.
셋째는, 탈세를 시도하다가 실패하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몰수 기타의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조세가 그들을 종종 몰락시키고 그리하여 사회가(그들의 자본 운용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을) 이익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이다.
넷째는, 국민들에게 조세 징수인의 번번한 방문‧짜증나는 조사를 받게함으로써 조세가 국민들에게 수많은 불필요한 고통‧번거로움‧억압을 주는 경우이다.

잉여지대(surplus rent)는 그 가옥의 거주자가 그 위치로부터 생겨나는 현실적인 또는 상상적인 이익에 대해 지불하는 가격이다.

생활필수품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큰 비용이 든다.

토지 소유자는 반드시 자기의 소유지가 있는 특정국의 시민이다. 그러나 자본 소유자는 세계의 시민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며, 그는 반드시 어느 특정국에 속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려고 골치 아픈 세무조사를 하는 나라를 쉽게 떠나며, 자기의 사업을 더 쉽게 할 수 있거나 자기의 재산을 더 안락하게 즐길 수 있는 다른 나라로 자기의 자본을 이동시킬 것이다.

정부가 다른 나라 정부로부터 배우는 기술 가운데서 국민들의 주머니로부터 돈을 끄집어내는 기술보다 더 빨리 배우는 것은 없다.

거의 모든 수입품에 무거운 관세가 부과되기때문에 우리 상인들은 가능한 한 밀수입을 하려고 하며 세관에는 가능한 적게 신고하려고 한다. 반대로 수출상인들은 때로는 무관세 상품의 대(大) 수출상인으로 알려지고 싶어서, 때로는 장려금‧세금환불을 얻기 위해서 , 실제로 수출하는 것 이상으로 과장해서 신고한다.

하류층의 지출이 개별적으로 보면 매우 작을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사회 전체의 지출 중 항상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맥아는 맥주(beer)와 맥아주(ale)의 양조에 들어갈 뿐 아니라 약한 포도주‧증류주(위스키)를 제조하는 데도 들어간다.

돈쓰기에 바빠서 자기의 수입이 규칙적으로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헤픈 낭비자와 마찬가지로, 국가는 자신의 대리신이나 백성들로부터 자기 자신의 돈을 미리 차입해다 쓰고 그것의 사용에 대해 이자를 지불하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국정에 직접 관계하는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당장의 위급 상황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들은 미래의 국가수입을 채무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은 후손들의 문제로 남겨둔다.

화폐의 명목가치를 인상시키는 방법은 실질적인 국가 파산을 겉으로는 마치 상환하는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사용되는 가장 상투적인 수단이었다.
이런 위장된 상환방식은 또한 민간의 재산에 대해 보편적이고 가장 해로운 파멸을 초래한다. 즉,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 부지런하고 절약하는 채권자들을 희생시켜서 게으르고 방탕한 채무자들을 부유하게 하며, 국가 자본의 대부분을 그것을 증진시키고 개선할 사람들의 수중에서 그것을 소진하고 파괴할 사람들의 수중으로 옮긴다. 국가가 파산을 선언할 수 밖에 없게 되었을 때에는, 개인이 파산선언을 하게 되었을 때와 같은 방법으로, 공정하고, 공개적이고, 공공연하게 하는 것이 언제나 채무자에게도 가장 덜 불명예가 되고 채권자에게도 가장 피해가 적은 방법이다.


속담

“공짜로 일하는 것보다는 거저 노는 것이 낫다(It is better to play for nothing, than to work for nothing)”

“1페니를 얻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1페니를 번다(pedlar principle of turning a penny wherever a penny was to be got)”는 행상인의 행동원칙

“팔방미인은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다.(Jack of all trades will never be rich)”

“쉽게 들어온 돈은 쉽게 나간다.(Light come light go)”

“약탈이 없으면 보수도 없다.(no plunder, no pay)”

“1 페니의 절약은 1페니를 버는 것과 같다(a penny saved is a penny got)”


주석(역자)

마르크스에 의하면, 상품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가지며, 교환가치는 가치(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추상적 인간노동의 양)를 외부로 표현하는 형태다. 스미스는 상품의 사용가치를 형성하는 구체적 유용노동과 상품가치를 형성하는 동질적인 추상적 인간노동을 명확히 구별하지 못했으며, 상품가치를 규정함에 있어 그 상품의 생산에 지출된 노동량(투하노동)과 그 상품이 임금을 매개로 하여 구매할 수 있는 노동량(지배노동)을 혼동하고 있다.

스미스는 상품의 '진실가치'(또는 가격)와 '실질가치'(또는 가격)를 혼동하고 있다. 전자는 상품의 생산에 소요되는 노동량이고, 후자는 한 상품이 구매할 수 있는 다른 상품의 수량이다. 비록 한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이 변하지 않더라도 다른 상품들의 '진실가치'가 저하한다면 그 상품이 구매할 숨 있는 다른 상품들의 수량은 증가할 것이다. 따라서 스미스가 사용하는 real price는 어떤 경우에는 '진실가격'으로 번역해야 하고, 또 다른 경우에는 '명목가격'에 대립하는 '실질가격'으로 번역해야 한다.

가격 전체는 지대‧노동(임금)‧이윤이라는 세 부분으로 분해된다.
이렇게 되면 상품의 가치(또는 가격)에는 기계의 감가상각분과 원료비가 포함되지 않고 상품의 가치는 수입(收入)의 총계와 일치하게 된다. 이것을 마르크스는 '스미스의 도그마'라 부른다.

상품가치가 독립적으로 결정되는 지대‧임금‧이윤에 의해 구성된다고 보기 때문에, 임금상승은 필연적으로 상품가치를 인상시키게 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노동이 지대‧임금‧이윤을 창조한다고 보기 때문에, 이 경우 노동자의 노동이 증감하지 않은 채 임금이 상승한다면 지대나 이윤이 감소할 뿐이고 상품가치는 변동하지 않게 된다.

상품가치가 독립적으로 결정되는 지대‧임금‧이윤에 의해 구성된다고 보기 때문에, 임금상승은 필연적으로 상품가치를 인상시키게 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노동이 지대‧임금‧노이윤을 창조한다고 보기 때문에, 이 경우 노동자의 노동이 증감하지 않은 채 임금이 상승한다면 지대나 이윤이 감소할 뿐이고 상품가치는 변동하지 않게 된다.

은의 진실가격(또는 가치)은 일정량의 은이 구매할 수 있는 노동량이고, 이 노동량은 일정량의 은이 구매할 수 있는 곡물의 양에 비례한다고 스미스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화폐상품인 은과 기타 상품들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이 은과 기타 상품들의 가치를 규정하며, 기타 상품들의 가치를 은량으로 표현한 것이 각 상품의 화폐가격이라는 마르크스의 생각과는 매우 다르다.

스미스에 의하면, 일정량의 곡물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량은 역사적으로 거의 변동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노동생산력의 상승에 의해 살아 있는 노동은 감소하지만 노동수단(예: 가축)의 가격이 상승해서 죽은 노동은 증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곡물은 다른 상품들의 가치변동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 이것은 ‘불변의 가치척도’를 찾으려는 노력에 불과한 것이지, ‘가치의 실체’를 발견하려는 노력은 아니었던 것이다.

스미스는 자본축적을 수입의 지출절약(즉, 저축)에 의한 자본증대와 이것에 의한 생산적 노동자의 고용증대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에 의하면, 자본축적은 잉여가치를 자본으로 전환시켜 확대재생산을 달성하는 것이고, 이 자본축적 과정은 노동자계급에게는 해고‧실업‧고용불안‧착취율 상승‧자기소외 등을 야기하는 과정을 내포하며, 자본가계급에게는 이윤율의 저하경향‧상승경향, 공황과 경기순환 등을 야기하는 과정을 내포한다.

화폐는 상품세계의 일반적 등가물(general equivalent)이기 대문에 모든 상품을 무조건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상품이 판매되어 화폐로 전환되는 것은 온갖 조건들에 의존한다. 그리고 상품은 판매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상품의 판매를 ‘결사적인 도약’(salto mortale)이라고 부른다.

사실상 스미스는 단순상품유통과 자본유통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단순상품유통을 논의의 중심에 두고 있다. 구매를 위한 판매, 즉 C-M-C는 단순상품 유통에 해당하는 것이고, 판매를 위한 구매, 즉 M-C-M′은 자본유통에 해당하는 것이다. 자본유통에서는 상품을 화폐로 전환시키지 못한다면 잉여가치를 실현할 수 없으며, 따라서 화폐는 자본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된다.

생산물의 가치는 생산수단의 가치와 노동력의 가치 및 잉여가치의 합과 같다. 따라서 임금‧이윤‧지대 등 수입(또는 소득)의 합계는 생산물의 가치보다 작다. 마르크스는 스미스가 상품의 교환가치를 노동력의 가치와 잉여가치로 분해하는 것을 ‘스미스의 도그마’(Smith’s dogma)라 부르면서 비판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기 이전의 경제학이 산업자본의 순환을 일면적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즉, 중금주의(重金主義)는 M - C - M′에 주목하여 오직 유통영역만을 문제로 삼았고, 중상주의는 M - C…P…C′ - M′을 단 한 번의 고정된 형태로 파악하여 국내에서의 생산과 국외에서의 판매에서 발생하는 금은량에 증가에만 주목했고, 고전파경제학은 P…C′ - M′‧M - C…P(P′) 즉 생산자본의 순환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본가들이 절약하고 축적하여 생산규모를 확대시키는 경향을 찬양했으며, 중농학파는 상품자본의 순환, 즉 C′ - M - C…P…C′을 논의의 중심에 둠으로써 연간생산물이 어떻게 판매되어 그 다음해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해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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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방랑자의 이야기.
    월풍도원에선 기부를 받습니다.

여행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책. 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원고 하나를 세상에 내보내지 못하고 묵혀두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그 원고의 문제를 알겠다.
전에 형에게 지나가듯 물었더니,
‘에세이는 솔직한 게 다야.’라는 간단한 답을 들었다.
나머지 답은 ‘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에 있다.
솔직하되, 군더더기는 없어야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되, 남이 알아듣는 언어로 써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꾸준히 글을 써서, 작가의 내공이 쌓여야 한다.
이 책은 지금까지 ‘변종모’라는 이름으로 나온 단행본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책이다.
지금까지는 주제의 틀에 맞추어 사진과 글을 짜 넣었다는 느낌이라면,
이번 책은 다르다.
가장 보여주고 싶은 사진과 제일 하고 싶은 말을 담았다는 느낌이다.
멋있다.
나는 아직 멀었다.
그리고 요즘엔 더 멀어졌다.
하지만 사시사철 계절이 바뀌듯, 내게도 다시 글 쓸 날이 오리라.

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나는 읽었고 내공을 느꼈다.

아이-'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변종모'

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책갈피

전문가가 나눈 블루의 종류는 110가지라고 한다.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슬픔의 색은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종류가 있을지도 모른다.

“용서해줄게! 그런 계절에 꽃으로 이별을 던지고 간 너. 미안하다는 말 대신 노란 튤립이 두 송이 핀 화분만 남기고 7월인가에 문자를 해서는 튤립이 졌겠다며 딴 소리만 하던 너. 용서할게.”

함부로 바라지 않는 마음. 어딜 가도 내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세상.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며 세상만사가 내 뜻과 다르게 변한다고 야속해하진 말아야 한다. 사실 내 마음을 제외하면 세상은 한 번도 달라진 적 없는 것을.

자신을 믿지 못하거나 마음의 깊이가 낮은 사람일수록 깊은 흔적을 남긴다.

무슨 마음이었을까? 그때 나의 그 맹세는. 너만을 사랑하겠다던 그 말, 영원히 함께하자던 그 말. 어디론가 사라진 그 맹세는 이미 네겐 낡아버린 언어일 테고 의미없이 내게만 남은 미련이다. 너에게 던져준 말인데 내게만 남았다.

붙잡아둔다고 묶여 있을 것은 놓아줘도 달아나지 않는다. 구속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구속할수록 속박당하는 것은 그대의 마음뿐.

모든 사람이 자신을 사랑할거라 믿는 사람은 타인에게 배려가 부족한 사람이고 모두가 자신을 싫어할 거라 믿는 사람은 자신에게 배려가 부족한 사람이다.

너의 말처럼 나는 걷고 있다. 너도 어느 길 위에서 나처럼 걷고 있을 것을 안다. 그러니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같을 것이다. 너의 말처럼 그것은 함께 걷는 일일 것이다. 너와 내가 같은 마음으로 걷고 있다면. “함께 가지 않아도 우리는 동행이에요.”라던 너의 말. 그 말만은 믿어본다.

사는 것은 실수의 연속이고 그것은 연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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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방랑자의 이야기.
    월풍도원에선 기부를 받습니다.

쓸데없는 것의 쓰임. 동양고전 장자.

재작년에, 언젠가 읽어봐야겠다며 도서목록에 장자를 적어 놨었습니다.
철학 부분 가장 위에 적어 놓고서 이년 만에 책을 펼쳤네요.
이번에 장자를 읽게 된 계기는 얼마 전 친구들과 다녀온 경주여행 덕입니다.
그때 한옥 펜션 소요유((逍遙乳)에 묵었었는데, 소요유가 장자 내편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거든요.
눈에 띈 김에 읽자는 생각으로 장자를 손에 들었습니다.

우선 장자를 매끄럽게 번역해주신 김학주 교수님께 고맙습니다.
신경 써서 다듬어 주신 덕에 글이 술술 읽혔어요.

이 책에는 혜시라는 친구와 대화가 꽤 많이 나오는데,
장자는 그 친구를 비평합니다.
장자의 친구 혜시는 관점에 따라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는 주장을 펼쳤거든요.
예를 들자면 달걀에도 털이 있다.(닭이 되니까) 나는 새의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는다.(움직이는 것은 새라서.) 강아지는 개가 아니다.(모든 개가 강아지는 아니기 때문.)등의 주장을 펼쳤는데 장자는 그가 덕을 닦는 일에는 빈약하면서도 물건에는 집착이 강하여, 그의 도가 비뚤어져 있다고 평했어요.
이 부분에서 엘프리드 줄스 에이어(Alfred Jules Ayer)라는 철학자의 주장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정의에 의해 참인가? 그것은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중에 아무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면 그 문장은 무의미하다.'
이 철학자의 주장으로 비추어 봐도 혜시의 주장은 궤변에 불과했다고 여겨지네요.
'팥빙수는 차갑지 않다.(얼음이 차가울 뿐이다.)' 같은 말장난일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도 혜시의 주장을 모아 놓은 책은 한 권 읽어보고 싶네요.
이런 말장난은 비록 아무 의미도 없을지언정, 문학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살면서 어떤 행동을 할 때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아. 이걸 지금 해서 뭐해. 아무 소용이 없는데."
때론 허무감에 빠지기도 하고, 죄책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인생을 허송세월하는 기분이 들어서이죠.
장자에서 저에게 준 가장 큰 메시지는 쓸데없는 것의 쓰임(無用之用)입니다.
쓸데없는 것 덕에 쓸 모 있는 것이 유용하단 것이에요.

장자를 읽으며 감탄이 터져 나온 구절이 많습니다.
그래서 몇몇 어귀를 메모 하다 보니, 상당히 많은 글을 옮겨 적었네요.
이렇게 적을게 많다는 건 그만큼 저와 장자의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입니다.
도와 가깝길 원하면서 도에 대한 이야기에 감동을 받는 다는 것은,
도와 한참 떨어진 삶을 사는 중이란 말입니다.
한 십 년쯤 더 지나서 장자를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때 또 글귀 하나하나에 감탄만 하고 앉아 있다면, 저는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겠지요.


장자 - 책갈피



내편

소요유((逍遙乳) - '어슬렁어슬렁 노님'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노니는 경지에 처신하는 것'

제물론(齊物論) - 모든 사물은 한결같음

큰 지혜를 지닌 사람은 여유가 있지만 작은 지혜를 지닌 사람은 남의 눈치만 본다. 위대한 말은 담담하고 너절한 말은 수다스럽기만 한다. 잠잘 때에는 혼백에 의해 꿈을 꾸고, 깨어나면 몸에 의해 활동한다. 외물을 접하게 되면 어지러워져 매일처럼 마음은 갈등을 일으킨다. 그렇지만 너그러운자도 있고 심각한자도 있으며 꼼꼼한 자도 있다. 두려움이 작을 때에는 두려워 떨지만 두려움이 크면 멍청해진다.

그의 육체의 노화를 따라 그의 마음도 그와 같이 노화한다면 어찌 큰 슬픔이라 말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란 소리가 아니다. 말이란 것은 말로 어떤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나, 그 말로 표현하는 생각은 일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과연 말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본시부터 말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새새끼가 우는 소리와는 다르다고 하지만, 그것과 차이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옛날에 원숭이를 기르던 사람이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朝三暮四)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은 모두 화를 냈다. 다시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은 모두 기뻐하였다. 명분이나 사실에 있어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기뻐하고 화내는 반응을 보인 것도 역시 그 때문이다. 그래서 성인은 모든 시비를 조화시켜 균형된 자연에 몸을 쉬는데, 이것을 일컬어 '자기와 만물 양편에 다 통하는 것'이라 한다.

도에는 본시부터 한계가 없는 것이다. 말(言)에는 본시부터 법도가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말에는 구별이 생기는 것이다. 그 구별에 대하여 말해 보고자 한다. 말에는 왼편이 있고 오른편이 있으며, 이론이 있고 설명이 있으며, 분석이 있고 분별이 있으며, 대립이 있고 다툼이 있다. 이것을 '여덟가지 덕(八德)'이라 말한다.

위대한 도란 말로 표현하지 못하며, 위대한 이론은 말로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다. 위대한 어짊은 어질지 않는 듯하고, 위대한 청렴은 겸손하지 않은 듯하며, 위대한 용기는 남을 해치지 않는다. 도가 밝게 드러난다면 도가 아닌 것이며, 말이 이론적으라면 불충분한 것이다. 언제나 어질다면 완전한 것이 못 되며, 청렴함이 분명히 드러난다면 믿음을 받지 못하며, 용감하면서도 남을 해친다면 용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다섯 가지를 버리지 않고 있어야만 거의 도를 향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죽음과 삶도 자기에게 변화를 가져올 수 없거늘 하물며 이롭고 해로운 것의 평가 기준이야 어떠하겠는가?

옛날에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그는 나비가 되어 펄펄 날아다녔다. 자기 자신은 유쾌하게 느꼇지만 자기가 장주임을 알지 못하였다. 갑자기 꿈을 깨니 염연히 자신은 장주였다. 그러니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되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주와 나비에는 반드시 분별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만물의 조화'라 부른다.

양생주(養生主) - 삶을 길러주는 주인

우리의 삶에는 한이 있으나 앎에는 한이 없다. 한이 있는 삶을 가지고 한 없는 앎을 뒤쫓음은 위태로운 일이다. 그런데도 앎을 추구하는 자가 있다면 위태로울 따름인 것이다.

착한 일을 행하여 명성을 가까이하지 말고, 악한 짓을 행하여 형벌을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 가운데의 올바름을 따름으로써 법도를 삼는다면 몸을 보존할 수 있게 되고,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며, 어버이를 부양할 수 있게 되고, 자기 목숨대로 살 수가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나는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여겼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조금 전에 내가 조상을 하면서 보니 노인들은 자기 자식을 잃은 것처럼 곡을 하고, 젊은이들은 그의 어머니를 여읜 것처럼 곡을 하더구나. 그들이 그의 죽음에 감동된 까닭은 반드시 조문을 해 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았을망정 조문을 하도록 만들고, 곡해 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았을망정 곡을 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자연을 어기고 진실을 배반한 것이며 그의 분수를 잊은 것이다. 옛날에는 그런 것을 '자연을 어긴 죄악'이라 말하였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그가 태어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며, 그 사람이 죽은 것도 죽을 운명에 따른 것이다. 윤회하는 때에 안주하고 주어진 운명에 따르면 슬픔이나 즐거움은 끼여들 수가 없는 것이다. 옛날에는 이것을 하늘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라 불렀다.

기름은 촛불이 되어 타 없어져 버리지만, 불은 옮겨 붙여 주면 다할 줄 모르게 된다.

인간세(人間世) - 사람들 세상

덕은 명성 때문에 진실성을 잃기 쉽고, 지혜는 경쟁심 때문에 지나치게 되는 것이다. 명성은 서로를 손상시키는 것이고, 지혜는 다툼의 연모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흉기이므로 지나치게 행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덕이 두텁고 신의가 많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기분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명성을 두고 다투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억지로 어짊과 의로움을 가지고 사람들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논의를 난폭한 사람 앞에서 하는 것은 남의 악함을 이용하여 자신의 훌륭함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을 '남을 해치는 사람'이라 부른다. 남을 해치는 사람이라면 남도 반드시 그를 해치게 될 것이다.

천하에는 큰 법칙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운명이며, 다른 하나는 의로움입니다. 자식이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은 운명입니다. 그것은 마음으로부터 풀어 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은 의로움입니다. 어디를 가나 임금이 없는 곳이 없으며, 하늘과 땅 사이에서는 그 관계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경계하고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몸을 올바로 가지십시오. 태도는 종순해야 하며, 마음은 온화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에도 조심이 필요합니다. 종순하면서도 남에게 끌려 들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온화하면서도 남에게 일을 드러내지 않아야 합니다. 태도가 종순하면서 남에게 끌려 들어가다 보면 전복되고 멸망당하여 무너지고 파멸하게 됩니다. 마음이 온화하면서 남에게 일을 드러내다 보면 명성을 뒤쫓다가 재난을 당하게 됩니다. 상대방이 아이 같다면 그와 더불어 아이같이 되십시오. 상대방이 분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와 더불어 분수 없게 행동하십시오. 상대방이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와 더불어 종잡을 수 없게 행동하십시오. 여기에 통달하게 되면 탈 없는 경지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덕충부(德充符) - 덕이 속에 차 있는 증험

죽음과 삶도 큰 문제이긴 합니다만, 그러나 그 분은 그것에 의해 변화를 받지 않습니다. 비록 하늘과 땅이 떨어지고 뒤엎어진다 하더라도 역시 그 때문에 그 분은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의지할 것이 없는 참된 경지를 잘 알고 있어서 밖의 사물에 의해 변화를 받지 않습니다. 밖의 사물의 변화를 따르면서 그의 근본을 지키는 분인 것입니다.

성인은 마음을 노닐게 하는 바가 있으며, 지혜를 번거로운 것이라고 하고, 약속은 아교와 같이 사람을 제약하는 것이라 하고, 소득이란 것은 다른 것을 더 추구하는 것이라 하고, 기교는 남에게 물건을 파는 것과 같다고 여겼다. 성인은 일을 꾀하지 않는데 어찌 지혜를 쓰겠는가? 약속을 깎아 없애지 않거늘 아교 같은 제약을 어디에 쓰겠는가? 잃는 것이 없거늘 소득을 어찌 추구하겠는가? 이익을 추구하지 않거늘 어찌 물건을 팔겠는가? 이 네가지는 하늘의 보육이라는 것이다. 하늘의 보육이란 하늘이 먹여 주는 것이다. 이미 하늘로부터 먹을 것을 받고 있거늘 또 어찌 사람을 필요로 하겠는가?
성인은 사람의 형체를 지니고 있지만 사람의 감정은 지니고 있지 않다. 사람의 형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린다. 사람의 감정이 없기 때문에 시비가 몸에 붙지 않는다. 아득히 작은 것은 그들의 사람에게 속한 일들이고, 덩그렇게 큰 것은 그들이 홀로 이룩하고 있는 하늘에서 내려받은 것이다.

대종사(大宗師) - 위대한 참 스승

앎이란 것은 의거하는 데가 있은 연후에야 판단이 서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의거하는 데가 전혀 불안정된 것이다. 그러니 어찌 내가 말하는 하늘이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겠는가? 어찌 사람이 하늘이 아님을 알 수가 있겠는가?

옛날의 '참된 사람'은 삶을 기뻐할 줄도 모르고, 죽음을 싫어할 줄도 몰랐다. 세상에 나옴을 기뻐하지도 않거니와 저승으로 들어감을 거부하려 들지도 않았다. 의연히 가고 의연히 올 따름인 것이다. 그는 삶의 시작을 꺼리지도 않거니와 삶의 종말을 바라지도 않는다. 삶을 받아도 그것을 기뻐하고 그것을 잃어도 또다시 그러하다. 이것이 자기 마음으로써 도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며, 사람으로써 하늘을 돕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이를 두고 '참된 사람'이라 부른다.

만물에 통달함을 즐기는 것은 성인이 아니다. 따로 친근한 사람이 있는 것은 어짊이 아니다. 때에 앞서는 것은 현명한 것이 아니다. 이로움과 해로움이 같이 통하지 않는 것은 군자가 아니다. 명성을 좇아서 자기를 잃는 것은 선비가 아니다. 자신을 망치면서도 참되지 않는 것은 남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다.

응제왕(應帝王) - 자연에 따르는 제왕

지극한 사람의 마음쓰임은 거울과 같은 것이다. 가는 것은 전송하지 않고 오는 것은 마중하지 않는다. 변화에 호응하되 감추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사물을 이겨 내면서도 상처받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이다.

외편

변무(騈拇) - 엄지발가락과 둘째발가락이 붙어 있는 사람

천하에는 일정한 본연이 있다. 일정한 본연이란 것은 굽었어도 갈고리고 굽힌 것이 아니고, 곧아도 먹줄로써 곧게 한 것이 아니고, 둥글어도 그림쇠로 등글게 한 게 하니고, 모가 났어도 굽은 자로 모나게 한 것이 아닌 것이다. 붙어 있되 아교나 옻칠로써 붙인 것이 아니고, 묶여 있도 줄이나 새끼로써 묶여진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에 개성을 달리하여 모두가 살고 있지만 그가 그렇게 살고 있는 까닭은 알지 못한다. 다 같이 모두가 자기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그가 자기 모습을 지니게 된 까닭은 알지 못한다. 그런 것은 옛부터 지금까지 변한 것이 아니니,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도 없는 것이다.

거협(胠篋) - 남의 상자를 열고 도둑질함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며 궤짝을 여는 도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끈으로 꼭 묶고 고리에 자물쇠를 단단히 채워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일반 세상의 지혜인 것이다. 그러나 큰 도적이 오면 곧 궤짝을 짊어지고 상자를 둘러메고 주머니째 들고 달아나면서, 오직 끈과 자물쇠와 고리가 견고하지 않은 것만을 걱정한다. 그러니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이란 바로 큰 도적을 위하여 재물을 쌓아 놓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어디를 간들 도가 없을 수 있겠느냐? 남의 집안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마음대로 알아 맞추는 것은 성인이다. 남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은 용기이다. 남보다 뒤에 나오는 것은 의로움이다. 도둑질해도 되는가 안 되는가를 아는 것은 지혜이다. 고르게 나누어 갖는 것은 어짊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않고서 큰 도적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이로써 본다면 착한 사람도 성인의 도를 얻지 못하면 서지 못하고, 도척도 성인의 도를 얻지 못하면 행세하지 못한다. 천하에는 착한 사람은 적고 착하지 않은 사람은 많으니, 성인이란 천하를 이롭게 하는 점은 적고 천하를 해롭게 하는 점이 더 많은 자이다.

재유(在宥) - 있는 그대로 버려둠

천하기는 하지만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물건이다. 비천하기는 하지만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백성들이다. 귀찮기는 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일이다.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널리 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법이다. 본성과 먼 것이지만 실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의로움이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에 불과하지만 널리 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어짊이다. 절도(節度)에 불과한 것이지만 실천하여 쌓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예(禮)이다. 잘 들어 맞는 것에 불과하지만 높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덕(德)이다. 일(一)에 불과한 것이지만 여러 가지로 변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도(道)이다. 신묘(神妙)하기는 하지만 그것에 따라 행동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하늘이다.

천지(天地) - 하늘과 땅

요임금이 말하였다.
"아들이 많으면 근심이 많아지고, 부자가 되면 일이 많아지고,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아지오. 이 세 가지 것들은 덕을 기를 수 있는 것들이 못 되기에 사양한 것이오."
경계지기가 말하였다.
"처음에 나는 당신을 성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지금 보니 군자에 지나지 않는군요. 하늘은 만민을 낳고 반드시 그들에게 직분을 줍니다. 아들이 많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직분이 주어지는데 무슨 두려움이 있다는 것입니까? 부자가 된다 하더라도 사람들로 하여금 나누어 갖도록 한다면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성인이란 메추라기처럼 일정한 거처도 없고 병아리처럼 부실하게 먹으면서도, 새처럼 날아다니며 행적도 남기지 않습니다. 천하에 올바른 도가 행해지면 모두와 함께 번창하지만, 천하에 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에는 덕이나 닦으면서 한가히 지냅니다."

덕 있는 사람은 들어앉아 있을 적에도 아무런 생각이 없고, 행동함에 있어서도 어떠한 생각도 없습니다. 옳고 그르다거나 아름답고 추악하다는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온 세상을 아울러 이롭게 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온 세상을 충족시켜 주는 것을 안락이라 생각합니다. 모습은 의지할 곳 없는 듯하여 마치 어린아이가 그의 어머니를 잃은 것과 같습니다. 멍청하여 길을 가는 사람이 길을 잃은 것과도 같습니다. 쓰는 재물에는 여유가 있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생기는지는 알지를 못합니다. 음식은 충분히 먹으면서도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덕 있는 사람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효자는 그의 부모에게 잘 보이려 들지 않고 충신은 그의 임금에게 아첨하지 않는데, 그것이 신하와 자식의 훌륭한 태도이다. 부모가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부모가 행한 일을 훌륭하다 여기면 곧 세상에서는 못난 자식이라고 말한다. 임금이 말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임금이 행한 것을 훌륭하다 여기면 곧 세상에서는 그를 못난 신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그런지 어떤지는 알지 못한 일이다.

천도(天道) - 하늘의 도

모두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사로움이 없다는 것이 바로 사사로움인 것입니다. 선생은 온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생육(生育)을 잃지 않도록 하고자 하십니까? 그러면 하늘과 땅에는 본시부터 법도가 있고, 해와 달에는 본시부터 광명이 있고, 별과 성좌에는 본시부터 배열된 자리가 있고, 새와 짐승들에게는 본시부터 무리가 있고, 나무에게는 본시부터 서서 자라는 본성이 있습니다. 선생님도 그러한 자연의 덕을 본받아 행하시고, 자연의 도를 따라 나아간다면 이미 목적에 달하였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어짊과 의로움을 애써 들고 나와 북을 치고 다니면서 잃어 버린 자식을 찾듯 하십니까? 아아, 선생은 사람들의 본성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입니다.

눈으로써 볼 수 있는 것은 형체와 색깔이다. 귀로써 들을 수 있는 것은 명칭과 소리이다. 슬프다! 세상 사람들은 그 형체와 색깔과 명칭과 소리로써 그것들의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형체와 색깔과 명칭과 소리로써는 절대로 그것들의 진실을 파악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고 있으니, 세상에서야 어찌 그것을 알 수가 있겠는가?

수레바퀴를 깎을 때 엉성히 깎으면 헐렁해져 견고하게 되지 않고, 꼭 끼게 갂으면 빠듯해서 서로 들어맞지 않습니다. 엉성하지도 않고 꼭 끼지도 않게 하는 것은 손의 감각이 호응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지, 입으로 설명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법도가 존재하기는 합니다만 저는 그것을 저의 아들에게 가르쳐 줄 수가 없고, 저의 아들도 그것을 제게서 배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 칠십의 노인이 되도록 수레바퀴를 깎게 된 것입니다. 옛날 사람과 그의 전할 수 없는 정신은 함께 죽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임금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것입니다.

천운(天運) - 하늘의 운행

제가 듣건데 친함이 없다면 사랑하지도 않고, 사랑하지 않으면 효성스럽지도 않다고 했습니다. 지극한 어짊이 효성스럽지 않다고 해도 괜찮겠습니까?
장자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소. 지극한 어짊이란 고상한 것이어서 효성으로서는 본시 그것을 말할 만한 것이 못되오. 그것이 효성보다 뛰어난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효성이 될 수 없다는 말이오. 남쪽으로 가는 사람이 영(郢)에 이르러 북쪽을 바라보면 명산(冥山)은 보이지 않소. 그것은 어째서이겠소? 멀리 떠나온 때문이겠지요. 그러므로 '공경으로써 효도를 하는 것은 쉽지만 사랑으로써 효도를 하기는 어렵다. 사랑으로써 효도를 하는 것은 쉽지만 어버이를 잊기는 어렵다. 어버이를 잊는 것은 쉽지만 어버이로 하여금 자기를 잊게 하기는 어렵다. 어버이로 하여금 자기를 잊게 하는 것은 쉽지만 천하를 모두 잊게 하기는 어렵다. 천하를 모두 잊는 것은 쉽지만 천하로 하여금 나를 모두 잊게 하기는 어렵다'고 하는 것이요.

물 위를 여행하는 데에는 배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땅 위를 여행하는 데에는 수레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배로 물 위를 여행할 수 있다고 해서 땅 위에서도 그런 식으로 밀고 가려 한다면 평생 가도 얼마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옛날과 지금이란 물과 육지와 같은 것이 아닙니까? 지금 주나라의 방식을 노나라에 행하려 한다는 것은 마치 육지 위에서 배를 밀고 가려는 것과 같습니다. 수고롭기만 했지 아무런 성과도 없을 것이며 반드시 자신에게 재앙이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부(富)를 좋은 것으로 아는 사람은 남에게 벼슬을 사양하지 못하며, 출세를 좋은 것으로 아는 사람은 남에게 명예를 양보하지 못하고, 권세를 친근히 하는 사람은 남에게 권력을 맡기지 못합니다. 그것들을 가지고 있자니 두렵고, 그것들을 버리자니 슬퍼질 것입니다. 전혀 도에 대하여 살핀 것이 없어서 언제나 쉬지 않고 변동하는 것들만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런 사람들은 '하늘의 처벌을 받을 백성'인 것입니다. 원한, 은혜, 취하는 것, 주는 것, 간(諫)하는 것, 가르치는 것, 살리는 것, 죽이는 것의 여덟가지는 일을 바로 잡는 기구입니다. 오직 위대한 변화를 따라서 막히는 것이 없는 사람만이 그것들을 제대로 쓸 수 있습니다.

백조는 매일 목욕을 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매일 검은 물을 들이지 않아도 검습니다. 검고 흰 소박한 바탕은 좋고 나쁨을 따질 것이 못 됩니다. 명예라는 겉보기 모양은 널리 뽐낼 것이 못 됩니다. 샘물이 마르면 그곳 물고기들은 땅 위에 함께 모여 서로 물을 뿜어 주고 서로 침으로 적셔 줍니다. 그러나 그것은 강물과 호수 속에서 서로를 잊고 지내는 것만 못한 것입니다.

백역(白鶂)이란 새는 암수컷이 서로 바라보면서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는데도 정이 통하여 새끼를 뱁니다. 벌레는 수컷이 바람 부는 위쪽에서 울고 암컷이 바람 부는 아래쪽에서 호응하기만 해도 새끼를 뱁니다. 유(類)란 짐승은 자신이 암컷 수컷을 다 겸하기 때문에 정을 통하여 새끼를 뱁니다. 본성은 바뀌어질 수가 없고, 천명도 변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은 멈출 수가 없고, 도는 막히는 수가 없습니다. 진실로 도를 터득하기만 한다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고, 도를 잃으면 뜻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추수(秋水) - 가을 물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하여 얘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공간의 구속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 벌레에게 얼음에 관한 얘기를 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시간의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비뚤어진 선비에게 도에 관하여 얘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가르침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을 헤어려 보면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에 비길 바가 못 된다. 그가 살아 있는 시간이란 그가 살아 있지 못한 시간에 비길 바가 못 된다. 그러한 지극히 작은 입장에서 지극히 큰 영역을 추궁하려 들고 있으므로, 미혹되고 혼란하여 스스로 안정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또한 터럭 끝을 지극히 미세한 물건이라고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하늘과 땅이 지극히 큰 영역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을 또 어찌 알겠는가?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보면 그 전체를 다 볼 수가 없고, 큰 것에서 작은 것을 본다면 분명히 보이지 않는다. 가늘다는 것은 작은 것 중에서도 가늘다는 뜻이다. 지극히 크다는 것은 큰 것 중에서도 아주 크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다 볼 수 없고 잘 보이지 않는 등의 형편이 다른 것은 자연의 형세가 그러한 것이다. 가늘다든가 굵다든가 하는 것은 형체가 있음으로써 결정되는 것이다. 형체가 없는 것은 수로써 나눌 수가 없는 것이다. 끌어안을 수도 없이 큰 것은 수로써 크기를 추궁할 수 없는 것이다. 말로써 논할 수 있는 것이란 물건으로써 큰 것이다. 뜻으로서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물건으로서 가는 것이다. 말로써 논할 수가 없고 뜻으로써 살펴 인지할 수 없는 것은 가늘고 크다는 것을 결정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도의 입장에서 본다면 물건에는 귀하고 천한 것이 없다. 물건 자체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은 귀하고 남은 천한 것이다. 세속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귀하고 천한 것은 자기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이 정해 주는 것이다. 상대적인 관심에서 볼 때에 그것에 비하여 크다는 입장에서 말하면 만물에는 크지 않는 것이 없게 되며, 그것에 비하여 작다는 입장에서 보면 만물에는 작지 않는 것이 없게 된다.

들보나 기둥 재목은 성벽을 무너뜨리는 데는 유용하지만 구멍을 막는 데에는 소용없다. 그것은 기구가 다르기 때문이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릴 수 있지만 쥐를 잡는 데에는 살쾡이만 못하다. 그것은 재주가 다르기 때문이다. 올빼미는 밤에는 벼룩을 잡고 터럭 끝도 볼 수 있지만 낮에 나와서는 눈을 뜨고도 큰 산조차 보지 못한다. 그것은 본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묻노니 어째서 옳다는 것은 존중하고 그르다는 것은 무시하며, 다스림은 존중하고 혼란은 무시하는가? 그것은 하늘과 땅의 이치와 만물의 진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하늘은 존중하면서 땅은 무시하고, 음(陰)은 존중하면서도 양(陽)은 무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그것이 통용될 수 없는 것임은 분명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런 주장을 버리지 않고 내세우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가 아니면 거짓말쟁이인 것이다.

도를 아는 사람은 반드시 이치에 통달해 있고, 이치에 통달한 사람은 반드시 임기응변에 밝다. 임기응변에 밝은 사람은 사물에 의하여 자신이 해를 받는 일이 없다. 지극한 덕을 지닌 사람은 불도 그를 뜨겁게 하지 못하고, 물도 그를 빠져 죽게 하지 못하며, 추위와 더위도 그를 해치는 수가 없고, 새나 짐승들도 그를 상하게 하는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것들은 가벼이 여긴다는 말도 아니다. 편안과 위험을 살피고 화(禍)와 복(福) 어느 것에나 편히 지내며, 자기의 거취를 신중히 함으로써 아무것도 그를 해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연을 그의 내부에 존재케 하고, 인위적인 것은 밖으로 내보내어, 그의 덕이 자연에 있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 속을 다니면서도 교룡(蛟龍)이나 용을 피하지 않는 것은 어부들의 용기이다. 육지를 다니면서도 외뿔소나 호랑이를 피하지 않는 것은 사냥꾼들의 용기이다. 흰 칼날이 눈앞에 맞부딪치고 있어도 죽음을 삶과 같이 여기는 것은 열사(烈士)들의 용기이다. 자기가 곤궁해진 것은 운명임을 알고, 뜻대로 되자면 시세를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알아 큰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성인의 용기이다.

남방에 새가 있는데 그 이름을 원추(鵷鶵)라 부른다네. 자네도 그것을 알겠지? 원추라는 새는 남해에서 출발하면 북해까지 날아가는데,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단 샘물이 아니라면 마시지 않네. 그런데 솔개가 썩은 쥐를 갖고 있다가 원추가 날아가자, 그를 우러러보면서 끽 소리를 내며 자기 것을 빼앗을 까봐 놀랐다 하네. 지금 자네는 양나라 때문에 나를 보고 끽 소리를 내는 것인가?

지락(至樂) - 지극한 즐거움

옛날에 바다 새가 노(魯)나라 교외에 와서 내려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그 새를 맞이하여 종묘로 불러들여 잔치를 베풀고 구소(九韶)의 음악을 연주하여 즐겁게 해 주고, 쇠고기와 양고기, 돼지고기로 안주를 삼도록 하였다. 새는 눈을 멍하니 드고 걱정하고 슬퍼하면서 한 조각의 고기도 먹지 못하고 한 잔의 술도 마시지 못하고서 사흘 만에 죽어버렸다. 이것은 사람인 자기를 양육하던 방법으로 새를 양육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려면 마땅히 그를 깊은 숲속에서 살게 하고, 호수 가에 노닐게 하며, 강이나 호수에서 헤엄치게 하고, 미꾸라지와 송사리를 잡아 먹게 하며, 같은 새들과 줄지어 날아가다 내려앉고 멋대로 유유히 지내게 하여야만 되는 것이다. 새는 사람의 말조차도 듣기 싫어하거늘 어찌 시끄러운 음악을 견디겠는가?

달생(達生) - 삶의 진실에 통달함

삶의 실정에 통달한 사람은 타고난 본성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일에는 힘쓰지 않는다. 운명의 진실에 통달한 사람은 지혜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일에는 힘쓰지 않는다. 육체를 보양하려면 반드시 먼저 물건이 있어야 하지만, 남아돌아가는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육체를 보양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삶을 지탱하자면 반드시 먼저 육체를 손상시키지 말아야 할 것은데, 육체가 손상되지 않으면서도 삶을 잃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삶이 태어나는 것은 아무도 물리칠 수가 없으며, 삶이 떠나 버리는 것도 아무도 멈추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술에 취한 사람은 수레에서 떨어져도 다치기는 할지언정 죽지는 않는다네. 몸의 뼈마디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만 그를 손상시키는 점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은, 술취한 사람의 정신은 완전한 상태에 있기 때문일세. 그는 수레에 타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떨어지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네. 죽음이나 삶과 놀람과 두려움이 그의 가슴 속에 스며들지 않으므로 어떤 물건에 부딪친다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일세. 그는 술에 의하여 완전한 정신 상태를 얻고 있으므로 이와 같을 수 있는 것이네. 그러니 하물며 자연에 의하여 완전한 정신 상태를 얻은 사람이야 어떻겠는가?

질그릇을 내기로 걸고 활을 쏘면 잘 쏠 수 있지만, 띠 고리를 내기로 걸고 쏘면 마음이 켕기게 되고, 황금을 내기로 걸고 쏘면 눈이 가물가물하게 된다. 그의 기술은 언제나 같지만 아껴야 할 물건이 있게 되면 밖의 물건이 소중히 여겨지게 된다. 누구나 밖의 물건을 소중히 여기게 되면 자기 속 마음은 졸렬해지는 것이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양생을 잘하는 사람은 양을 치는 것과 같은 것이어서, 그 중 뒤지는 놈을 발견하여 채찍질을 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노 나라에서 선표(單豹)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위 굴 속에 살면서 골짜기 물을 마시고 지냈습니다. 백성들과 이익을 다투지 않고, 나이가 칠십이 되어도 어린아이 같은 얼굴빛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굶주린 호랑이를 만나 그 굶주린 호랑이가 그를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또 장의(張毅)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부잣집이건 가난한 집이건 어디에나 뛰어다니며 사귀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이 사십 세에 열병에 걸려 죽어 버렸습니다. 선표는 그의 속마음을 길렀으나 그의 외형을 호랑이가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장의는 그의 외부의 사귐을 잘하였으나 그의 안에서 병이 그를 공격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가 그 중 뒤지는 놈에 채찍질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마음 속에 엉긴 기운이 흩어지기만 하고 되돌아오지 않으면 곧 정신 상태가 불안전하게 됩니다. 기운이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오지 않으면 곧 사람을 쉽사리 성내게 만듭니다. 내려가기만 하고 올라오지 않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잘 잊도록 만듭니다. 올라가지도 않고 내려오지도 않아서 몸 속에 담겨 심장에 가득 차면 곧 병이 됩니다.

산목(山木) - 산 속의 나무

배를 나란히 하고 황하를 건널 적에 만약 빈 배가 와서 자기 배에 부딪쳤다면 비록 마음이 좁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성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그 배 위에 있다면 곧 소리쳐 배를 저리로 저어 가라고 할 것입니다. 한 번 소리쳐 듣지 못하면 두 번 소리치고, 그래도 듣지 못하면 세 번 소리치면서 반드시 나쁜 소리가 거기에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 앞에서는 성내지 않다가 지금은 성을 내는 것은 앞의 것은 빈 배였는데 지금 것은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텅 비게 하고서 세상에 노닌다면 그 누가 그를 해칠 수가 있겠습니까?

동해에 새가 있는데 이름을 의태(意怠)라 부릅니다. 그 새의 성질은 푸덕푸덕 더디게 날아다녀 아무 능력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새들이 이끌어 주어야 날며, 다른 새들에게 밀려 내려 앉게 됩니다. 나아갈 적에는 감히 다른 새보다 앞서지 않고, 물러석 적에는 감히 다른 새보다 뒤지지를 않습니다. 음식은 감히 다른 새보다 먼저 먹지 않으며 반드시 다른 새가 먹고 남긴 것을 먹습니다. 그러므로 그 새는 다른 새들 무리에서 배척 당하지 않고 밖의 사람들도 끝내 해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환난을 면하고 있습니다. 곧은 나무는 먼저 잘리고 단 샘물은 먼저 말라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렇지 못하고 지식을 꾸며 어리석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몸을 닦음으로써 남의 더러움을 밝혀 내며, 밝게 해나 달이 내걸려 있듯이 자기를 드러내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환난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가나라 사람이 도망친 얘기를 듣지 못하셨습니까? 그 나라의 임회(林回)는 천금의 구슬을 버리고 어린아이를 업고서 달아났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를 보고서 '그 값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갓난아이의 값은 얼마되지 않고,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말하면 갓난아이가 훨씬 더 거추장스럽습니다. 천금의 구슬을 버리고 갓난아이를 업고 도망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 때 임회는 '그 구슬이란 이익 때문에 나와 맺어진 것이고, 이 아이는 하늘에 의하여 나와 맺어진 것이오. 이익으로 맺어진 것이란 궁지에 몰리거나 환난을 당하거나 해를 보게 되면 서로 버려지게 마련이오. 하늘에 의하여 맺어진 것은 궁지에 몰리거나 환난을 당하거나 해를 보게 되면 서로 거두어 주어야만 하는 것이오'하고 대답했습니다. 서로 거두어 주는 사이와 서로 버리는 사이란 먼 것입니다. 또한 군자의 사귐이란 담담하기 맹물과 같고, 소인들의 사귐이란 달콤하기 단술과 같습니다. 군자들의 사이는 담담하지만 더욱 친해지고, 소인들의 사이는 달콤하지만 결국 끊어지게 됩니다. 이유 없이 맺어진 것들이란 이유 없이 떨어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잡편(雜篇)

제게 지혜가 없으면 사람들은 저를 어리석다고 말할 것이고, 지혜가 많으면 도리어 저 자신을 걱정하게 될 것입니다. 어질지 않으면 곧 남을 해치게 될 것이고, 어질고 보면 도리어 제 몸을 걱정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의롭지 않으면 남에게 해를 가할 것이고, 의롭고 보면 도리어 저 자신을 걱정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이런 처지를 면할 수 있게 되겠습니까? 이상의 세 가지 문제가 제가 걱정하는 점입니다.
노자가 말하였다.
조금 전에 나는 당신의 두 눈썹 사이를 보고서 당신의 문제를 알아 맞히고 있었소. 당신은 골똘히 생각하며 근심하기를 자기 부모를 여읜 듯하고, 장대를 들고서 바다 깊이를 재려는 사람같이 하고 있소. 당신은 자기 본성을 잃은 사람이오. 멍청하니 당신은 당신의 참된 본성으로 되돌아가려 하지만 어떻게 할는지를 모르고 있소. 가련하오.

삶을 보양하는 방법이란 위대한 도 하나를 지니는 것이며, 자기 본성을 잃지 않는 것이오. 점치는 것에 의하여 자기의 길흉(吉凶)을 판단하려 들지 않아야 하고, 자기 분수를 지킬 줄 알아야 하고, 인위적인 행위를 그만둘 수 있어야 하오. 남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자기를 충실히 지닐 수 있어야 하오. 행동이 자연스러워야 하고, 마음은 거리낌이 없어야 하며, 아이처럼 순진할 수 있어야 하오. 아이는 하루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데, 그것은 지극히 자연과 조화가 되어 있기 때문이오. 또 하루 종일 주먹을 쥐고 있어도 손이 저려지지 않는데 그것은 자연의 덕과 일치되어 있기 대문이오. 하루 종일 보면서도 눈을 깜빡거리지 않는데, 밖의 물건에 대하여 치우쳐져 있지 않기 때문이오. 길을 가도 가는 곳을 알지 못하고, 앉아 있어도 할 일을 알지 못하오. 밖의 물건에 순응하고, 자연의 물결에 자기를 맡기오. 이것이 삶을 보양하는 방법이오.

시험삼아 '옮겨가는 것'에 대하여 논하여 보기로 한다. 그것은 자기 삶을 근본으로 삼고, 자기 지혜를 스승으로 모시기 대문에 시비를 따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명분과 내용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위주로 하여 남들로 하여금 자기의 명분을 따르게 하려 들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죽음으로써 명분을 보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쓸 데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슬기롭다 하고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한다. 뜻이 통하는 것을 명예롭다고 하고, 궁지에 몰리는 것을 욕되다고 한다. '옮겨가는 것'이란 지금 사람들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남의 발을 밟으면 잘못을 사과하지만 자기 형의 발을 밟았다면 '아아' 소리 정도만 내고, 크게 친한 사이면 아무런 표시도 않는다. 그러므로 "지극한 예는 자기와 남의 구별을 두지 않고, 지극한 의로움은 자기와 물건을 구분하지 않고, 지극한 슬기는 꾀하는 일이 없고, 지극한 어짊은 각별히 친한 이가 없고, 지극한 신의는 금전이 개입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도라는 것은 덕을 늘어놓은 것이다. 삶이란 것은 덕의 빛인 것이다. 본성이라는 것은 삶의 바탕인 것이다. 본성이 움직이는 것을 행위라고 말하는데, 행위가 인위적이면 그것을 본성을 잃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앎이란 물건과의 접촉에서 생겨난다. 앎이란 생각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나 슬기로운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는 것은, 곁눈질로써 물건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행동을 하되 자연을 따라 부득이하게 움직이는 것을 덕이라 말한다. 행동을 하되 자기 본성을 잃는 일이 없는 것을 다스림이라 말한다. 명성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과 반대가 되지만 실제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된다.

당신은 월나라의 유배당한 사람 얘기를 듣지 못했습니까? 나라를 떠나가다 며칠 지나서는 그가 전에 알았던 사람을 보기만 하여도 기뻤습니다. 나라를 떠난 지 수십 일이 되자, 전에 자기 나라에서 만난 일이 있는 사람을 보기만 하여도 기뻤습니다. 일 년이 넘자 자기가 아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보기만 하여도 기뻤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떠난 지가 오래될수록 사람을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텅 빈 인적 드문 고장으로 도망하여 잡초가 족제비나 다닐 듯한 좁은 길을 막고 있는 고장에서 오랜 동안 외로이 있게 되면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터벅터벅 들리기만 하여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형제나 친척들이 웃고 얘기하는 소리가 그의 곁에서 들릴 적에야 어떻겠습니까? 오랜 동안 참된 사람의 말로써 웃고 얘기하는 소리가 우리 임금님 곁에는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 말을 먹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역시 말의 본성을 해치는 것들을 제거해 주기만 하면 그뿐일 것입니다.

개는 잘 짖는다고 좋은 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말을 잘 한다고 현명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위대함이야 말과 상관이 있겠습니까? 스스로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위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스스로 내세우는 것이야 덕이 되겠습니까? 위대함이 갖추어져 있기로는, 하늘과 땅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추구하여 위대함이 갖추어진 것이겠습니까? 위대함이 갖추어진 것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추구하는 것이 없고, 잃는 것도 없고 버리는 것도 없어야 하며, 밖의 일이나 물건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본성을 바꾸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자기 본성으로 되돌아옴으로써 자연스럽게 막히는 일이 없고, 옛 방법을 따르되 옛 방법에 합치시키려 들지 않는 것이 위대한 사람의 진실한 모습입니다.

이 세상에는 남의 말을 잘 따르는 사람들이 있고, 일시적인 안락을 꾀하는 사람들이 있고, 세상 일에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남의 말을 잘 따르는 사람들이란 한 선생의 이론을 배우기만 하면 얌전히 그것을 따라 자기의 학설로 받아들여 만족하는 자들이다.
일시적인 안락을 꾀하는 사람들이란 돼지 몸에 붙은 이와 같은 자들이다.
세상 일에 애쓰는 사람들이란 순인금과 같은 자들이다. 양고기는 개미를 좋아하지 않지만 개미들은 양고기를 좋아하여 모여드는데, 양고기가 노리기 때문이다. 순은 어짊과 의로움이라는 노린내 나는 행동을 하여 백성들은 그를 좋아한다.
신 같은 사람(神人)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모여드는 것을 싫어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도 이들과 친근히 지내지 않는다. 친근히 지내지 않으면 이익을 기대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매우 친한 사람도 없고, 매우 관계가 먼 사람도 없다. 덕을 지니고 조화된 마음을 기르면서 천하에 순응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대로 물건을 보고 귀에 들리는 대로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본성으로 되돌아가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자연스러움으로써 인간을 대하지, 인위적인 행위로 자연의 변화에 참견하지 않는다.

만물의 근원이 하나라는(大一)을 알고, 만물의 근원이 지극히 고요하고 움직임이 없다는 대음(大陰)을 알고, 만물을 분별없이 하나로 보는 대목(大目)을 알고, 자연의 조화가 균등히 작용한다는 대균(大均)을 알고, 자연에는 일정한 법도가 있다는 대방(大方)을 알고, 자연이란 진실하다는 대신(大信)을 알고, 자연이란 안정된 것이라는 대정(大定)을 알면, 지극한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연으로부터 도망을 치고 그의 본성을 떠나 타고는 성정을 망치고 그의 신명을 잃고서 여러 가지 세상 일에 종사한다. 그러므로 그의 본성을 거칠게 함부로 다루는 사람은 욕망과 증오의 움이 터서 그의 성격을 이룬다. 갈대 같은 잡초들이 자라나, 처음 싹이 틀 적에는 나의 몸에 도움을 줄 듯이 보이지만 곧 나의 본성을 뽑아 버려, 위션은 무너지고 아랫편은 새면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곳에 파탄이 생긴다. 그래서 종기와 부스럼이 생기고 열병에 걸리고 당뇨병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시간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세상에는 변화가 있다. 화(禍)와 복(福)은 유행하는 것이기 대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되는 수도 있다. 모두가 제각기 따르는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한편에서는 바르다고 인정되는 것이 한편에서는 잘못된 것이 될 수도 있다. 큰 택지에 비유하면, 갖가지 동식물이 한데 어울려 살고 있는 것과 같다. 큰 산에 비추어 본다면, 나무나 바위들이 다 같이 자리잡고 있는 것과 같다. 이것을 고을의 여론이라 말하는 것이다.

나무와 나무를 마찰시키면 불이 붙는다. 쇠가 불 속에 오래 있으면 녹는다. 음과 양의 기운이 엇섞여지면 하늘과 땅이 크게 놀라 움직인다. 그래서 이에 번개와 천둥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빗속에도 벼락이 쳐서 느티나무를 불태우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이로움과 해로움이라는 매우 큰 우환이 있는데 두 가지 중 어느 편에 빠져도 그 피해로부터 도망칠 곳이 없는 것이다. 언제나 두려워함으로써 아무 일도 이룩하지 못하게 되며, 그의 마음은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불안하다. 또 고민이 마음에 엉겨 근심에 잠기게 되며, 이로움과 해로움이라는 생각이 서로 마찰을 일으켜 너무 과다한 불 같은 욕망을 낳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의 화기(和氣)를 불태우게 된다. 마음이 달처럼 맑고 고요해도 본시 사람은 불 같은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모든 것이 무너져 올바른 도리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어제 이곳을 오는데 도중에 나를 부르는 자가 있었습니다. 내가 돌아다보니 수레바퀴 자국 가운데의 붕어였습니다. 내가 붕어에게 물었습니다. '붕어야, 너는 무얼 하고 있는 거냐?' 붕어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동해의 물결 속에 노닐던 놈입니다. 선생께서 한 말이나 몇 되박의 물이 있거든 제게 부어 살려 주십시오.' 내가 말했습니다. '그러지. 내 남쪽으로 가서 오나라와 월나라의 임금을 설복시켜 서강(西江)의 물을 끌어다가 너를 마중하도록 하겠다. 괜찮겠느냐?' 붕어는 성이 나서 얼굴빛이 변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늘 필요한 물을 잃고 있어서 당장 몸 둘 곳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한 말이나 몇 되박의 물만 있으면 사는 것입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하다가는 차라리 저를 건어물전에 가서 찾는 편이 옳게 될 겁니다.'

유학자가 <시경>과 <예기>를 근거로 하여 남의 무덤을 도굴하였다. 함께 간 큰 선비가 무덤 위에서 아래쪽에 대고 말하였다.
"동녘이 밝아온다.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느냐?"
작은 선비가 속에서 말하였다.
"시의(尸衣)를 아직 다 벗기지 못했는데, 입 속에 구슬이 물려 있습니다."
"<시경>에도 본시 이르기를 '푸른 보리가 무덤가에 자라고 있네. 살아서 은혜를 베풀지도 못했는데, 죽어서 어찌 구슬을 물겠는가?'라고 하였네. 그 놈의 머리카락을 잡고, 그의 턱수염을 누른 다음 쇠망치로 그의 턱을 쳐서 천천히 그의 볼까지 벌린 다음, 입 속의 구슬이 다치지 않도록 잘 꺼내거라."

혜자가 장자에게 말하였다.
"자네의 말은 쓸데가 없네"
장자가 말하였다.
"쓸데가 없음을 알아야만 비로소 쓸 곳을 얘기할 수가 있는 것일세. 땅은 넓고 크기 짝이 없지만, 사람들이 걸을 때 쓰는 것은 발로 밟는 부분뿐일세. 그렇다고 발을 재어 가지고, 그 밖의 땅은 땅 속 황천에 이르기까지 깎아내려 버린다면 사람들이 그대로 땅을 쓸 수가 있겠는가?"
혜자가 말하였다.
"쓸 수 없지."
장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쓸데없는 것의 쓰임도 잘 알게 되었을 것일세."

통발이란 것은 물고기를 잡는 기구이지만,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게 된다. 올가미란 것은 토끼를 잡는 기구이지만 토끼를 잡고나면 올가미를 잊게 된다. 말이란 것은 뜻을 표현하는 기구이지만 뜻을 표현하고 나면 말을 잊게 된다. 우리는 어쩌하면 말을 잊은 사람들과 더불어 얘기할 수 있게 되겠는가?

삶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록 존귀하고 부하다 하더라도 몸을 보양하는 수단을 위하여 자신을 손상케 하지 않는다. 비록 가난하고 천하다 하더라도 이익을 위하여 육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높은 벼슬과 존귀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도 모두가 생활 수단을 잃는 것을 중시한다. 그래서 이익을 보기만 하면 가벼이 그 자신을 파멸시키고 있으니, 어찌 미혹된 것이 아니겠는가?

수치를 모르는 자가 부자가 되고, 말이 많은 자가 출세합니다. 큰 명예와 이익이란 거의 수치도 모르고 말만 많은 자들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명예란 관점에서 보든가, 이익으로 계산하든가 말 많은 것이 가장 좋은 것이 됩니다. 만약 명예와 이익을 내버리고 마음에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선비의 행동으로서는 그의 천성을 간직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평범한 것이 행복이 되며, 남음이 있으면 해가 된다는 것은 모든 사물이 다 그러한데, 재물에 있어서는 더욱 심하다. 지금 부자들은 귀로서는 종·북·저·피리의 소리를 들으며 즐기고, 입으로는 짐승 고기와 맛있는 술 맛을 실컷 봄으로써 그의 뜻을 만족시키는 한편 그의 할 일은 잊고 있으니, 혼란이라고 할 만한 일이다. 자기의 성한 기운에 빠져들어가 무거운 짐을 지고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고통이라고 할 만한 일이다. 재물을 탐하여 병에 걸리고, 권세를 탐하는 데 정력을 다 쓰며, 고요히 지낼 때면 정욕에 빠지고, 몸이 윤택해지면 정력을 낭비하니, 이것은 질병이라고 할 만한 일이다. 부를 바라고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마음에 담을 둘러친 것처럼 장애가 생기지만 그것을 피할 줄은 모르고 그대로 정력을 사용하기만 하니, 이것은 치욕이라고 할 만한 일이다. 재물이 쌓여봤자 쓸데가 없는데도 재물을 모을 생각을 품은 채 버리지 않아 마음 번뇌로 가득 차는데도 이익을 추구하기만 하니, 이것은 우환이라 할 만한 일이다. 집안에 있으면 강도가 들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밖에 나가면 도적들의 해를 받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집에는 둘레에 망루와 내다보는 창을 만들어 놓고 밖에는 감히 홀로 다니지 못하니, 이것은 두려워하는 것이라 할 만한 것이다. 이 여섯 가지 것은 지극한 피해인 것이다.

자기가 할 일이 아닌데도 그 일을 하는 것을 외람된 짓이라 합니다.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데도 나아가 가까이 하는 것을 간사한 짓이라 합니다. 남의 뜻에 맞도록 말을 이끌어 나가는 것을 아첨하는 짓이라고 합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얘기하는 것을 알랑거리는 짓이라고 합니다. 남의 약한 점을 얘기하기 좋아하는 것을 모함하는 짓이라 합니다. 사귀던 사람을 떨어지게 하고 친한 사람을 멀어지게 하는 것을 해치는 짓이라 합니다. 남을 칭찬하고는 속임으로써 남을 악에 떨어뜨리는 것을 간악한 짓이라 합니다.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두 가지를 다 받아들이며 얼굴빛을 적응시키고, 그가 바라는 목적을 이루는 것을 음험한 짓이라합니다. 이상의 여덟가지 흠이란 것은, 밖으로는 사람들을 어지럽히고 안으로는 자신을 손상케 하는 것입니다.
큰 일을 해 내기 좋아하고 변혁을 잘 시켜 일정한 것들까지 바꾸면서 공명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을 참람된 짓이라 합니다. 자기만 아는 지식을 가지고 일을 멋대로 하며 남의 것을 침범하여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것을 탐욕스러운 짓이라 합니다. 잘못을 알고도 고치지 않고 간하는 말을 들으면 그 나쁜 행동을 더 심하게 하는 것을 포악한 짓이라 합니다. 남이 자기에게 찬성하면 괜찮지만 자기에게 찬성하지 않으면 비록 좋은 일이라도 좋지 않다고 하는 것을 교만한 짓이라고 합니다. 이상이 네 가지 환난입니다. 이 여덟가지 흠을 버리고 네 가지 환난을 행하지 않아야만 비로서 가르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충성스럽고 곧은 것은 공로가 위주가 되며, 술을 마시는 것은 즐거움이 위주가 되며, 상을 치르는 것은 슬픔이 위주가 되며, 부모를 섬기는 것은 부모의 마음에 들게 하는 것이 위주가 됩니다. 일의 공로를 훌륭하게 이룩하는 데 있어서 그 방법이 일정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를 섬겨 마음에 들도록 해 드리는 데 있어서는 방법을 논할 일이 아닙니다. 술을 마심으로써 즐기는 데 있어서는 술그릇을 이것저것 고를 것이 없습니다. 상을 당하여 슬퍼함에 있어서는 예의를 따질 일이 아닙니다. 예의라는 것은 세속적인 행동 기준입니다. 진실함이란 것은 하늘로부터 타고난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한 자연은 변경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도를 알기는 쉽지만, 그것을 말하지 않기는 어렵다.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이 자연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알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인위로 나아가는 근거가 된다. 옛날 사람들은 자연스러웠지 인위적이 아니었다.

주평만(朱泙漫)은 용 잡는 방법을 지리익(支離益)에게서 배웠는데, 수업료로 천금이 나가는 집을 세 채나 팔아 올렸다. 그러나 기술을 습득한 다음에는 그 기술을 쓸 곳이 없었다.

성인은 꼭 그러한 것도 꼭 그렇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력에 의존하는 일이 없다. 보통 사람들은 꼭 그렇지 않은 것도 꼭 그렇다고 고집한다. 그래서 흔히 무력을 써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무력을 따르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에는 추구하는 것이 있게 된다. 이처럼 무력에 의지하여 행동하면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지혜가 뛰어나면 많은 비난을 받게 되고, 용기와 힘이 있으면 많은 원한을 사게 되며, 어짊과 의로움을 내세우면 많은 책망을 듣게 된다. 삶의 실정에 통달해 있는 사람은 위대하나 지식에만 통달해 있는 사람은 작은 사람이다. 위대한 천명에 통달해 있는 사람은 자연을 따라 자유롭지만 세상의 작은 일에 통달해 있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

제자들이 말하였다.
"저희들은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을 먹어 버릴까 두렵습니다."
장자가 말하였다.
"땅 위에 놓아 두면 까마귀와 솔개가 먹을 것이고, 땅 아래에 묻으면 개미들이 먹을 것이다. 이쪽 놈이 먹는다고 그것을 빼앗아 딴 놈들에게 주는 셈이다. 어찌 그렇게 편벽되게 생각하느냐?"

여섯가지 경서
《시경(詩經)》《서경(書經)》《예기(禮記)》《악기(樂記)》《역경(易經)》《춘추(春秋)》

<시경>은 사람들의 뜻을 서술한 것이고, <서경>은 사건들을 서술한 것이며, <예경>은 행동에 대하여 서술한 것이고, <악경>은 조화에 대하여 서술한 것이다. <역경>은 음양의 변화를 서술한 것이고, <춘추>는 명분에 대하여 서술한 것이다.

나나니벌 : 배추벌레를 물어다 놓고 거기에 알을 낳아, 거기에서 새끼들이 영양을 취하도록 한다. 옛 사람들은 그것을 잘못 알고 배추벌레가 나나니벌로 변한다고 믿었다.

한단은 조나라의 도읍지인데, 그 도읍의 걸음걸이를 멋지게 여기고 연나라 시골뜨기가 걸음걸이를 배우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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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랑자의 이야기.
    월풍도원에선 기부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