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두 크리슈나무르티가 말하는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현대 사회에서 살기 위해선 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어떤 만족을 얻기 위해 목표를 세워야 하고,
앞날을 미리 내다보아야 하기도 합니다.
목표가 달성되면 잠시나마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곤 더 큰 만족을 위해 다시 목표를 세워요.
운이 좋다면 몇 번 더 웃겠지만,
결국은 벽에 부딪힙니다.
그렇게 기대했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비통함에 빠져요.

요즘엔 알아야 할 것도 많습니다.
남들이 아는 걸 모르면 바보 소리를 듣기 십상이에요.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이 정말 아는 것일까요?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 내린 판단의 집합입니다.
저는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되고 싶은 열망도 없어요.
굳이 지식을 머릿속에 구겨 넣어야 할 필요를 못 느낍니다.
머리보다 가슴으로 사는 게 행복하기 때문이지요.

아일랜드에서 지내는 동안, 모순투성이의 제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건 내겐 아직 행복이 특별해서이고,
자유롭다고 떠드는 것도 아직 자유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계속 자유며 행복을 외치고 있었지요.
이 책에서 크리슈나무르티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이제야 좀 감이 잡혀요.
글이나 말로 설명되는 건 한정된 것뿐이란 소리가요.

라오스 쌈따이-'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 크리슈나무르티 (Freedom from the Known by Jiddu Krishnamurti)'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 크리슈나무르티의 철학

어떤 관념(생각)이 있는 자리엔 감수성이 없는데, 관념이란 과거의 것이며, 그럼에도 현재를 지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마음은 더이상 민첩하지도, 유연하지도, 주의 깊지도 않다.

어떤 것을 이해하려면 당신은 그것과 살아야 하고, 그것을 관찰해야 하고, 그것의 내용을 모두 알아야 하고, 그것의 본질, 구조, 운동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당신 자신과 함께 살아보려고 한 적이 있는가? 있다면, 당신은 당신 자신이 정적 상태가 아니라 싱싱하게 살아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살아 있는 것과 더불어 살려면 당신의 마음 역시 살아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만일 마음이 의견들, 판단들, 그리고 가치들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것은 살아 있을 수 없다.

현재에 산다는 것은 아름다움의 즉각적 지각이며, 그것으로부터 쾌락을 찾는 일 없이 그 속에 있는 커다란 기쁨이다.

우리가 자유를 원한다고 말할 때, 우리가 그것을 원하는 이유는, 그것이 아주 대단하게 만족시켜 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그리고 궁극적인 만족은 자기실현이라는 개인 특유의 관념이다. 우리가 정말 찾는 것은 전혀 불만족이 없는 만족인 것이다.

우리는 내적으로 가난하게 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래야만 아무 요구, 아무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런 우리(있는 우리)와 그래야 하는 우리(있어야 하는 우리)를 비교한다. 그래야 하는 것(당위)은 우리가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의 투영이다.

당신이 <나는 자유롭다>고 말하면 당신은 자유롭지 않다. 그것은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 그가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이미 지나간 어떤 것의 기억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자유는 원망,소원 갈망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연스럽게 올 수 있을 따름이다. 당신이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 이미지를 만들어 내므로써 그걸 찾을 수 없다.
그걸(자유)을 만나려면 마음은 삶을 바라보는 법을 알아야 하며, 이것은 시간의 속박 없이, 의식의 영역 너머에 있는 자유를 위한 굉장한 운동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 속에서의 변화가 시간 속에서 이룩된다고 생각하며, 자신들 속에서의 질서가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지고 하루하루 증가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은 질서나 평화를 가져오지 않으며, 그래서 우리는 점진성에 의해 생각하기를 그쳐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평화롭게 안주할 내일이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순간에 질서 있게 되지 않으면 안된다. 진짜 위험이 있을 때 시간은 사라진다. 그렇지 않은가? 거기엔 즉각적인 행동이 있다.

당신은 시간이 무엇인지 아는가? 시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연대순의 시간이 아니라, 심리적 시간을 아는가? 그것은 생각과 행동의 간격이다. 생각이란 분명히 자기 보호를 위한 것이다. 즉 그것은 안전하려는 생각이다. 행동은 언제나 즉각적이다. 그것은 과거의 것도 아니고 미래의 것도 아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고 느낄 때, 거기엔 사랑이 없다.

사랑할 때는 자유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사랑은 과거의 것인 생각의 산물이 아니다. 생각은 사랑을 심어 기를 수 없다. 사랑은 질투와 양립하거나 질투에 사로잡힐 수 없는데, 왜냐하면 질투는 과거의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언제나, 능동적인 현재이다. 그것은 <나는 사랑할 것이다>이거나 <나는 사랑했었다>가 아니다.

어떤 사람을 정말 사랑하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당신은 모르는가- 증오 없이, 질투 없이, 분노 없이, 그가 행동하고 생각하는 바에 간섭하고자 하는 바 없이, 비난 없이, 비교 없이 사랑하는 것- 당신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가? 사랑이 있는 곳에 비교가 있는가?

돕고, 주고, 봉사한다는 말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모두 무엇인가? 아름다움과 빛과 사랑스러움으로 가득 찬 꽃이 <나는 주고, 돕고, 봉사한다>고 말하는가? 그것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것도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땅을 덮고 있다.

단지 완전한 주의(Attention [집중 concentration이 아니다])만을 기울인다면, 당신은 관찰자도 없고 관찰되는 것도 없으며, 생각하는 사람도 없고 생각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관계, 태도, 활동들에서 안전을 바라지만, 이미 보았듯이, 실은 안전 같은 것은 없다. 어떤 관계에 있어서나 어떤 형태의 안전도 없다는 것을 아는 것- 심리적으로는 영구적인 것이 없음을 깨닫는 것은 삶에 대해 완전히 다른 접근을 하게 한다.

요구는 이중성으로부터 나온다 - <나는 불행하다. 그래서 나는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행복해야 한다는 바로 그 요구가 불행이다. 누가 착해지려고 노력할 때, 바로 그 선이 그것의 반대인 악이다.
긍정된 모든 것은 그것 자체의 반대를 포함하고 있으며,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은 그것이 극복하고자 하는 그것을 강화한다. 당신이 진실 혹은 리얼리티를 체험하고 싶어할 때, 바로 그 요구는 있는 것(what is)에 대한 당신의 불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따라서 그 요구는 그것(요구)과 반대되는 것을 낳는다. 그리고 그 반대되는 것 속에는 있었던 것(what has been)이 들어 있다. 그래서 그는 이 끊임없는 요구로부터 벗어나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이중성의 회랑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명상은 놀라울 만큼 기민한 마음을 요구한다. 즉 명상은 삶의 전체성-그 속에서는 모든 단편화가 중지된-에 대한 이해이다.
명상은 생각의 통제가 아닌데, 왜냐하면 생각이 통제될 때 그것은 마음 속에 갈등을 키우기 때문이며, 그러나 당신이 생각의 구조와 근원- 그 속에 우리가 이미 있었던-을 이해할 때, 생각은 방해(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의 구조에 대한 바로 그 이해가 그것 자신의 단련이며 그것이 곧 명상이다.
명상은 모든 생각과 모든 감정을 느껴 아는 것이며, 옳다든가 나쁘다고 말하지 않으면서 다만 그것(생각과 느낌)을 바라보고 그것과 함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 관찰 속에서, 당신은 생각과 느낌의 모든 움직임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알아차림으로부터 침묵이 나온다.

당신의 삶, 당신 자신, 당신의 왜소함, 당신의 경박함, 당신의 잔인함, 당신의 폭력, 당신의 탐욕, 당신의 야심, 당신의 일상적 괴로움과 끝없는 슬픔 - 그것이 당신이 이해해야 하는 것이며, 당신 이외에 땅과 하늘의 아무도 당신을 그것으로부터 구제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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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랑자의 이야기.
    월풍도원에선 기부를 받습니다.

인도의 구도자 오쇼 라즈니쉬의 가르침. 기적을 찾아서.

뭔가 겉도는 기분이었습니다.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지만, 뫼비우스 띠를 따라 맴도는 듯했어요.
그때 이 책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가졌던 의문 중 몇이 해소되었거든요.
불교,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에선 정파처럼 가르친다면,
오쇼 라즈니쉬는 정사지간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파의 시각으로도 한번 바라보고 싶은데 아직까진 기회가 없었네요.
뭐 언젠가 인연이 닿는다면 마주치겠죠.
이 책에는 오쇼 라즈니쉬의 흥미로운 관점이 잘 담겼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것을 덥석 믿진 않아요.
그것을 직접 겪는다면 사실이 될 테니 믿음이 필요치 않고,
경험하지 못한 것이라면 믿는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으니까요.
무지개를 한 번도 못 본 사람이 그게 하늘에 뜬다고 믿어 봤자 뭐합니까?
그것을 본 사람은 말합니다.
“비가 그치면 뜬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동쪽 하늘에 뜬다.”
“아니다. 서쪽 하늘이다!”
동쪽과 서쪽은 정 반대의 방향이지만, 무지개는 어디서고 상황만 맞으면 뜹니다.
이렇게 무지개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면 우리는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좀 헤매면 결국 무지개를 보게 되죠.
“오! 무지개는 비가 내린 뒤에 태양을 등지고 서야 보이는군.”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지 남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바투 동굴-'기적을 찾아서'

오쇼 라즈니쉬의 관점과 명상 철학

얼마나 많이 달렸느냐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가 원주에 있는 한 중심과의 거리는 항상 똑같다.

불행이 시간을 길게 연장하는 반면 행복은 시간을 짧게 단축시킨다.

위험이 없는 곳으로 가지 말라. 절대 그런 곳으로는 가지 말라. 거기에는 죽음 외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생각을 통제할 수 없다면 그들은 미친 사람들이다. 그리고 주인의 입장에서 자신을 다룰 수 있는 사람들만이 건강한 정상인이다.

폭력적인 사람이 비폭력주의자가 되려고 애쓴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유순해 지려고 애쓴다. 거친 사람이 상냥해지려고 노력한다. 도둑이 관대해지려 하고, 사악한 사람이 성자처럼 되려고 애쓴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부정하고 항상 그 위에 무엇인가 부과하려고 애쓴다.

사하자 요가는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그대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려고 하지 말라. 그대가 어떤 존재 인지를 알고 그에 충실하게 살아라. 그대가 도둑이라면, 그대가 도둑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에 충실하게 살아라.”
“만약 그대가 도둑이라면 그 사실을 분명히 알아라. 도둑질을 하더라도 그 사실을 알고 하라. 내일은 도둑이 아닐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도둑질을 하지 말라.”

영적인 삶의 길에 퇴보는 없다. 다만 진보나 정체가 있을 뿐이다.

자신이 처한 단계에서 주어지는 가르침을 신뢰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돌아서 가는 길이 더 쉽고 지름길이 가장 험난하다는 것은 수없이 증명된 바 있다.

자기 자신을 알고 깨닫는 것은 분명히 기쁜 일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잃어 버리는 것이야 말로 궁극적인 지복이다.

가정을 꾸려 나가면서 쓰이는 에너지를 다른 일을 위해 보존하자는 것이 출가의 이유였다.
우리가 활용하는 에너지가 매우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에너지를 다른 목적, 더 높은 목적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 취지였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 소비하는 에너지는 아주 소량이다. 보존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해서도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산야스는 자신이 가진 빈약한 에너지를 보존하려는 인색한 사람들의 길이다. 이렇게 인색하고 옹졸한 접근 방식은 아무 소용이 없다. 여기저기에서 조금의 에너지를 저축하는데 급급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도 우리 안에 잠 자는 에너지, 그 풍부하고 무한한 에너지를 일깨워야 한다.

명상가(sadhak)와 헌신자(bhakta)라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헌신자의 신은 하늘 위에 있다. 그러므로 헌신자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면서 기다린다. 반면, 명상가의 신은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잠 들어있다. 따라서 명상가는 신을 깨우려고 노력한다.

수피는 수면이라는 자연현상에 정면 공격을 가함으로써 매우 생소하고 이상한 상황을 창조한다.

날숨과 들숨의 중간 지점에 호흡이 멈춰 버린 이 순간, 완벽한 균형이 이루어진 이 순간에 삼매가 온다. 이 순간에 그대는 생명(life)이 아니라 존재(existence)를 안다.

사드구루(sadguru), 완벽한 스승에 대한 정의는 ‘구루가 되지 않는 사람’이다. 이 말은 스스로 구루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은 구루가 될 자격이 없음을 뜻한다.

이해의 차원에 도달한 사람들은 인간이 꿈꾸는 두 가지 목표에 대해 말한다.
섹스와 해탈이 그것이다. 부와 종교라는 다른 두 가지 목적은 단지 수단에 불과하다. 부는 섹스를 위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성적인 시대일수록 부를 지향하며, 해탈을 구하는 시대일수록 종교를 지향한다. 부가 수단이듯이 종교 또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어제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면 그대는 눈을 감고 어제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상태가 얼마나 가겠는가? 눈을 뜨는 순간 그대는 현재에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일시적인 행복은 동물적인 차원에서도 가능하지만 영원한 행복은 신과 하나가 되었을 때 만 가능하다.

타인이라는 현상 자체가 환상이다. 일단 이것을 깨달으면 삶이 아주 단순해진다. 타인을 지향하는 모든 행동이 중단된다. 이 때는 타인을 위해 어떤 일을 하건, 그대 자신을 위해 어떤 일을 하건 오직 그대만 남는다. 그대는 타인을 도와 줄 때도 그를 타인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때도 그를 타인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사실 착취(exploitation)와 실용화(utilization)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내가 나의 에고를 위해 무엇인가 이용한다면 그것은 착취다. 그러나 재가 온 세상을 위해, 모든 사람을 위해 어떤 것을 이용한다면 거기에 착취의 문제는 없다.

구루를 찾는다면 그대는 그 자리에 정체될 것이다. 이정표 위에 멈춰 서지 말라.

실제로, 마음은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마음은 천국으로 가야 행복할지 지옥으로 가야 행복할지 결정하지 못한다. 항상 두려워한다. 이렇게 두 발을 각기 다른 배에 올려놓으면 아무데로도 가지 못한다. 그대는 물에 빠져 죽고 말 것이다.

쿤달리니가 각성된 후에는 폭력적인 성향이 완벽하게 사라진다.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면의 폭력성도 사라진다. 폭력을 행사하고 싶은 충동, 남에게 해를 입히고 싶은 충동은 쿤달리니가 잠자고 있는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쿤달리니가 깨어나는 순간 타인은 더 이상 타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해를 입히려는 충동은 불가능하다. 이 때는 폭력적인 충동을 억누를 필요가 없다. 그런 충동 자체가 없으므로 폭력적으로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만일 폭력적인 충동을 억눌러야 한다면 쿤달리니가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알면 된다. 눈을 뜬 다음에도 여전히 지팡이가 필요하다면 그대의 눈은 아직 사물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의 일곱가지 신체

객관적 평가 가능한 영역

  • 첫 번째 - 물질적 육체 - 육체만이 형성
  • 두 번째 - 에텔체(etheric body) - 감정의 성장
  • 세 번째 - 아스트랄체(astral body) - 이성과 사유, 지성

주관적인 영역

  • 네 번째 - 멘탈체 (metal body) 또는 심령체(physic body)
  • 다섯 번째 - 영체(spiritual body)
  • 여섯 번째 - 코스믹체 (cosmic body)
  • 일곱 번째 - 니르바나 사리르 (nirvana sharir), 열반체 (nirvanic body), 무체의 체(bodiless body)

다섯번째 신체에서 모크샤(moksha)가 경험된다. 그 전에 있는 네가지 신체의 한계가 무너지고 영혼이 완전히 자유롭게 된다. 그러므로 해탈은 다섯 번째 신체의 경험이다. 천국과 지옥은 네 번째 신체의 차원에 속한다. 이 차원에 정체된 사람은 천국과 지옥을 경험할 것이다. 첫 번째나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신체에 머무는 사람들에게는 탄생과 죽음 사이의 삶이 전부다 그들에게는 죽음 너머의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남자는 내부에 여성체를 갖고 있으며, 모든 여자는 내부에 남성체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우연히 어떤 여자가 자신의 남성체와 일치하는 남자를 배우자로 얻거나, 어떤 남자가 자신이 여성체와 일치하는 여자를 배우자로 얻는다면 그야말로 성공적인 결혼이다.

구도자는 안전을 경계해야 한다. 구도자에게는 안전에 대한 욕망이 가장 큰 집착이다. 한순간이라도 안전을 추구한다면 그는 이미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구도자는 항상 ‘나는 안전을 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대는 안전이 아니라 진리를 구하는 것이다.

속박이 있는 곳에 관계는 없다. 그리고 관계가 있는 곳에서 속박은 불가능하다.

눈먼 사람은 등잔이나 전깃불을 만나도, 밝은 태양 아래에 나서도 결코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탐구(seek)하는 것과 요구(ask)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실제로, 탐구를 원하지 않는 사람만이 요구한다.

에고와 ‘나의 존재성’이 어떻게 다른지 이해해야 한다. 에고, 즉 ‘나(I)’라는 느낌은 죽겠지만 ‘존재(am)’라는 느낌은 죽지 않을 것이다. ‘I am’ 안에는 두 가지가 있다. ‘I’는 에고고 ‘am’은 아스미타(asmita), 존재의 느낌이다.

전세계에 만연한 남녀간의 불평등은 남자가 자신을 ‘주는 자’로 생각하고 여성은 자신을 ‘받는 자’로 생각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받는 쪽은 왜 반드시 열등해야 하는가? 누가 그렇게 말하던가? 받는 자가 없다면 주는 자가 무슨 소용인가?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된다. 주는 자가 없다면 받는 자가 무슨 소용인가? 이것은 열등함과 우월함의 문제가 아니다. 둘이 서로 보완적인 위치에 있다.

우리는 항상 값을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 실제로 값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을수록 우리는 더 가치 있는 것을 얻는다.

동물에게는 내일이 없다. 그들에게는 오늘이 전부다. 어떤 면에서는 오늘조차 없다. 내일이 없는 그들에게 오늘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행복은 지겨움을 낳는다. 행복만큼 권태를 불러 오는 것은 없다. 불행은 지겹지 않다. 불행한 마음은 결코 권태롭지 않다.

성교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음식을 소화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성교는 음식을 먹고 토하는 행위에 불과 하다. 아무것도 소화되지 않는다. 무엇인가 소화되면 그 만족감은 훨씬 더 깊어지고 오래간다. 그러나 소화 흡수 작용은 에너지의 순환이 형성되었을 때만 가능하다.

가정을 가진 사람에게는 섹스가 많은 문제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통적인 산야신에게는 섹스가 유일한 고민거리다.

사념(thought)과 사유(thinking)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사념은 자동적인 현상이다. 사념은 항상 이방인처럼 왔다가 떠난다. 사념은 항상 이방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그러나 사유는 우리의 것이다. 이 사유는 다섯 번째 신체에서 시작될 것이다. 이 때 그대는 단순히 다른 사람들의 사념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 스스로 사유하게 될 것이다.

하나의 차원 안에서 삼매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가짜 삼매다. 진짜 삼매는 차원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하나의 문일 뿐이지, 방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방밖에 있어야 한다. 다음 방과 연결되는 지점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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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랑자의 이야기.
    월풍도원에선 기부를 받습니다.

아일랜드에서 만난 틱낫한 스님. 마음챙김 수련회.

수행홀-'Mindfulness retreat with Thich Nhat Hanh'

작년 겨울. 아일랜드엔 명상원이 없나 찾다가 틱낫한 스님의 방문 소식을 접했습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란 지론을 가진 터라 고민이 되었죠.
‘분명 사람이 많이 몰릴 테고 가서, 사람 구경만 하다 오는 건 아닐까?’
하긴 수행이야 홀로 하는 건데 누굴 만나서 어떤 얘길 듣던 뭐 그리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어떤 맛있는 음식도 소화할 준비가 된 사람이나 씹어 삼키는 거지요.
제가 앞으로 나갈 준비가 되었다면 결국은 나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누가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도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어떤 기연을 얻겠다기 보단 편안한 마음으로 참가하기로 했어요.
가는 김에 경치 좋다는 킬라니 구경도 좀 할 요량으로 말이죠.
유럽에선 불교 설법을 어떤 식으로 하나 궁금하기도 했어요.
결론은 아주 만족스러운 명상 수련회였습니다.
우선 최근에 단식을 마치고선 채식 위주의 식사에 관심이 많은데,
명상 수련회에서 나오는 채식(Vegan)음식을 보며 고른 영양의 채식 식단을 짜는 데 큰 도움을 받았어요.
그리고 도 닦는데 관심이 많은 800명의 유럽인과 담소를 나누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알아차림-'Mindfulness retreat with Thich Nhat Hanh'

전에 한국에서 수련원을 갔을 땐 ‘수행’의 성격이 강했는데,
이번에 다녀온 아일랜드의 수련회는 ‘휴식’의 성향이랄까요?
우 레와타 반떼께 수행을 배울 때, 노력을 ‘너무’ 하지 말고 즐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태껏 어느 정도의 정진이 가장 즐거운가의 갈피를 못 잡았어요.
틱낫한 스님의 명상 수련회 덕에 그 즐거움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참 고마운 기회였어요.
틱낫한 스님이 하신 법문에 크게 감격을 하기도 했습니다.
내용은 이미 알던 것이에요.
불교의 가르침에 흥미를 느낀 뒤로 여기저기서 주워들었던 것들이죠.
제가 스님을 존경하는 부분은 그것을 어떻게 설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쉽게 진리에 다가가도록 풀어서 설명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를 하였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불교에 관심이 전혀 없던 사람이나 어린아이도 쉽게 알아듣도록 다양한 비유를 들어 하시는 설명을 듣고 크게 감동했습니다.
서구권 사람들이 종교적인 위화감을 전혀 느끼지 않도록 부드럽게 다가가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행선-'Mindfulness retreat with Thich Nhat Hanh'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

종소리 명상 (Bells of Mindfulness)
어떤 순간이든 종이 울리면 하던 것을 멈추고 호흡에 집중합니다.
마음 챙김의 보조 수단으로서 종소리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절 명상 (Touching the Earth)
절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서구인들을 위한 절 명상 방법입니다.
틱낫한 스님의 재치가 엿보이는 명상 법이에요.
‘땅에 고마움을 담아 땅을 만지세요.’
하면 절을 합니다.
땅을 만지면서 우리의 조상이 이곳에 잠들었고
우리도 역시 잠들 존재이며,
후손 또한 이 땅에서 태어날 것을 알아차립니다.

포살 (Beginning Anew)
대화를 할 땐 상대방의 말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가만히 듣습니다.

  1. 꽃에 물 주기 (Flower watering)
    우리가 느낀 행복을 다른 이들과 나눕니다.
    남들이 가진 좋은 씨앗에 물을 준다고 표현하네요.
  2. 후회의 공유(Sharing regrets)
    우리의 서투름으로 인해 일어난 행위를 공유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사과를 합니다.
  3. 고통의 표현(Expressing a hurt)
    다른 이의 어떤 행위로 고통을 받았다면 툭 터 놓고 이야기합니다.
    상대방은 고통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닌데 그것이 뜻하지 않게 자신에게 고통이 되기도 하기에,
    서로 오해를 푸는 자리입니다.
  4. 어려운 문제의 공유와 지원 요청(Sharing a long-term difficulty and asking for support)
    어려운 문제를 공유하여 상황이 나아지도록 방향을 잡고 서로 도움을 줍니다.

다섯 계율 (Five Mindfulness Trainings)
불교 전통의 다섯 계율에 깨달음의 길인 팔정도를 녹여 놓았습니다.
이 가르침은 틱낫한 스님이 항상 강조하는 가르침이라고 하네요.
계율을 의미하는 Precept가 아닌 Training으로 명칭을 정한 것이 참 마음에 듭니다.
그 명칭이 전통적인 계율보다 자율적인 느낌을 받고 능동적인 행동을 떠오르게 하거든요.

  1. 산목숨을 해치지 마라. <바른 생각, 바른 견해>(Reverence for Life)
  2. 주지 않은 것을 가지려 하지 마라.<바른 생계, 바른 행동>(True Happiness)
  3. 삿된 음행을 하지 마라. (True Love)
  4. 거짓말을 하지 마라.<바른말>(Loving Speech and Deep Listening)
  5.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술이나 약물 따위에 취하지 마라. (Nourishment and Hea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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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랑자의 이야기.
    월풍도원에선 기부를 받습니다.

가장 읽고 싶었던 불교 경전. 대불정수능엄경(大佛頂首楞嚴經).

불교 경전은 어마어마하게 종류가 많습니다.
저처럼 기억력이 부족한 사람은 설령 오랜 시간이 걸려 경전을 모두 읽는다 해도,
처음에 읽었던 경전의 제목을 보고 가물가물 할거에요.
‘내가 이걸 읽었던가?’
그리고 세상엔 깨달음에 대한 서적이 차고 넘칠뿐더러,
책 말고도 가르침을 주는 것은 천지에 널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삶은 한정되어 있으니, 모든 것을 접할 순 없죠.
그러니 선택을 해야 합니다.
깨달음의 가르침이 담긴 능엄경은 제가 가장 읽고 싶었던 경전이었어요.
책장을 펼치니 우선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권위적인 말투와 붓다에 대한 신격화가 많이 보이기 때문이에요.
자신의 깨달음을 직접 적더라도, 전달이 쉽지 않은데,
주워들은 이야기로 경전을 만들고,
그것이 여러 번의 편집과 번역을 거쳐 제 손에 잡힌 것이니.
분명 잡소리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요.
그중 한글로 적어 놓은 ‘대불정시다다반다라무상보인시방여래청 정해안’ 같은 부분은 저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합니다.
마치 으후루꾸꾸루후으후루꾸꾸루후으후루꾸구 처럼 글씨의 나열로 보일 따름이에요.
하지만 능엄경엔 제 마음에 드는 내용도 많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매듭과 감각대상에 관한 비유와 능엄경 8권의 부록으로 들어있는 유가수련증험설이 좋았어요.

중국 운남 보자흑 - Puzhehei

마치 방 안에 등불을 켜 놓으면 그 등불이 반드시 방 안을 먼저 비추고 난 뒤에 방문을 통하여 뜰과 마당을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 아난다

고타마 싯타르타의 가르침

문수야! 하나의 달만이 참된 것이라면 그 중간에는 자연 ‘달 이다. 달이 아니다.’라고 할 것이 없느니라.

물의 힘은 불보다 열세이면 맺혀서 높은 산이 된다. 이면 돋아나서 풀이나 나무가 된다. 그러므로 숲과 늪이 타버리면 흙이 되고 쥐어짜면 물이 된다.

보리를 얻은 자는 잠을 깬 사람이 꿈 속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마음에는 비록 꿈 속의 일이 분명하지만 무슨 수로 꿈 속에 물건들을 취할 수 있겠느냐?

여래의 상(常), 낙(樂), 아(我), 정(淨)과 계합하기를 바라거든 먼저 마땅히 나고 죽는 근본부터 골라 버리고, 나고 죽지 않는 맑고 원만한 성품에 의해서 이룩해야 하리니 맑음으로써 허망하게 났다 죽었다 하는 것을 돌이켜서 이를 항복받아 본래의 깨달음으로 돌아가서 본래의 명각(命覺)인 나고 죽음이 없는 성품을 얻어 인지(因地)의 마음을 삼은 다음에야 과지(果地)를 닦아 증득함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이 마치 흐린 물을 맑게 할 적에 고요한 그릇에 담아서 흔들리지 않게 오래 두면 모래와 흙은 저절로 가라앉고 물만이 앞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은 처음으로 객진번뇌(客塵煩惱)를 항복 받았다고 이름할 것이요, 앙금을 버리고 순수한 물만 남게 한 것과 같은 것은 근본무명(根本無明)을 영원히 끊었다고 이름할 수 있으니 밝은 모양이 정밀하고 순수하면 일체가 변하여 나타나도 번뇌가 되지 않아서 모두가 열반의 청정하고 오묘한 덕과 부합하나니라.

상낙아정((常樂我淨) : 열반의 공덕은 생멸의 변천이 없어 어디서든 자유자재 하고, 생사의 고통을 여의어 즐겁고, 나라는 집착 대상을 여의고, 모든 더러움을 여의어 청정한 상태.

대상을 보는 것은 밝음을 인해야 하고 어두우면 볼 수 없거니와 밝지 않더라도 스스로 발하면 모든 어두운 현상이 영원히 어둡지 않으리니 감각기관과 그 대상이 이미 소멸되면 어찌하여 밝은 깨달음이 원만하고 오묘함을 이루지 못하겠느냐?

듣는 가운데 소리가 저절로 생겼다 없어졌다 할지언정 네가 듣는데 있어서 소리가 생기고 없어짐이 너의 듣는 성품으로 하여금 있었다 없었다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니라.

맺히고 풀림이 원인한 바가 같아서 성인과 범부가 두 길이 아니라네.
너는 어우러진 마음 속의 성품을 보아라. 허공과 실체 이 두 가지가 다 아니니, 혼미하여 어두우면 곧 무명이요 밝게 열리면 곧 해탈이니라.
맺힌 것을 푸는데는 차례를 지켜서, 육(六)이 풀리면 일(一)도 따라서 없어지리라. 감각기관 가운데 원만한 놈을 선택하면 흐름에 들어가서 바른 깨달음을 이루리라.

여섯 개의 매듭이 같지는 아니하나 근본 원인을 따져보면 하나의 수건으로 된 것인데 섞이게 한다는 것은 마침내 성립될 수 없나니라.

곧 너의 여섯 개의 감각기관도 역시 이와 같아서 필경에는 같은 가운데 마침내 다른 것이 생기나니라.

만약 큰 거짓말을 끊지 못한 사람은 마치 사람의 똥을 깎아 전단의 형체를 만들려는 사람과 같으니 향기를 구하고자 하여도 그렇게 될 리가 없나니라.

 

 


  

처음에 단량법에(壇場法) 들어가 공부를 시작하여 정욕과 애욕이 다 끊어지고 계율이 정결해지면 삼경(三庚) 때에 이르러 금꽃이 발생하고 봄 기운이 화창해지면서 황홀하고 아득하여 마음과 그 대상들이 모두 고요하게 되리니 이는 처음 간혜지의 징험이니라. 그 다음은 심장의 경락(心經- 심경)이 넘치고 솟아올라 입에 단 침이 생기고 다음은 음과 양이 서로 치고 받아서 배에서 우레소리 같은 것이 울려오며, 다음은 혼백이 안정되지 못해서 꿈에 놀래거나 두려움이 많아지고 다음은 지니고 있던 질병이 치료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으며, 다음은 단전이 따뜻해지고 얼굴 모습이 맑고 수려해지고 다음은 깜깜한 방에 있어도 원만한 빛이 일산 같이 비치며, 다음은 꿈 속에 용기가 솟구쳐서 다른 물건이 해칠 수 없고 다음은 관문이 잠겨 굳게 봉해져서 몸 밖으로 새어나가는 정기가 저절로 끊기며 다음은 우레 소리가 한 번 울림에 뼈 마디가 모두 통하여 이어지고 다음은 습기가 저절로 사라져서 탐욕이 움직이지 않나니 이는 십신 누진통의 징험이니라.

다음은 침이 가공되어서 치즈처럼 엉기게 되고 다음은 점점 비린내 나는 것으로 입과 배를 채우는 것을 싫어하며, 다음은 참 기운이 차츰 가득차게 되어 음식 먹는 것이 줄어들고 다음은 근골이 가볍고 건장해져서 그 몸이 나는 듯이 가볍고 다음은 눈동자가 그린 듯이 선명해지고 또 번개처럼 빛나며, 다음은 백 걸음 밖에 있는 가을 털처럼 작은 것도 볼 수 있게 되고 다음은 오래전에 있던 흉터나 주름살이 저절로 없어져서 흔적이 없이 되며, 다음은 눈물 콧물이나 땀이 나오지 않고 다음은 삼시(三尸)와 구충(九蟲)이 모두 없어지며, 다음은 도태가 원만해지고 참 기운이 가득해져서 음식을 끊게 되나니 이는 십주 사다함의 징험이니라.

다음은 온 몸의 붉은 피가 다 흰 연고처럼 변하고 다음은 입과 코에 저절로 오묘한 향기가 나며, 다음은 백발이 다시 검어지거나 빠진 이가 새로 나게 되고 다음은 내부가 명랑하게 밝아져서 장부를 환하게 볼 수 있으며, 다음은 다른 사람의 병을 입으로 불어서 치료하며 수은을 입김으로 말리고 다음은 추위와 더위가 침입하지 못하고 죽고 삶이 간섭하지 못하며, 다음은 손으로 반석 위에 그리면 글자가 완전하게 새겨지고 다음은 혼백이 돌아다니지 아니하여 꿈과 잠이 없어지며, 다음은 신비한 광채가 명랑해져서 다시 낮과 밥이 없이 되고 다음은 자태는 옥수와 같고 살은 금색처럼 투명해지나니 이는 십행 아나함의 징험이니라.

다음은 속 뜻이 맑고 높아서 큰 허공과 합해지고 다음은 양정(陽精)이 체를 이루어서 신부(神府)가 견고해지며, 다음은 고요한 중에 이따금 하늘 음악 소리가 맑게 들려오고 다음은 안으로 항상 화엄국토에 노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다음은 안의 성품이 출현하고 밖의 신이 찾아와 조회하게 되고 다음은 천시(天時)와 사람의 일을 다 미리 알 수 있게 되며, 다음은 용맹스런 힘이 매우 화창하여 항상 위로 올라가게 되고 다음은 공덕과 수행이 원만하여 부처님의 도록(圖錄)을 받게 되며, 다음은 붉은 노을이 눈에 가득하고 금빛이 몸을 감싸며, 다음은 채색 구름이 둘러 싸서 형체와 정신이 모두 오묘하게 되나니 이것은 십회향 아라한의 징험이니라. 대장부의 도가 이루어지고 덕이 세워지는 일이나 그러나 이 뒤에도 다시 위로 향하여 공부해 나갈 일이 있나니라.
- 유가수련증험설(瑜伽修煉證驗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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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랑자의 이야기.
    월풍도원에선 기부를 받습니다.

갈매기 무협지. 고수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꿈.

만약 이 책이 아시아에서 쓰였다면 다양한 무협용어가 등장했을 법합니다.
‘아니 조 대협! 그것은 이형환위(以形換位) 가 아니오!’
이런 말이 나온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소설이에요.
작가 리처드 바크가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보편적 진리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 글을 쓰기까지 몇 번이나 해변에 나가 갈매기를 바라보았을까?
대중의 습성을 관찰하기 위해 얼마나 시간을 들였을까?
치앙이나 설리번 같은 스승에게 어떤 가르침을 받았을까?
그리고 얼마나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하늘의 갈매기 무리

‘모여드는 갈매기의 수는 매일같이 늘어났는데
그들은 질문하러 오고, 숭배하러도 오고, 또 비웃으려고 오기도 했다.’

얼마 전 간디 자서전을 읽으며 느꼈던 실망감을, 이 구절을 통해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걷는 사람을 보면 숭배하거나, 비난하려고 드는 대중의 습성을 말이에요.
분명 그들이 가는 방향이 좋은 쪽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직접 걸을 생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껏 누리던 편리함과는 다른 방향이니까요.
그래서 그 길을 꿈꾸지만,
지금의 편리함을 버릴 수 없는 사람은 길을 가는 사람을 숭배하는데 그칩니다.
지금 자신이 누리는 것을 단 하나도 놓고 싶은 마음은 없는 사람.
게다가 걷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어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은,
목적지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에게 질투심을 느껴 비난하기까지 합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길.
길을 걸으면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걸 알지만,
발에 흙 좀 묻고, 똥 좀 밟는다고 길 걷기를 포기합니다.
단지 길을 걷는 이의 사진을 찍어 숭배하고 부러워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이는 음식을 앞에 두고 먹지는 않으며,
영양의 중요성에 대해 떠들기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아주 평범한 말을 했다.
즉, 난다는 것은 갈매기들의 정당한 권리라는 것.
자유는 그 존재의 본질이라는 것.
자유를 방해하는 것은 의식이든 미신이든 또 어떤 형식의 제약이든 파기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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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랑자의 이야기.
    월풍도원에선 기부를 받습니다.

류시화 시인의 삶 속에서 건져 올린 몇 편의 이야기.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저는 류시화 시인의 시를 참 좋아합니다.
그의 수필을 읽을 때면 항상 실망하게 되는데,
그것은 시만큼 감동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시를 쓰지 않았다면, 이런 아쉬움은 없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는 훌륭한 이야기꾼이기도 해서,
그의 경험 속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냅니다.
아무런 소득이 없어도 절망하지 않고 언제나 행복에 넘쳐있던 도둑이
이슬람교 신비주의자 하산에게 큰 가르침을 내렸다는 이야기나,
죽은 뒤에도 친구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옷 속에 폭죽을 넣고 다녔다는 친구의 유언
“친구여. 내가 죽으면 입고 있는 옷 그대로 입혀서 화장해 주게.”
등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는 책이에요.

류시화 시인의 시를 읽을 때면,
‘사람은 뭔가 타고난 능력이 있긴 한가보다.’라고 생각하게 되요.
제가 가끔 시를 끄적인 시를 보면,
다람쥐가 알맹이를 빼먹은 밤껍질 처럼,
보잘것없는 껍데기의 느낌을 받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느끼니 남에게 보일 수도 없죠.
하지만 류시화 시인의 시는,
밤나무에서 막 떨어져서 언덕을 굴러 내려가는 밤송이 같아요.
신선한 힘이 느껴지거든요.
혹 모르죠.
저도 한 이십 년 시를 쓰다 보면.
시구에 생명을 담아내는 내공이 쌓일지도 말에요.
지금의 저는 아름다운 시를 쓸 수도 없고,
소설처럼 잘 짜인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도 없기에,
투박한 수필을 써 나갈 뿐입니다.

나메오 가는길 - 라오스

류시화 시인이 들려주는 옛 이야기

“언제,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프란치스코는 아무런 말없이 눈이 쌓인 산꼭대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아마 저 산에 눈이 녹고 꽃이 필 때쯤이면.”
그 말이 끝나자 갑자기 눈이 녹고 산마다 꽃이 피었다.
-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의 사랑 이야기.

“시간이 없어서 명상할 수 없다는 것은 변명이다. 명상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마음이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 어느 한 선사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사람이란 말인가?”
“뭐? 그럼 내가 사람이 아니고 대체 뭐란 말인가?”
“부처지. 하하.”
- 일본 메이지시대 진언종 운쇼와 황실대학의 철학교사 탄잔의 대화

공감하는 류시화 시인의 한마디

명상을 잃어 버린 종교는 맹목적이 되며 종교 없는 명상 또한 무목적인 것이 되리라.

류시화 시인의 시 한 편 - 길 위에서의 생각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 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 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꽃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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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랑자의 이야기.
    월풍도원에선 기부를 받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친절하지 않은 말.
특히 명령조로 말하는 것을 들으면 기분이 상하고, 화가 난다.

익숙함이 깨어지는, 새로운 상황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오랫동안 좌우명으로 삼았던
‘남을 꾸짖듯 나를 꾸짖고, (責人之心責己)
나를 용서하듯 남을 용서하라. (恕己之心恕人) ’
나는 바른길로 가도록 자신을 스스로 꾸짖은 것이 아니고,
자신을 비난했고, 자신조차 용서하지 못했다.
하물며 남에겐 어땠을까?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외면하려고 한다.
그런 감정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
피하지 말고 그대로 보아야 한다.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 때.
부정적인 마음이 떠오른다.
그때 부정적인 마음을 따라가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명상은 행복하기 위해 하는 것인데, 괴롭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가 명상을 하는 것은,
어떤 상태에서도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고요함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설령 명상이 잘되지 않는다고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
노력은 언제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정도만 하자.

나는 지혜로워지고 싶다.
누군가 나를 칭찬 할 때,
나의 장점을 올바르게 본 것인지,
그저 빈말인지 알아차릴 수 있도록.
누군가 나를 꾸짖었을 때,
나의 단점을 올바르게 본 것인지,
그저 나를 비난하는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도록.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왜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것을 남도 믿기를 바랄까?
나 역시 그렇다.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불을 붙여라!”
이 문장은 상황에 따라 해석하기 나름이다.
아궁이에 불을 붙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남의 집에 불을 붙이는 것은 나쁜 행위이니까.
경전에 나와 있는 말도 해석하기 나름이다.

데자뷰는 과연 미래에 대한 예지력일까?
아니면 수많은 망상 중에 우연히 겹치는 것뿐일까?

플러스의 행복 그리고 마이너스의 행복.

들숨, 날숨은 0,1 한 비트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나는 이 한 비트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컴퓨터는 한 비트라도 불량이 있으면 오류다.

나보다 높은 이도 없고, 낮은 이도 없으니
긴장하고 의식하거나 자만심을 가지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수행하는 것은 마치 마라톤 연습을 하는 것 같다.
백 미터만 달려도 숨을 헐떡이는 사람이,
마라톤 대회에 나가기 위해 무리하여 이십 킬로미터를 연습한다면 골병이 든다.
명상도 이와 같다.
백 미터를 편안히 달릴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하고,
백 오십 미터로 늘린다.
점점.
그러나 꾸준히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이 되었던, 기회가 있을 때 배워 놓은 것은,
나중에 다른 것과 연결 고리가 된다.

기대는 불 확실한 답을 주고, 행동은 확실한 답을 준다.

예상은 복권을 사는 것과 같다.
당첨되길 희망하지만, 대체로 당첨 확률은 낮다.
그래서 간혹 예상이 맞아떨어지면 기뻐한다.

남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자신도 바꾸려 하지 말아야 한다.

손톱과 발톱은 끊임없이 자란다.
조금씩 조금씩.
나는 손톱만큼이라도 성장하고 있는가?

‘이것이 마지막 식사다!’
라는 생각으로 밥을 먹으면 여유를 가지고 먹게 된다.
그렇다고 숟가락을 놓아 버리진 않는다.
숟가락을 놓으면 음식은 식어버릴 테고,
그렇다면 식은 음식으로 마지막 배를 채우게 될 테니까.

과거에 빠져 사는 것은 목차 페이지만 계속해서 펼쳐보는 것이고,
미래에 빠져 사는 것은 책의 뒷 표지만 바라보고 있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책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현재를 살아가자.

망상은 달콤한 사탕과도 같다.
달지만 많이 먹으면 이가 썩는다.

항상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상태가 나쁠 때
귀는 닫히고, 시야는 좁아지며, 촉각은 무뎌진다.

평생을 예상하는데 쓴다고 해도,
단 하루조차 확실히 예상할 수 없다.

집착과 탐욕으로 가득 찬 마음을 비울 때,
그 자리를 온전한 사랑과 자비로 채울 수 있다.

욕심을 채우는 것을 행복으로 착각한다면,
평생 불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다그치지 않고,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도 충분하다.
다그친다고 되는 일은 없으니까.
나에게도 또한 남에게도.

예방이 최선이고, 치료는 차선이다.

올바른가? 정당한가?
외의 판단은 대부분 아무런 가치가 없다.
‘상식적인가? 대중적인가? 익숙한가?’
같은 것들.

마음은 그저 나에게 조언을 해 줄 뿐이다.
올바르면 받아들이고,
삿되다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억지로 일으키려고 노력하거나
억지로 사라지게 하려면 힘만 든다.

우선 그대로 받아들이고,
판단이 꼭 필요할 때만 판단하자.

소화 시킬 수 있는 만큼만 먹자.
음식도, 지식도.

어떤 생각이 들던 억누르거나 피하려 하지 말자.
그저 지켜보자.

by 月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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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빠나사띠를 통해서는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모두 할 수 있습니다.
사마타 수행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이 다른 대상으로 향하도록 방치하지 말고 대상인 호흡으로 돌아와 집중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마음이 다른 대상으로 향하면 그 대상을 지켜 봅니다. 그리고 난 후 호흡을 집 삼아 돌아오게 되는 차이가 있습니다.

  • 편안한 자세로 앉아 머리에서 발끝까지 몸을 최대한 편안히 이완한다.
  • 어떤 걱정이나 미래에 대한 계획을 포함하여 모두 내려놓는다.
  • 접촉점이라 불리는 들숨 날숨과 피부가 접촉하는 부분에 마음을 모은다.
  • 호흡을 통제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호흡을 객관적으로 알아차린다.
  • 마치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 처럼,콧 속으로 들어가버린 호흡이나, 나간 호흡을 따라가지 않는다.
  • 숨에 친숙해 지려고 노력하는 동안에는 중도를 따라 적당한 정도의 노력을 기울인다.
  • 너무 많이 노력을 해서 긴장하거나, 너무 적게 노력해서 혼침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
  • 마음속에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단지 무시하고 마음을 숨으로 다시 모은다.
  • 숨에 집중해서 15분에서 20분간 숨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접촉지를 무시하고 숨 자체에만 마음을 모은다.
  • 좌선을 할 때마다 한 시간 이상, 계속해서 삼 일 이상을 지속적으로 호흡에 집중할 수 있을 때 호흡은 집중력의 표상인 니밋따로 전환하게 된다.



몸의 관찰
  1. ‘들숨이 길면 길게 들이쉰다.’ 고 알아차리고, ‘날숨이 길면 길게 내쉰다.’ 고 알아차린다.
  2. ‘들숨이 짧으면 짤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날숨이 짧으면 짧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3. ‘온몸에 대해 느끼면서 숨을 들이쉬고, 온몸에 대해 느끼면서 숨을 내쉰다.’ 라고 알아차리며 수행한다.
  4. 몸의 형성(身行)을 고요하게 하면서, 이것을 알아차리며 숨을 들이 쉬고 내쉰다.(까리빠 포착)

감각의 관찰
  1. 환희를 자각하면서 숨을 들이쉰다. 환희를 자각하면서 숨을 내쉰다. 이렇게 수행한다.
  2. 행복감을 자각하면서 숨을 들이쉰다. 행복감을 자각하면서 숨을 내쉰다. 이렇게 수행한다.
  3. 마음의 형성(心行: 호흡과 관련된 감정, 인식등)을 자각하면서 이렇게 수행한다.
  4. 마음의 형성을 고요하게 하면서 숨을 들이쉰다. 마음의 형성을 고요하게 하면서 숨을 내쉰다. 이렇게 수행한다.

마음의 관찰
  1. 마음의 상태를 자각하면서 숨을 들이쉰다. 마음의 상태를 자각하면서 숨을 내쉰다. 이렇게 수행한다.
  2. 마음의 기쁨을 자각하면서 숨을 들이쉰다. 마음의 기쁨을 자각하면서 숨을 내쉰다. 이렇게 수행한다.
  3. 마음의 고요를 자각하면서 숨을 들이쉰다. 마음의 고요를 자각하면서 숨을 내쉰다. 이렇게 수행한다.
  4. 마음의 해탈를 자각하면서 숨을 들이쉰다. 마음의 해탈를 자각하면서 숨을 내쉰다. 이렇게 수행한다.

법의 관찰
  1. 무상(無常)을 관찰하면서 숨을 들이쉰다. 무상(無常)을 관찰하면서 숨을 내쉰다. 이렇게 수행한다.
  2. 이욕(離慾)을 관찰하면서 숨을 들이쉰다. 이욕(離慾)을 관찰하면서 숨을 내쉰다. 이렇게 수행한다.
  3. 멸(滅)을 관찰하면서 숨을 들이쉰다. 멸(滅)을 관찰하면서 숨을 내쉰다. 이렇게 수행한다.
  4. 벗어남을 관찰하면서 숨을 들이쉰다. 벗어남을 관찰하면서 숨을 내쉰다. 이렇게 수행한다.

아짠 차 스님은 특히 ‘온몸에 대해 느끼면서 호흡한다.’ 를 강조했다. 이 수행법은 처음에는 코-가슴-배로 숨이 들어오고, 배-가슴-코로 숨이 나가는 경로를 따라가면서 주시하고, 이것이 충분히 숙달되면, 숨이 코 끝에 부딪히는 한 지점을 포착하여 이곳의 감각 변화를 관찰하는 것을 이른다.
아나빠나사띠에서는 이 단계를 통과해야 비로서 수행이 본 궤도에 오르게 된다.
이때는 <중부경>의 <상적경>에서 이르듯이 머리, 가슴, 단전, 사지, 오장육부 등에서 4대(氣)의 흐름을 관찰해야 한다. 이 관찰이 예리해지면 기경 팔맥은 물론 모세혈관 속의 기의 흐름까지 관찰 할 수 있다.

위말라람시 스님의 6R 방법
1R. Recognize (알아차리기) – 주의 깊으나, 판단을 내리지 않는 지극히 단순한 관찰을 한다.
2R. Release(풀어 놓기) – 더 이상 주의를 두지 않고 내버려 둔다.
3R. Relax(편안하게 있기) – 긴장을 푸는 평온한 마음가짐을 갖는다.
4R. Re-Smile(미소 짓기) – 미소 짓는다.
5R. Return(돌아오기) - 다시 처음부터 실천한다.
6R. Repeat(반복하기) – 반복해서 실천한다.

평정을 유지하는 법
DROPS(Don’t Resist or Push, Soften)
밀어 붙이거나 저항하지 말고, 부드러워 져라.


참고 자료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 사띠 사마디 – The Anapanasati sutta (www.dhammasukha.org)』 – 위말라 람시 스님 지음.
『위빠사나,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 – 아짠 차 지음, 김열권·김해양 옮김.
『호두마을 2011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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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방랑자의 이야기.
    월풍도원에선 기부를 받습니다.

위빠사나(통찰지) 수행이란?
Vipasanāvi(특별하게) – passanā(본다)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특별하게 본다는 뜻이다.
수행은 수영으로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아서 팔을 젓지 않으면 아래로 떠내려 간다. 수행은 반드시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고요한 장소에서 집중 수행을 하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수행이다. 급히 서두른다고 깨달음이 오지 않는다. 깨달음은 때가 되면 저절로 익는 과일처럼 시절 인연이 무르익어야 찾아온다.
위빠사나는 현재 일어나는 현상에 마음챙김 하는 것이다. 마음이 지나간 과거에 머물지 않고, 다가오는 미래를 설계하지도 않고, 머무는 바가 없이 현재의 순간 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거울이 온갖 형상을 비추지만 자신은 변하지 않듯이, 맑은 호수에 구름이 흘러가도 물결 하나 일어나지 않듯이, 어떤 대상이 일어났다 사라져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바라보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는 방법
스님마다 견해가 차이가 있으나, 궁극적인 진리는 같다. 팔정도가 수준에 도달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처의 길을 여덟 단계로 나눠 놓았다고 해서, 그것이 수직 구조의 사다리라는 뜻은 아니다.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이전 단계를 완전히 익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 길은 나선형에 가깝다. [ 헤네폴라 구나라타나 스님]

계를 완성하고, 정을 완성한 후에 지혜를 닦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집중력을 닦지 않고는 지혜를 닦을 수 없다  [우 레와타 반떼 ]

몸에 대한 마음챙김
  •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
  • 네 가지 자세(걷고,서고,앉고,눕고) 대한 마음챙김
  • 분명한 알아차림 -몸의 움직임에 대한 마음챙김
  • 몸의 32부분에 대한 관찰
  • 사대요소에 대한 관찰
  • 아홉 가지 묘지에서의 관찰

다섯 가지 정신적 기능
  1. 삿다 – 담마에 대한 확고한 믿음
  2. 위리야(또는 빠다나) – 불요 불굴의 노력
  3. 사띠 – 지속적이고 강력한 주의 기울임
  4. 사마디 – 깊은 짐중(깊은 삼매)
  5. 빤냐 – 지혜(꿰뚫어 보는 지혜+깨달음 enlightenment)
믿음만 강하면 남의 말을 쉽게 믿고, 지혜만 강하면 자기의 선입견과 비교해서 마음이 삐뚤어질 수 있으므로 믿음과 지혜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노력이 약하면 졸음에 빠지고, 노력이 강하면 마음이 산란하고 들뜰 위험이 있다.
주의 기울임은 아무리 강해도 지나침이 없다.

주시, 분명한 알아차림 그리고 지혜
경전에서는 주로 양자 사이의 관계 [주시와 분명한 알아차림<장부경>, 지혜와 관찰<반야심경>, 주시와 지혜<대념처경>중 7각지]를 다루고 있지만 아짠 차 스님은 이 셋을 함께 활용한다. 주시(sati)는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분명한 알아차림(sampajañña)은 그 대상을 면밀히 관찰하여 무상·고·무아와 인과의 흐름을 보는 것이고, 지혜(pañña)는 무상·고·무아에서 벗어나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사진 촬영에 빗댄다면, 대상을 포착하는 것은 주시, 대상에 정확한 초점을 맞추는 것은 분명한 알아차림. 대
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찍는 것은 지혜에 비유 될 수 있다.
식도 생멸하고 주시도 생멸한다. 생멸하는 식이나 상을 끊임없이 주시함으로써 주시(아는마음)를 거듭 일으켜 나가야 한다. 하나의 주시가 계속해서 또다른 주시를 일으켜 나가는 식으로 반복 해 나가다 보면, 삼매가 계발되어 주시(아는마음)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거듭해서 일어난다.

좌선 중 통증을 느낄 때
  1. 무시한다.
  2. 통증을 관찰한다. 가장 심한 통증을 포착하여 그 변화를 관찰한다.
  3. 느낌과 원인인 촉(觸). 촉의 윈인인 지·수·화·풍의 부딪침을 함께 관찰한다.
  4. 통증을 피하려는 마음상태를 관찰한다.
  5. 그래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으면 자세를 바꾸고자 하는 의도를 알아차리며 자세를 바꾼다.

통증을 대상으로 알아차린 예(Udena sutta, U.7.10)
우데나 왕의 첫째 부인 사마와띠(밧다와띠야 장자의 딸 → 고사카 재정관의 양딸. 가난한 자들에 음식을 나누어 주는 식당이 시끄럽자, 식당에 울타리(vati)를 쳐서 조용하게 만드는 지혜로 인해 사마(sāmā)에서 사마와띠(sāmā-vati)로 불리게 되었다.)는 셋째부인인 마간디야(부처님이 똥 오줌으로 가득찼다고 말한 것에 앙심을 품었음)의 증오심 때문에 방에 갇혀 불타 죽었다. 그때 사마와띠와 시녀들은 몸의 고통스러운 느낌에 마음을 집중하여 수행 했고, 죽기전에 사다함과나 아나함과를 증득했다.

일곱가지 단계의 청정
  1. 실라 위숫디 – 도덕성의 청정, 또는 덕(virtue)의 청정
  2. 찟다 위숫디 – 마음의 청정
  3. 닷티 위숫디 – 견해의 청정
  4. 깡카 위따라나 위숫디 – 의심을 극복 함에 의한 청정
  5. 막가냐나 닷사나 위숫디 – 도와 도가 아닌 것의 앎과 봄에 의한 청정
  6. 빠디빠다 냐나 닷사나 위숫디 – 수행도의 앎과 봄에 의한 청정
  7. 냐나 닷사나 위숫디 – 앎과 봄에 의한 청정

정신적·육체적 과정의 원인과 결과를 깨닫는 세가지 경우
  1. 육체적 과정이 원인이고, 정신적 과정이 결과인 경우 ex)발을 드는 동작이 있기에 관찰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2. 정신적 과정은 원인이고, 육체적 과정이 결과인 경우 ex)의도는 원인이고 발의 동작이 결과인 경우
  3. 정신적 과정이 원인이고, 다른 정신적 과정이 결과인 경우 ex) 헤매는 마음이 원인이고, 관찰하는 마음이 결과인 경우
정신적 과정은 교대로 일어났다 사라지며 그 속도가 매우 빠르다 ex)생각하는 마음과 관찰하는 마음
아주 빠르게 교체되고 있기 때문에 동시에 일어난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대 성인과 열 가지 족쇄
성인의 네 단계 설명 10가지 족쇄 제거되는 족쇄
수다원(흐름에 들어가는분, 예류자)
출세간적인 팔정도에 들어가는 것
욕망, 분노등과 같은 정신적 오염원은 완전히 파괴되지 않기 때문에 강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에게 욕망, 분노 등이 일어난다. 사악처에는 태어나지 않는다.
  1. 유신견
  2. 계율과 의식애 다한 집착
  3. 의심
  4. 감각적 용망
  5. 악의
  6. 욕계에 대한 욕망
  7. 무색계에 대한 욕망
  8. 자만
  9. 들뜸
  10. 무명
1~5는 욕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묵고 가두는 낮은 족쇄이다.
6~10은 색계와 무색계에 묶고 가두는 높은 족쇄이다.
1, 2, 3
사다함(한 번 돌아오는 분, 일래자)
죽은 뒤 감각적 욕망의 영역으로 한 번 돌아올 수 있다.
감각적 욕망과 분노(미움,혐오,악의)의 거친 질이 완전히 파괴되어 욕망, 또는 탐욕은 점점 더 약해지고 엷어진다. 그러나 미세한 부분은 남아있다. 누군가에게 모욕을 당하거나 하면 화가 일어날 수 있지만 분노가 매우 엷어서 제 삼자는 모를 수도 있다.
4, 5가 엷어짐
아나함(돌아오지 않는 분, 불래자) 브라흐마 보다 더 높은 세계에 태어난다. 모든 감각적 욕망과 모든 분노(미움,악의,혐오)가 예외 없이 전면적으로 파괴된다. 감각적 욕망을 전혀 갖지 않기 때문에 좋은 음식, 좋은 풍경, 좋은 향기 등을 바라지 않는다. 누군가가 모욕해도 화가 일어나지 않고, 마음이 언제나 고요하고, 평온하고, 침착하다. 성욕이 없기 때문에 성 생활을 할 수 없다. 4,5가 제거됨
아라한(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는 분) 어디에도 태어나지 않는다. 세가지 단계의 깨달음으로 파괴되지 않고 남아있는 모든 정신적 오염원을 파괴한다. 어떤 정신적 오염원도 일어나지 않으므로 평화롭고 행복하고 고요한 삶을 산다. 아라한은 대상이 감각 대상으로 들어와 알아차리는 과정까지는 일어나지만 거기에 좋거나 싫거나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아라한의 마음은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kiriyacitta)이기 때문에 과보를 일으키지 않는다. 따라서 선업도 악업도 되지 않는다. 재가신도가 아라한이 된 경우에는 속인으로 계속 살 수 없고, 즉시 출가하거나 아니면 즉시 빠리 닙바나에 들어야 한다. 6,7,8,9,10

깨달은 사람이 되기 위한 일곱 가지 요인
  1. 염각분(주의 기울임의 요인) –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있는 그대로 주의 기울임
  2. 택법각분(조사의 요인) – 무상·고·무아를 꿰뚫어봄
  3. 정진각분(노력의 요인) – 꾸준히 균형 잡힌 노력을 기울임
  4. 희각분(환희의 요인) – 수행 중 기분 좋은 경험
  5. 정각분(집중의 요인)
  6. 경안각분(고요의 요인)
  7. 평등각분(평정의 요인) – 행복과 불행의 중간에 있는 상태

여섯 감각 문 닫기
보여진 것, 들려진 것, 냄새 맡아진 것, 맛 보아진 것, 닿아진 것, 생각되어진 것에 강력하게 주의 기울임을 지속하면 감각문은 닫혀진다. 단지 관찰을 하면 좋은지 나쁜지 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것에 대해 혐오나 욕망을 가질 수 없다.

현세의 4분석지에 영항을 주는 전생의 세 가지 바라밀
  • 삼장 공부 (learning)
  • 어려운 것을 질문하는 것 (Asking)
  • 경건한 마음으로 불법을 듣는 것 (Listen Dhamma)

네 가지 학습자
  1. 더디게 배우고, 갈애의 기질을 가진 학습자 – 거친 몸을 관찰하는 알아차림이 좋다. (신념처)
  2. 빠르게 배우고, 갈애의 기질을 가진 학습자 – 미세한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다. (수념처)
  3. 더디게 배우고, 그릇된 견해를 가진 학습자 – 의식,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다. (심념처)
  4. 빠르게 배우고, 그릇된 견해를 가진 학습자 – 법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다. (법념처)

주의 기울임 수행의 일곱 가지 이익
  1. 존재의 청정
  2. 걱정과 슬픔의 극복
  3. 비탄의 극복
  4. 정신적 괴로움의 극복
  5. 육체적 괴로움의 극복
  6. 도-지혜를 얻는 것
  7. 닙바나를 얻는 것

16단계 꿰뚫어 보는 지혜
  1. 육체성과 정신성을 구별하는 지혜, 견해의 청정을 얻는다.
  2. 원인과 결과의 지혜와 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을 얻는다.
  3. 분명한 이해의 지혜, 정신적·육체적 세가지 특성을 아주 분명히 이해한다.
  4. 일어남과 사라짐의 지혜, 도와 도가 아닌 것의 앎과 봄에 의한 청정.
  5. 해체(사라짐)의 앎.
  6. 두려움(공포)의 자각(awareness)의 지혜
  7. 비참(misery)의 지혜
  8. 혐오 혹은 지루함의 지혜
  9. 해탈하고자 하는 지혜
  10. 재관찰의 지혜
  11. 평정(평온)의 지혜
  12. 적응의 지혜
  13. 성숙의 지혜
  14. 도 지혜
  15. 과 지혜
  16. 최상의 지혜

16가지 마음
대념처경이나 염처경에 나오는 마음관찰 수행법으로 열 여섯 가지의 마음을 열거하고 있다.
  1. 탐욕이 있는 마음
  2. 탐욕이 없는 마음
  3. 성냄이 있는 마음
  4. 성냄이 없는 마음
  5.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
  6.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
  7. 수축된 마음(해태와 혼침)
  8. 산란한 마음(들뜸)
  9. 고귀한 마음(색계, 무색계 마음)
  10. 고귀하지 않은 마음 (욕계의 마음)
  11. 위가 있는 마음 (삼계의 마음)
  12. 위가 없는 마음(출세간의 마음)
  13. 삼매에 든 마음 (근접삼매와 본삼매)
  14. 삼매에 안든 마음
  15. 해탈한 마음(반대되는 것으로 대체함에 의한 해탈, 억압에 의한 해탈,근절에 의한 해탈, 편안히 가라앉음에 의한 해탈, 벗어남에 의한 해탈)
  16. 해탈하지 못한 마음.

사성제를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그룹 짓기
딴하(애착, 갈망)를 일컫는 둘째 진리인 괴로움의 원인의 진리는 원인이고, 정신적·육체적 현상을 일컫는 첫째 진리인 괴로움의 진리는 결과이다. (즉각적인 원인과 결과)
중도, 또는 팔정도를 일컫는 넷째 진리인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진리는 원인이고, 닙바나(열반)을 일컫는 셋째 진리인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는 결과이다.(즉각적이지 않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네 부류의 사람
  • 첫 번째 부류 – 아주 짧은 설명 만으로도 도와 과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분들. 두 문장을 듣고 수다원이 된 사리뿟따 존자와 목갈라나 존자처럼 깨어 있는 사람들
  • 두 번째 부류 – 초전 법륜경을 듣고 수다원이 되는 부류
  • 세 번째 부류 – 체계적으로, 단계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야 하는 사람 부류. 10%의 사람로써 이번 생에 도와 과를 증득할 수 있다. 지혜를 가진 사람들로써 탐욕이 없고, 성냄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는 세가지 원인을 가진 사람이다. 열반을 실현할 수 있다.
  • 네 번째 부류 – 두 가지 원인을 가진 사람. 탐욕과 성냄이 없으나 지혜까 없는 사람이다. 이번생에 선정과 도와 과를 얻지는 못하지만 미래에 열반을 얻기 위해 수행을 계속 해야 한다.

정신적·육체적 현상의 다섯 다발에 대한 비유
물질의 다발[작은 거품덩어리(foam)] - 작은 거품 덩어리에서 어떤 중심부를 발견할 수 없듯 아무것도 발견 할 수 없다.
감각의 다발[물거품(bubble of water)] - 일어나자마자 즉시 사라지는 물거품과 같다.
지각의 다발[신기루] – 실체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주의 기울여 보면 실체적인 것은 없다.
정신적인 형성의 다발[바나나 나무 줄기(파초 줄기)] – 50가지 정신적 상태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벗길 때, 어떤 실체적인 것도 발견 할 수 없다.
의식의 다발[마술사] – 생각을 할 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라고 여긴다. 이런식으로 의식은 우리를 속인다.

바히야경 (위빠사나 수행의 정수)
바히야여,
보이는 것을 보기만 하고, 들리는 것을 듣기만 하고,
느끼는 것을 느끼기만 하고, 인식하는 것을 인식하기만 한다면,
그대는 그것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과 함께 하지 않을 때 거기에는 그대가 없다.
거기에 그대가 없을 때 그대에게는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고,
그 둘 사이의 어떤 세상도 없다.
이것이 고통의 소멸이다.

맛지마 니까야 열번째경 46절 47절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 사념처를 이와 같이 칠 년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 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궁극적 해탈의 지혜를 , 존재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인 불환과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칠년은 그만두고 누구든지 이 사념처를 이와같이 육년을... 오년을... 사년을... 삼년을... 이년을... 일년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 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궁극적 해탈의 지혜를 , 존재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인 불환과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일년은 그만두고 누구든지 이 사념처를 이와같이 일곱달을... 여섯달을... 다섯달을... 네달을... 세달을... 두달을... 한달을... 반달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 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궁극적 해탈의 지혜를 , 존재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인 불환과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반 달은 그만두고, 누구든지 이 사념처를 이와 같이 칠일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 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궁극적 해탈의 지혜를 , 존재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인 불환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것은 ‘아나함’ 또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인 불환과’의 성취를 말한다.

그래서 “비구들이여, 이것은 존재들을 정화하고 슬픔과 비탄을 초월하고, 몸과 마음의 고통을 소멸하기 위한, 진리의 길을 성취하기 위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바른길’이다. 이 길이 바로 사념처이다.” 라고 설한것은 이와 관련하여 말한 것이다.

통나무의 비유담
가까운 쪽(이 쪽) 둑에 걸리지 않는다면,
[여섯 감각문 (눈,귀,코,혀,몸,마음)]
바다에 도달할 것이니라.
먼 쪽(저 쪽) 둑에 걸리지 않는다면,
[여섯가지 감각 대상(보이는 대상, 소리, 냄새, 맛,마음의 대상, 닿을 수 있는 대상]
바다에 도달할 것이니라.
물 속에 가라앉지 않는다면,
[감각적 존재나 무생물 등에 애착하는 것]
바다에 도달할 것이니라.
사람이 가져가지 않는다면,
[비구가 속인과 온당치 않게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
바다에 도달할 것이니라.
천인이 가져가지 않는다면,
[브라흐마 신이나 천인이 사는 세계인 천상에 태어날 목적으로 좋은일을 하는 것]
바다에 도달할 것이니라.
소용돌이 속에 빠지지 않는다면,
[다섯가지 감각적 쾌락에 빠지는 것]
바다에 도달할 것이니라.
썩지 않게 된다면,
[실제로 고결하지 않은 자가 고결한 체 하는 것]
바다에 도달할 것이니라.
[열반에 도달할 것이다.]


참고 자료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 사띠 사마디 – The Anapanasati sutta (www.dhammasukha.org)』 – 위말라 람시 스님 지음.
위빠사나,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 – 아짠 차 지음, 김열권·김해양 옮김.
부처의 길, 팔정도』 - 헤네폴라 구나라타나 스님 지음, 오원탁 옮김.
우 레와타 반떼 법문
위빳사나 수행 28일』 – 찬메 사야도 아쉰 자니까 비왐사 법문, 케마 옮김.
법구경 이야기』 – 무념·응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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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랑자의 이야기.
    월풍도원에선 기부를 받습니다.


사마타(Samatha) 수행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 즉 주의 기울임 방식과, 숙고 하는 방식이 있다.

청정도론과 아비담마에서 설명하고 있는 40가지 사마타 수행 주제

명상 주제
기질
닦음
표상
선의 경지
모두 다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4선정
모두 다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4선정
모두 다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4선정
바람
모두 다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4선정
청색
성내는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4선정
황색
성내는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4선정
적색
성내는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4선정
백색
성내는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4선정
허공
모두 다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4선정
광명
모두 다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4선정
부었음
탐하는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초선만 가능
검푸름
탐하는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초선만 가능
곪음
탐하는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초선만 가능
끊어짐
탐하는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초선만 가능
갉아먹음
탐하는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초선만 가능
흩어짐
탐하는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초선만 가능
난도질
탐하는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초선만 가능
피가 흐름
탐하는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초선만 가능
벌레가 바글거림
탐하는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초선만 가능
해골이 됨
탐하는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초선만 가능
부처님
믿는
준비|근접|·
준비|익힌|·
없음
가르침
믿는
준비|근접|·
준비|익힌|·
없음
승가
믿는
준비|근접|·
준비|익힌|·
없음
계율
믿는
준비|근접|·
준비|익힌|·
없음
보시
믿는
준비|근접|·
준비|익힌|·
없음
천신
믿는
준비|근접|·
준비|익힌|·
없음
고요함
지적인
준비|근접|·
준비|익힌|·
없음
죽음
지적인
준비|근접|·
준비|익힌|·
없음
몸32 부정관
탐하는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초선만 가능
들숨,날숨
미혹
,사색
준비|근접|본
준비|익힌|닮은
4선정
자애
성내는
준비|근접|본
준비|익힌|·
3선정
연민
성내는
준비|근접|본
준비|익힌|·
3선정
함께 기뻐함
성내는
준비|근접|본
준비|익힌|·
3선정
평온
성내는
준비|근접|본
준비|익힌|·
4선정

1가지 인식,음식
지적인
준비|근접|·
준비|익힌|·
없음

사대의 분석
지적인
준비|근접|·
준비|익힌|·
없음
공무변처
모두다
준비|근접|본
준비|익힌|·
무색계 1선
식무변처
모두다
준비|근접|본
준비|익힌|·
무색계 2선
무소유처
모두다
준비|근접|본
준비|익힌|·
무색계 3선
비상비비상처
모두다
준비|근접|본
준비|익힌|·
무색계 4선

표상
익힌표상 – 산뜻하지 않고 흐릿하다.
닮은 표상 – 선명하다.

몸의 32부분에 대한 명상
먼저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으로 사선정에 들어가야 한다. 삼매의 빛이 밝게 빛날 때 그 빛을 이용해서 몸의 32부분을 한 번에 하나씩 관찰해야 한다. 몸의 32부분은 땅의 요소인 20가지 부분과 물의 요소인 12가지 부분으로 되어 있다.

땅의 요소인 20가지 부분은 5가지를 한 쌍으로 해서 4종류로 관찰 해야 한다.
머리털
몸털
손발톱
이빨
살갖
힘줄
골수
콜팥
심장
근막
비장
허파
큰창자
작은창자
위속의 음식

물의 요소인 12가지 부분은 6가지를 한 쌍으로 해서 2 종류로 관찰한다.

담즙
가래
고름
지방
눈물
피고름
콧물
관절액
오줌

까시나
푸른색, 노란색, 붉은색, 흰색
예시(흰색 까시나) – 까시나가 닮은 표상이 될 때 까지 ‘흰색, 흰색’ 하면서 주시를 계속 한다.
초선정에 들어갈 때까지 닮은 표상에 ㅈ시를 계쏙 한다. 그 후로 표상의 크기를 10개의 방향으로 한계없이 계속 확장하여 오직 흰색 표상만 보이고, 흰색 까시나에만 고요하게 집중된 마음이 유지되도록 한다.
땅,물, 불, 바람, 광명, 허공
대상을 보거나 본 것을 기억해서 그 모습에 집중한다.
대상의 개념에 집중하여, 까시나에만 고요하게 집중된 마음이 유지되도록 한다.
예시(바람) – 외부에 스치는 감각을 느끼거나 눈으로 보고 닦을 수 있다. 창문이나 문 틈으로 빠져나오는 바람, 몸을 스치는 바람 또는 나무의 잎이나 가ㅣㅈ의 움직임을 보고서 그 바람에 집중해야 한다. 익힌 표상을 얻을 때까지 ‘바람. 바람’ 하면서 그 개념에 집중해야 한다. 익힌 표상은 뜨거운 쌀밥에서 나오는 증기처럼 보이고, 닮은 표상은 움직임이 없다.

사무량심
자애, 연민, 함께 기뻐함, 평온

붓다에 대한 명상
경전에 자주 나오는 용어를 사용하여 붓다의 9가지 덕을 관찰함으로써 시작한다.
  1. 1.모든 번뇌를 제거하여 존경할 만한 분 
  2. 2.스스로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신 분 
  3. 3.지혜와 계행이 완전 하신 분 
  4. 4.이로운 진리만을 말씀 하시는 분 
  5. 5.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아시는 분 
  6. 6.인간을 길들이는데 비길 데가 없으신 분 
  7. 7.천상과 인간의 스승 
  8. 8.진리를 깨달으신 분 
  9. 9.십바라밀의 완성으로 무한한 복덕을 지니신분 
붓다의 첫번째 덕인 아라한을 이용하는 방법
아라한의 5가지 정의
  1. 1.모든 오염원과 습관적 성향을 남김 없이 완전히 하였기 때문에 존경스러운 분 
  2. 2.아라한도의 검으로써 모든 오염원을 잘라 버렸기 때문에 존경스러운 분 
  3. 3.무지와 갈망으로 부터 연기의 수레바퀴를 부수어 버렸기 때문에 존경스러운 분 
  4. 4.누구와 비길 데 없는 계행, 선정, 지혜로 신과 인간에게서 최상의 존경을 받기 때문에 존경스러운 분 
  5. 5.홀로 있더라도 몸,말,생각으로 나쁜 행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존경스러운 분 
이 다섯 가지 정의를 기억하고 암송해야 한다. 먼저 사선정에 들어 삼매의 빛이 깨끗해 지면, 기억하거나,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붓다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붓다의 이미지가 아니라 붓다의 덕이다. 집중이 강해질 때 붓다의 이밎는 사라지고, 마음은 선택한 붓다의 덕에 집중한 채 고요히 머무를 것이다.
붓다에 대한 명상을 하면 믿음이 강해진다.

죽음에 대한 명상
전에 본 적이 있는 시체를 이용하여 시작한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다시 시체에 대한 혐오감으로 초선정에 들어간다. 시체로 초선정을 얻었을 때 ‘나의 이 몸은 죽어야 할 운명이고, 이 시체와 마찬가지로 죽게 될 것이다. 이것을 피할 수는 없다.’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의 죽어야 할 운명에 대해 마음을 집중함으로써 긴박감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지혜가 마음에 떠오르면 자신의 몸이 혐오스러운 시체처럼 보일 것이다. 그 이미지 속에서 생명 기능이 끊어짐을 지각하고서 다음과 같은 생각 중 하나로 생명 기능의 사라짐에 집중해야 한다.
  1. 1.나의 죽음은 확실하고, 나의 삶은 불확실 하다. 
  2. 2.나는 반드시 죽는다. 
  3. 3.나의 삶은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4. 4.죽음, 죽음. 
집중하기에 좋은 방식을 택하여 그것을 주시한다. 선정의 5요소가 떠오를 때 까지 당신은 시체속에서 생명기능의 사라짐에 대해 집중을 계속한다. 이 명상 자체로는 근접삼매까지만 가능하다. 죽음에 대한 명상은 긴박감을 일으켜 지루하고 나태한 생각을 몰아내고 정진력을 강화시킨다.

색계와 무색계 8선정
색계 4선정
선정의 5요소
비고
초선정
지속적인 고찰,일으킨 생각, 희열, 행복, 집중
마음이 선명한 표상에 한 시간 또는 두 시간 집중된 상태를 유지하게 되면 초선정에 들어간다. 이 때 선정의 5요소가 있는가를 확인하여야 하며 5요소가 없다면 선정이 아니다.
이선정
희열, 행복, 집중
선정의 5요소 중에서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을 제거하면 이선정에 들어간다.
삼선정
행복, 집중
이선정에서 희열을 제거하면 삼선정에 들어간다.
사선정
집중, 평온
삼선정에서 행복을 제거하면 집중과 평온만이 존재하는 사선정에 들어간다. 사선정에선 호흡이 멈춘다.
무색계 4선정

공무변처정
집중, 평온
여러가지 선정 중에서 까시나를 대상으로 사선정을 얻은 후에 까시나를 제거하면 무한한 공간만이 있는 공무변처정으로 들어간다.
식무변처정
집중, 평온
무한한 공간을 대상으로 가지고 있는 의식에 집중하고, 그 의식을 확장함으로써 식무변처정에 들어간다.
무소유처정
집중, 평온
그 무한한 의식마저 사라지고 없음을 대상으로 무소유처정에 들어간다.
비상비비상처정
집중, 평온
무소유처의 의식을 집중하면서 그 의식의 평화스러움을 생각함으로써 비상비비상처정에 들어간다.
멸진정
팔선정을 성취하는 사람 중에서 아나함과 아라한 만이 들어갈 수 있다.

선정의 5요소
  • •.일으킨 생각 – 닮은 표상에 마음을 향하게 하는 것 
  • •.지속적인 고찰 – 닮은 표상에 마음을 유지 시키는 것 
  • •.희열 - 닮은 표상에 마음을 집중 하고 있을 때 경험하는 기쁜과 희열 
  • •.행복 – 닮은 표상을 경험할 때 느끼는 행복감 
  • •.일념 또는 집중 – 닮은 표상에 마음이 일념을 이룬 상태 

선정의 5가지 자유자재 함
선정의 5요소를 한번에 하나씩 식별해야 한다. 바왕가와 거기에 나타나는 닮은 표상을 동시에 인식 할 수 있을 때 계속해서 수행하면 5 요소를 동시에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닮은 표상에 한 시간 또는 두 시간 동안 집중한 상태를 유지하면 바왕가가 머물고 있는 심장에서 인식하려고 시도 해야 한다.
  • •.입정에 자유자재 함 – 원할 때는 언제든지 선정에 들어간다. 
  • •.머무름에 자유자재 함 -머무르고자 하는 시간 동안 머물 수 있다. 
  • •.전향의 자유자재 함 – 선정의 요소에 쉽게 주의를 기울인다. 
  • •.출정에 자유자재 함 – 나오려는 시간에 벗어난다. 
  • •.반조에 자유자재 함 – 선정의 요소를 반조한다. 
초선정에 들고 남에 자유자재 하지 않을 때에는 이선정으로 나아가서는 안된다. 만약 초선정에 완전히 숙달 되지 않았는데 더 높은 선정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초선정을 잃을 뿐만 아니라 다른 선정도 얻을 수 없고, 모든 선정을 잃을 것이다.

무색계 4선정
까시나로 4선정을 얻었다면 허공 까시나를 제외하고, 4 무색계 선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전 단계 선정의 단점을 생각하고 난 후 다음 선정으로 나아간다.
  • •.공무변처 - 까시나에서 처럼 같은 표상을 원하는 만큼 크고 무한하게 확장해야 한다. 그 다음에 ‘공간. 공간.’ 또는  ‘무한한 공간. 무한한 공간.’ 하면서 그 공간에 집중함으로써 까시나 물질을 대체해야 한다. 이때 남은 것은 이전에 까시나로 꽉 차있던 공간 뿐이다. 이것이 어렵다면 까시나의 한 부분에서 공간을 식별하고 거기에 집중하여 그 공간을 무한한 우주까지 확장한다. 선정에 도달할 때까지 이 무한한 공간 표상에 집중을 계속한다. 그 다음에 5가지 자유자재 함을 숙달시켜야 한다. 
  • •.식무변처 – 무한한 공간을 대상으로 가졌던 의식에 집중하고서 ‘무한한 의식. 무한한 의식.’또는 단지 ‘의식. 의식.’ 하면서 주시한다. 삼매에 도달할 때 까지 무한한 의식 표상에 계속 집중한다. 그 다음에 5가지 자유자재 함을 숙달시켜야 한다. 
  • •.무소유처 – 공무변처 의식의 없음을 대상으로 ‘없음. 없음.’또는 ‘부재. 부재’ 하면서 주시한다. 
  • •.비상비비상처 - ‘평화스러움. 평화스러움’ 하면서 무소유처 의식에 집중해야 한다. 

멸진정
상수멸 이라고도 부른다. 청정도론 제 23장에 나오는 멸진정에 대한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멸진정은 사마타의 힘과 위빳사나의 힘을 동시에 갖춘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 사마타의 힘은 팔선정, 즉 무색계 비상비비상처까지 증득해야 하고, 위빳사나의 힘은 아나함과 이상을 증득 해야 한다. 멸진정에 들기 전에 네 가지를 미리 해야 한다.
  1. 1.내 몸에서 떨어져 있는 필수품들이 화재나 다른 재난으로 손상되지 않기를 결의한다. 
  2. 2.승가가 원하면 출정한다. 
  3. 3.부처님(스승)이 부르시면 출정한다. 
  4. 4.칠 일 이내에 수명이 다하지 않는지 살핀다. 
이렇게 결심하고 나서 초선에서 비상비비상처에 든 직후에 멸진정에 든다. 멸진정에 들면 죽은자처럼 몸과 마음이 정지한다.(정확히 표현하면 몸과 말과 마음의 상카라가 소멸한다.) 그러나 죽은 자와 다른 것은 아직 목숨이 끊어지지 않고 온기도 남아 있으며, 감각 기능도 파괴되지 않는다. 멸진정에 들어있는 동안에는 화재나 어떤 재난으로도 몸이 손상되지 않고, 몸에 붙어 있는 물건들 까지 손상되지 않는다. 멸진정은 팔일 이상 들지 않는다.

바왕가
인식과정과 인식과정을 연결해 주는 마음이며, 모든 인식 과정은 이 바왕가를 거쳐 다음 인식과정으로 넘어간다.


참고 자료
『위빳사나 수행 28일』 – 찬메 사야도 아쉰 자니까 비왐사 법문, 케마 옮김.
『법구경 이야기』 – 무념·응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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