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는 아버지와 아들.

주말 저녁 친구네 놀러 갔다가 영화를 한 편 보고 왔습니다.
까미노길을 소재로 한 영화인 더 웨이에요.
아들이 먼저 길을 떠날 때 아버지는 영 못마땅합니다.

“삶은 고르는 게 아니에요, 아버지. 그저 사는 겁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그 한마디.
까미노 길에서 자신과 마주하며, 삶의 심장 고동 소리를 듣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아저씨는 길을 걷는 네 명의 동행과 걷는데,
그중에 아일랜드 작가 친구가 하나 있어요.
소재로 쓸만한 거리가 생길 때마다 팬을 꺼내서 적죠.
‘네덜란드인은 살을 빼기 위해서 길을 걷는다.’
따위를 말이에요.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류시화 시인의 책 속 일화가 생각납니다.
아마 지구별 여행자 였을 거에요.
류시화 시인도 저 아일랜드 작가처럼 목걸이에 노트를 달고 다니면서,
소재가 생각날 때마다 적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인도 친구가 물었데요.
“도대체 무얼 그렇게 적는 거요?”
“아 이거요? 감명 깊었던 일을 적는 겁니다. 글을 쓸 때 소재로 쓰려고요. 저는 작가거든요.”
“적지 않으면 잊을 것 따위는 가치가 없소.”
그때 그 구절이 저에겐 참 와 닿았습니다.
마침 게으른 제 습성과도 딱 맞아서일까요?
전 어떤 소재가 생겼을 때 글을 쓸 때 바로바로 적지 않습니다.
가슴에 새겨진 감동은 적지 않아도 어디로 날아가지 않고,
깊은 인상의 기억은 적어 내보내기 전엔 끊임없이 머릿속을 헤엄치고 다니니까요.
아일랜드 작가가 메모하기를 때려치웠을 때,
잘했다고 어깨를 토닥거려주고 싶었어요. 하하.

Passport of Camino de Santiago

영화 속 풍경을 보니, 작년에 걸었던 길이 생각나는군요.
비록 루트는 다르지만, 그 설렘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해 주었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에 감명을 받아 까미노를 찾는 사람이 꽤 생길 듯해요.
그럼 길이 북적이겠죠?
고로…. 저는 생장 루트가 잊힐 즈음에나 한번 걸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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