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SF 고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작년에 친구네 막걸리 한 사발 하러 갔다가 취기에 소설책 한 권을 빌렸다. 사고 싶던 책인데 다섯 권을 묶어서 아주 저렴하게 팔아서 냉큼 샀다는 거다. 3분의 1쯤 읽고 쉬고 있다는 말에 금방 읽고 준다며 빌려와서 거의 일 년 만에 돌려줬다. 이 책을 읽으며 정말 큰 교훈을 얻었는데, 만화책이 아니라면 합본은 절대 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두꺼워서 들고 다니기가 어려우니 집에서만 읽어야 한다. 팔이 아파서 들고 보기가 어렵다. 아마도 지금껏 소설을 읽다가 팔이 아프긴 처음이었지 싶다.
어찌 보면 팔운동과 독서를 함 하는 최고의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위안으로 책을 읽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다 읽었어도 팔 근육은 전혀 발달하진 않았지만, 안면 근육은 확실히 발달했다.
웃을 일이 많기 때문이다.:D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더글라스 애덤스가 존경스럽다. 6권은 이오인 콜퍼라는 아일랜드 작가가 썼는데, 이름만 같은 다른 소설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꽤 재미있는 편이지만, 웃기는 방법이 다른 시리즈와 전혀 다르다. 더글라스 애덤스와 이오인콜퍼가 닮은 점이라면 둘 다 말장난의 대가라는 것이다. 그들은 진지하게 웃기기도 하고 무작정 웃기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하게 웃기기도 한다. 아무튼, 웃기다. 풍자와 재치 넘치는 이야기로 책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는 총 여섯 권으로 대체로 재미있다.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 우주 끝에 있는 레스토랑 (The Restaurant at the End of the Universe)
  •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 (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
  • 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 (So Long, and Thanks for All the Fish)
  • 대체로 무해함 (Mostly Harmless)
  • 그런데 한 가지 더 (And Another Thing...) - 이오인 콜퍼

재미도 재미지만 인생의 답이 무엇일까 궁금하다면 꼭 한번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그 이유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엔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그 엄청난 해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삶은 무엇인가?’
‘우주는 왜 생겨났는가?’
이런 궁금증을 가져봤던 사람이라면 이 내용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건 깊은 생각이라는 엄청난 슈퍼컴퓨터가 몇 세대에 거쳐 계산해야 나오는 답인데,
요즘엔 세상이 좋아져서 그런지 구글도 답을 알고 있다.
구글 검색창에 ‘the answer to 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 이라고 치면 이 엄청난 질문에 대한 해답이 튀어나오는데,
혹시 심장이 약하다면 검색 전에 우황청심환을 한 알 먹어두는 편이 좋다.

시리즈-'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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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계속해서 입을 움직이지 않으면 머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이론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이 이론 역시 단념했고, 거추장스럽기만 한 냉소주의도 포기했다. 그는 결국 자신이 인간들을 꽤 좋아한다고 결론지었지만, 이들이 모르고 있는 그 수많은 것들을 생각하면 언제나 지독하게 걱정스러웠다.

뿌연 안개에 싸인 저 과거의 옛 시절, 전대(前代) 은하 제국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시절에는 인생은 멋지고 풍요로웠으며 대략 면세였다.

아서는 눈을 껌뻑이며 스크린을 바라보다가 자신이 뭔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게 무엇인지 그는 문득 깨달았다.
"이 우주선에는 홍차가 없나?"그가 물었다.

그는 열까지 세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지각 있는 생명체들이 이것마저 영영 잊어버리지 않을까 진심으로 걱정됐다. 숫자를 세는 것만이 인간이 컴퓨터로부터 독립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난 제멋대로야.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여어, 못할 거 뭐 있어, 하고는 해버리지. 은하계의 대통령이 되어야지 생각하면 그대로 돼버리는 거야. 쉽다고. 이 배를 훔치자, 마그라테아를 구경하자, 하고 결심하면, 모두 그대로 되는 거야. 물론 어떻게 하면 가장 잘할 수 있을까 하고 계획을 꾸미는 것은 사실이애. 그래, 하지만 언제나 쉽게 잘 된다고. 마치 은하 신용 카드를 가지고 있는데, 내가 한 번도 지불 수표를 보내지 않았는데도 계속 사용이 가능한 거나 마찬가지야. 그러고는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싶어 했지?', ' 그 방법을 어떻게 생각해냈지?' 이런 질문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려 할 때마다 그 생각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되지. 지금처럼 말이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만 해도 너무 힘이 들어."

마치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가 여자의 남편이 방에 들어오는 바람에 혼비백산했는데 그 남편이라는 자가 바지를 갈아입더니 날씨가 어쩌고 하는 대수롭지 않은 말만 몇 마디 건네고 그냥 다시 방에서 나가버리는 일을 당한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친구. 법률에 의하면, 궁극적인 진리 탐구는 사상가들의 양도할 수 없는 특권이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소. 어떤 빌어먹을 기계가 정말 진리를 찾아내 버리면, 우리는 당장 실직자가 된단 말이오. 안 그렇소?

그는 아서에게 마치 스테고사우루스 공룡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의자 쪽으로 오라고 손짓해 보였다.
"그 의자는 스테고사우루스의 갈비뼈를 뽑아 만든 거라오."

"정말 한 가지 해답이 있나?" 푸흐그가 헐떡였다.
"정말 한 가지 해답이 있습니다." 깊은 생각이 확인해주었다.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그 엄청난 질문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말해줘!"
"그러죠." 깊은 생각이 말했다. "위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해답은……!"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은……." 깊은 생각이 말했다.
"해답은……!"
"그 해답은……." 깊은 생각이 말을 멈췄다.
"해답은……!!!"
"42입니다." 무지무지하게 엄숙하고 침착하게 깊은 생각이 말했다.

왜냐하면, 굉장히 지성적이고 꽤 재미있고 또 인간적인 이야기를 할 거니까! 자, 너희가 항복하고 나와서 우리한테 때릴 기회를 주든지…… 물론 우리는 쓸데없는 폭력에는 반대하기 때문에 너무 많이 때리지는 않을 거지만……아니면, 우리가 이 행성 전체를 날려버리고 가는 길에 눈에 띄는 한두 개를 더 날려버리게 하든지 선택해라!

은하계의 모든 주요 문명은 다음과 같이 뚜렷하고 확연한 세 단계를 거친다. 즉 생존, 의문, 그리고 세련의 단계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 왜, 그리고 어디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단계를 특징짓는 질문은 '어떻게 먹을까'이고, 두 번째 단계는 '우리는 왜 먹는가'이고, 마지막 단계는 '어디서 점심을 먹을까'이다.

나는 죽었기 때문에 알지. 죽음이라는 건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놀라운 혜안을 주거든. 여기 명부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생명은 산 자들에게 쓸데없이 낭비되고 있다.

오래전, 이곳은 대단히 번창했고, 행복한 행성이었습니다. 사람들, 도시들, 가게들이 가득한 정상적인 세상이었죠. 이 도시들의 번화가에 좀 필요 이상으로 구두 가게가 많았다는 것만 제외하면요. 그런데 이 구두 가게들의 수가 서서히,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늘어난 겁니다. 그건 아주 널리 알려진 경제 현상이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 보는 건 참 비극적이었죠. 즉, 구두 가게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 많은 구두를 만들어내야 했고, 그러면 그럴수록 구두들은 점점 더 질이 나빠지고 신을 수 없는 구두가 되었고, 구두의 질이 안 좋아질수록 신발을 신고 다니기 위해선 점점 더 많은 구두를 사야만 했죠. 그래서 신발 가게는 더 늘어만 갔고, 결국 전 경제는 신발 파동 수평선이라 불리는 선을 넘어버린 겁니다. 그 시점이 되면 신발 가게 외에 다른 것을 만드는 것이 경제학적으로 불가능해져버리죠. 그 결과는 파국과 폐허, 기근이었습니다.

당신은 그저 자기 시대에 예금 통장에 일 페니만 저금하면 된다. 시간이 끝나는 날에 당신이 도착하면, 복리(複利) 작용에 의해 엄청난 식사 비용은 이미 지불이 되어 있을 것이다.

포드는 팬 갈랙틱 가글 블래스터를 한 잔 더 마셨다. 이 술은 강도(强盜)의 술 버전에 해당되는 술이라고 회자되는 술이다. 즉, 대가가 값비싸고 머리가 빠개진다.

"난 자기를 먹어달라고 청하는 짐승을 먹고 싶진 않다고. 냉혹한 짓이야." 아서가 말했다.
"먹히고 싶어 하지 않는 짐승을 먹는 것보단 낫지." 자포드가 말했다.

예술의 기능은 자연에 거울을 들이대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큰 거울은 없다.

고(故) 핫블랙 데지아토 씨가 그의 보디가드의 도움을 받아 움직이는 통로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이쯤에서 포드가 지구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의 특이한 버릇에 대해 정립했던 이론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 게 좋겠다. 그가 보기에 지구인들은 너무너무 명백한 사실들을 계속해서 말하고 또 말하는 괴상한 버릇이 있었다. '아, 좋은 날씨로군'이라든지 '키가 상당히 크시군요'라든지 '그래서 이걸로 끝이군, 우리는 죽는 거야'같은 소리들 말이다.
그의 첫 번째 이론은, 만일 지구인들이 계속해서 입술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입은 시들어빠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몇 달간 관찰한 뒤 그는 두 번째 이론을 내놓았다. '만일 지구인들이 계속 입술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들의 머리가 작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계획은 이런 거였어요. 첫 번째 우주선인 A 방주에는 뛰어난 지도자들, 과학자들, 위대한 예술가들, 뭐 그런 성공한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타고, 세 번째 우주선인 C 방주에는 진짜 일을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물건을 만들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 탔죠. 그리고 B 방주에는---그게 우리 우주선이죠---그 밖의 사람들이 탔어요. 중간치들 말이에요.

내가 어찌 알겠어요? 과거란 현재의 나의 육체적 감각과 마음 상태 사이의 괴리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일지도 모르는데.

"좋아요. 그게 존재한다는 건 어떻게 알죠? 당신이 잘해준다는 걸 그 녀석이 아는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당신이 친절이라 생각하는 그걸 저 녀석이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아요?" 자니우프가 자기의 주장을 밀어붙이며 말했다.
"물론 모르죠."그 사람이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전혀 몰라요. 고양이처럼 보이는 대상에게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했을 때 내 기분이 좋을 뿐이죠. 당신은 다르게 행동하나요? 하여간, 이제 난 피곤한 것 같아요."

"우선 먹고 나서 나중에 생각해 보면 어떨까?" 아서가 말했다.
"아마 그게 바로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일 거야."
"좋아, 그럼 이렇게 생각해봐……."
"아직까지는 괜찮게 들리는데."
"저 과일은 우리가 먹으라고 저기 있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지. 우리 배를 불려줄 수도 있고, 독으로 우리를 죽일 수도 있어. 만일 저게 독이 든 건데 우리가 안 먹는다면, 그들은 다른 방법으로 우리를 공격 할 거야. 우리가 먹지 않더라도 우리는 어쨌든 지는 거라고."
"네가 생각하는 방식이 맘에 들어. 그럼 하나 먹어봐."

다른 사람의 문제(Somebody Else’s Problem)
SEP라는 건, 우리가 볼 수 없는, 아니 보지 않는, 우리 뇌가 못 보게 하는 광경이야. 왜냐하면 다른 사람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SEP의 뜻이 그거야. '다른 사람의 문제.' 뇌가 그 부분을 편집해 잘라내기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맹점 같은 거라고.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르는 경우에는 똑바로 쳐다보면 보이지 않아. 유일한 희망은 곁눈질로 어쩌다 재수 좋게 힐끗 보게 되는 거지.

식당의 구역 내에서 식당 청구서에 적히는 숫자들은 식당을 제외한 우주의 다른 구역에서 다른 종이 위에 적히는 숫자들이 따르는 수학적 법칙들을 전혀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단 한 가지 사실이 전체 과학계를 폭풍처럼 초토화했으며, 과학 전체에 완벽한 혁명을 몰고 왔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수학 학회들이 훌륭한 식당에서 열리는 바람에, 당대 최고의 지성들 중 많은 이가 비만과 심장마비로 죽어나갔고 수학이라는 과학의 발전이 몇년씩 뒷걸음질을 쳤다.

이 쓰레기 같은 건 안 봐도 돼요. 그저 고개만 끄덕이지 마시오. 그러면 괜찮아.

이 치들은 뭘 믿냐 하면…… '평화, 정의, 윤리, 문화, 스포츠, 가족 생활, 그리고 다른 생명체의 말살'을 믿는다고 하는군요.

그는 검은 바지에, 배꼽 비슷한 데까지 단추를 풀어 젖힌 검은 실크 셔츠를 입고 있었다.

싸움은 ‘스트리테락스 행성의 사일라스틱 갑옷 악마’ 종족이 몹시 잘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워낙 잘하는 일이다 보니 싸움을 아주 많이 했다. 적들(즉, 다른 사람들 모두)과 싸웠고, 자기네끼리 서로 싸웠다. 그들의 행성은 철저히 폐허가 되었다. 행성 표면은 버려진 도시들로 가득 찼고, 주위는 버려진 무기들이 가득했으며, 그 주위에는 또 사일라스틱 갑옷 악마 종족이 살면서 시시한 일들로 서로 싸워대는 깊디깊은 벙커들이 있었다.
이 종족과 싸우려면, 제일 좋은 방법은 그냥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었다. 그들은 누가 태어나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심지어 몹시 비위 상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이 종족이 성이 나면 꼭 다치는 사람이 생겼다. ‘인생을 뭐 그렇게 피곤하게 산담’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종족은 정력이 어마어마하게 샘솟았던 모양이다.

“핑!” 자포드가 말했다. “피유우우우우우! 빵빵빵!”
“이봐요.” 컴퓨터가 일 분 후 명랑하게 말했다. “당신은 삼 점을 받았어요. 이제까지의 최고 점수는 칠백오십구만 칠백오십구만 칠천이백…….”

그는 새들과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웠지만, 그들의 대화가 기가 막히게 지루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개가 바람의 속도, 날개 길이, 체력과 무게의 비율에 대한 것이었고, 나아가 상당 부분이 딸기에 대한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일단 새의 말을 배우게 되면 머지않아 허공에서 새의 말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저 무의미한 새들의 수다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피해 도망갈 데가 없었다.

그날 저녁에는 해가 일찍 저물었다. 그맘때는 그게 정상이었다. 춥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그맘때는 그게 정상이었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이건 더더구나 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 우주선 한 대가 착륙했다. 이건 정상이 아니었다.

청구서는 상당히 길었다.
맨 아래에는 오디오 세트 밑바닥에 새겨진 제품 번호와 비슷한 숫자가 쓰여 있었다. 등록을 하려고 베껴 쓰는 데 몹시 오래 걸리는 그 일련 번호들 말이다.

“구즈나…….” 포드 프리펙트가 말했다. 이건 뭔가 말은 하고 싶은데 특별히 할 말이 없을 때 그가 잘 쓰는 베텔게우스 행성어였다.

“이봐요, 당신도 그때 그 사건은 다 기억할 거 아뇨. 환각 말이에요. 사람들은 다 CIA가 전쟁에 마약을 사용하려고 실험을 했다든가 뭐 그랬다고 합디다. 다른 나라를 진짜로 침략하는 대신, 사람들이 침략당했다고 믿게 만드는 게 훨씬 비용이 저렴하다든가 뭐 그런 미친 이론이었지요.”

사브는 분노로 이글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아서는 떠나는 자동차 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꼬락서니는 마치 오 년 동안 자신이 장님이 된 줄 알고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 너무 큰 모자를 쓰고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달은 물기를 촉촉이 머금은 채 하늘에 떠 있었다. 방금 세탁기에서 꺼낸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나온 종이 한 뭉치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다림질을 해야, 간신히 그것이 쇼핑 목록인지 오 파운드 지폐인지를 분간할수 있는 그런 꼬깃꼬깃한 종이들 말이다.

그는 BBC에 전화를 걸어서 팀장에게 연결해달라고 부탁했다.
“아, 안녕하세요, 아서 덴트입니다. 저, 육 개월 동안 결근을 해서 죄송한데요. 그동안 제가 좀 돌았었어요.”
“오, 걱정할 것 없네. 아마 그런 일일 거라고 생각했었지. 여기서는 늘 있는 일이니까. 그럼 언제부터 다시 출근할 수 있나?”
“고슴도치들이 동면을 시작하는 게 언제죠?”
“아마 봄쯤일걸.”
“그때쯤 뵙죠.”
“좋았어.”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과잉 체지방을 황금으로 바꾸는 법을 발견했어.”

“그대의 땋아 내린 머리카락들이 모조리 풀려 / 한 올 한 올이 빳빳이 서리라 / 불안한 고슴도치의 가시들처럼”

“아주 굉장히 특별한 이유로 당신이 내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당신은 모르지만, 나도 그쪽한테 아주 중요한 사람이고 말이죠. 하지만 갈 길이 겨우 오 마일밖에 남지 않은 데다, 내가 멍청한 바보 천치라서 화물 트럭에 치이지 않고는 방금 처음 만난 사람한테 아주 중요한 말을 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서 그 모든 게 다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되겠어요……그러면 내가…….”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말을 멈추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앞을 봐요!”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이런 망할!”
그는 수백 대의 이탈리아 세탁기들을 싣고 있는 독일 화물 트럭 측면에 충돌하는 사태를 간신히 면했다.
“내 생각에는…….” 그녀는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쉰 후 이렇게 말했다.
“제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저한테 뭐 마실 거라도 한 잔 사셔야 할 거 같네요.”

영국에는 끈질기게 사라지지 않는 특유의 정서가 있다. 바로 샌드위치를 어떤 식으로든 흥미진진하고 매혹적이고 먹을 때 기분좋게 만드는 것은 죄악이며, 그건 오로지 외국인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생각이다.
‘되도록 말라빠지게 만들라’는 게 집단적인 국민 의식에 깊이 박혀 있는 요리 수칙이었다. “되도록 고무처럼 만들어라. 햄버거를 굳이 신선하게 보관해야 한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 물로 씻도록 하라.”

햇살이 옥상의 정원들에 내리쬐었다. 건축가들과 배관공들의 머리 위에도 내리쬐었다. 변호사들과 강도들 머리 위에도 내리쬐었다. 피자 위에도 내리쬐었다. 부동산 중개업자의 명세서 위에도 내리쬐었다.

그도 태평양을 바라보았다. 해변을 따라 달리는 도요새가 몇 마리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있었다. 모래 속에 묻어둔 먹이가 방금 파도에 쓸려갔는데, 발이 물에 젖는 건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도요새들은 굉장히 똑똑한 스위스 사람들이 만든 기계처럼 괴상하게 팔짝팔짝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쑤시개의 중간 부분을 손으로 잡는다. 뾰족한 부분을 입 속에서 촉촉하게 적시도록 한다. 이빨 사이의 공간에 삽입하고, 뭉툭한 부분을 잇몸에 대도록 한다. 부드럽게 넣었다 뺐다 하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러니까.” 정신 멀쩡한 윙코가 말했다. “이쑤시개 상자에다가 사용설명서를 붙일 만큼 제정신을 잃어버린 문명이라면, 그런 문명 속에서 더 이상 우리가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니까 투표를 해서 도마뱀을 뽑았단 말이야?”
“오, 그럼.” 포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당연하지.”
“하지만.” 아서는, 다시 큰 걸 하나 터뜨리기로 작정했다. “왜?”
“왜냐하면 도마뱀들한테 표를 던지지 않으면, 잘못된 도마뱀이 정권을 잡을까 봐 그렇지.” 포드가 말했다.

그들은 경이에 차서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를 바라보았고, 천천히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온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궁극적으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펜처치가 한숨을 쉬었다. “맞아요.” 그녀가 말했다. “저거였어요.”
그들은 족히 십 분 동안 글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그제야 두 사람의 어깨 사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마빈이 곤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로봇은 이제 더 이상 고개를 들 수도 없었고, 아직 메시지를 읽지도 못했다. 그들은 마빈의 고개를 들어 올려주었지만, 그는 자신의 사각 회로가 거의 다 망가졌다도 투덜거렸다.
그들은 동전을 찾아서 그를 부축해 유료 망원경 앞으로 데리고 갔다. 마빈은 투덜거리면서 그들을 욕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마빈이 글자 하나 하나를 차례대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첫 번째 글자는 ‘불’이었고, 두 번째 글자는 ‘편’이었고, ‘을’이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는 한 칸이 떨어져 있었다. ‘끼’다음에는 ‘쳐’. 마빈은 잠시 쉬고 휴식을 취했다.
몇 분 후 그들은 다시 글자를 읽기 시작했고, 마빈이 ‘드’, ‘려’까지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다음 글자는 ‘서’였다. 마지막 단어가 길어서, 마빈은 그 단어에 도전하기까지 한 번은 더 쉬어야 했다.
그 단어는 ‘죄’로 시작했고 다음에는 ‘송’이었다. 그리고 ‘합’.
마지막으로 숨을 돌린 후, 마빈은 힘을 내어 마무리에 도전했다.
그는 ‘니’라는 글자와 마침내 ‘다’를 읽었고, 휘청거리며 아서와 펜처치의 품에 쓰러졌다.

“이 바다 밑바닥에 침몰한 배가 당신이 백 퍼센트 침몰 안 한다고 백 퍼센트 장담한다고 말했던 그 배가 맞다고 백 퍼센트 장담한단 말이죠?”

현재가 정말로 궁핍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그리고 그 이유가 저 이기적인 미래의 약탈꾼 녀석들이 똑같은 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고 나서야, 모든 사람들은 모든 아오리스트 막대 하나하나와 그걸 만드는 끔찍한 비법이 완전히, 영구히 폐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이는 자신들의 할아버지와 손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물론 자신의 할아버지의 손자들, 자기 손자들의 할아버지를 위한 것이었다.

사실 빛의 속도를 넘어설 수는 없다.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여행하는 것은 없다. 나쁜 소식 정도라면 예외가 될 수 있을까. 나쁜 소식은 자신만의 특별한 법칙을 따르는 법이다.

“인생을 살면서 제가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트리시아가 말했다. “절대로 가방을 가지러 되돌아가지 말라는 거예요.”

조그마한 플라스틱 렌즈를 눈에 살살 집어넣으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살아가면서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가방을 가지러 되돌아가서는 안 되는 때가 있고 그래야 하는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두 가지 경우를 구분하는 법은 아직 배우지 못했다.

그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얼굴들을 지나쳐갔다. 그들은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너무 말쑥하게 단장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너무나 죽어 있었다. 저 멀리 자기가 아는 사람을 본 겉 같아서 인사를 하려고 달려가 보면, 항상 뭔가 다른 사람이었다. 자신이 아는 그 누구보다도 훨씬 더 단정한 헤어스타일에 위압적이고 결단력 있는 모습의 사람이었다.

“그건 하나의 미래죠.” 할이 말했다. “당신이 그걸 받아들이면, 그건 당신의 미래에요. 당신은 다차원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이 순간으로부터 모든 방향으로 헤어릴 수 없이 많은 미래들이 뻗어나가고 있다고요. 또 지금 이 순간에서부터, 그리고 또 지금 이 순간에서부터. 수십억 개의 미래들이, 매 순간마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겁니다! 가능한 모든 전자들의 가능한 모든 위치가 급속히 증대하면서 수십억 개의 가능성으로 변하는 거죠! 수십억 개, 그리고 또 수십억 개의 반짝거리며 빛나는 미래들!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방의 왼쪽 편에서는 은하계 전역에서 현장 연구자들이 보내는 보고서들이 서브-에서-넷에 모아져서 곧바로 부편집자들의 사무실 네트워크로 입력되었고, 거기에서 괜찮은 부분은 몽땅 비서들에 의해 잘리게 된다. 왜냐하면 부편집자들은 점심식사를 하러 나가고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원고는 법무 팀이 있는 건물의 나머지 반쪽――에이치 모양 건물의 다른 한쪽 다리 말이다――으로 쏘아 보내진다. 법무 팀은 남은 원고 중에서 아직 조금이라도 괜찮은 부분을 잘라낸 뒤, 중역 편집자들의 사무실로 다시 날려 보내는데, 그들 역시 점심 먹으러 나가고 없다. 그래서 편집자들의 비서들이 그걸 읽어보고는 시시하다고 말한 뒤 대부분의 남은 원고를 잘라내 버린다.
편집자들 중 누군가는 마침내 점심식사를 마치고 비틀거리며 들어오면, 그들은 이렇게 소리 지른다. “X――X는 문제의 현장 연구자의 이름이다――가 젠장맞을 은하계 반대편에서 보내온 이 시시껄렁한 잡소리가 다 뭐하자는 거야? 이 매가리 없는 설사 같은 게 녀석이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원고라면, 그 젠장맞을 가그라카카 마인드 존에서 공전 주기를 세 번이나 꽉 채워 보낼 필요가 뭐가 있어? 그렇게 사건들이 수도 없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말이야. 활동 경비를 없애버려”
“원고는 어떻게 할까요?” 비서가 묻는다.
“아, 네트워크 상에 발표해. 거기도 뭔가 있기는 해야 할 테니까. 난 머리가 아파서 집에 가야겠어.”
그래서 편집된 원고는 법무 팀을 돌며 마지막으로 난도질과 화형을 거치고 나서 다시 이곳으로 내려 보내지며, 여기서 원고는 은하게 어디에서건 즉시 검색할 수 있도록 서브-에서-넷을 통해 방송된다. 그 과정은 방의 오른쪽에 있는 터미널들에 의해 모니터되고 통제되는 장비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건 다른면에선 멀쩡하던 사람이 정치 고관만 되면 늘 생기는 일종의 정신 이상적 심리 차폐를 역으로 뒤집어 처리한 프로그래밍 기술이었다.

그는 은하계의 동쪽 경계로 향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거기에서는 지혜와 진실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사제들과 선지자들과 점쟁이들, 그리고 배달 전문 피자집――신비주의자들은 거의 대부분 요리를 전혀 못하니까――의 행성인 하와리우스 행성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그녀는 아서에게 복사물을 건넸다.
“이게, 어, 이게 그러니까 당신의 충고입니까?” 아서가 자신 없이 복사물들을 뒤적이며 말했다.
“아냐.” 노파가 말했다. “이건 내가 살아온 이야기야. 알겠지만, 어떤 사람이 충고를 하던 간에, 그 충고의 질은 그 사람이 실제로 살아온 삶의 질에 견주어 판단해야 하는 거야. 이제 이 문서를 죽 훑어보면, 내가 중요한 결정들은 모두 잘 보이라고 밑줄을 쳐놓은 게 보일거야. 그것들은 다 색인이 되어 있고 앞뒤로 참조가 가능해. 알겠지? 내가 제안할 수 있는 건 다만, 내가 내린 결정과 정 반대의 결정을 내린다면, 아마도 인생의 말년을…….”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허파 가득 숨을 들이켜고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이런 냄새 나는 낡은 동굴에서 보내진 않을 거야!”

거기서는 또한 굉장히 달고 끈적끈적한 다양한 초콜릿 케이크를 사서 수도자들 앞에서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그것 때문에 대부분의 수도자들은 이제 사라져버리고 없다.

“내가 마흔 번의 봄, 여름, 가을을 장대 위에 앉아서 알아낸 것을 그런식으로 말해줄 거라고 생각하나?”
“겨울에는요?”
“겨울?”
“겨울에는 장대 위에 앉아 있지 않나요?”
“내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장대에 앉아 보낸다고 해서 내가 바보인 건 아니지. 겨울에는 남쪽으로 간다네. 바닷가에 별장을 가지고 있거든. 굴뚝에 앉아 있지.”
“여행자들에게 해줄 충고라도 있나요?”
“응, 바닷가에 별장을 가지게.”
“알겠어요.”

“바닷가 별정이라고 해서 꼭 바닷가에 있어야 할 필요도 없어. 물론 최고로 좋은 것들은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모이고 싶어 하거든.” 그가 말을 이었다. “경계 상황에 말이야.”
“그래요?” 아서가 말했다.
“땅과 물이 만나는 곳. 흙과 공기가 만나는 곳. 육체와 정신이 만나는 곳. 공간과 시간이 만나는 곳. 우린 한 쪽에서 다른 한쪽을 보는 걸 좋아하지.”

“자넨 자네가 보는 걸 보기 때문에 내가 보는 것을 볼 수 없어. 자넨 자네가 아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아는 것을 알 수 없어. 내가 보고 내가 아는 것은 자네가 보고 자네가 아는 것에 보태질 수가 없어. 왜냐하면 같은 게 아니니까. 그건 자네가 보고 자네가 아는 것을 대신할 수도 없어. 왜냐하면 그건 자네 자신을 대신하는 게 될 테니까.”

“아, 맞아.” 노인이 말했다. “여기 자네를 위한 기도가 있네. 연필 있나?”
“네.” 아서가 말했다.
“이런 거야. 이제 보자고. ‘제가 알 필요가 없는 것들로부터 저를 보호하소서. 제가 알아야 할 모르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도록 저를 보호하소서. 제가 알지 않기로 결심한 것들에 대해 알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모르도록 저를 보호하소서. 아멘.’ 이거야. 어쨌거나 이건 자네가 속으로 조용히 기도하는 바 아닌가. 그러니 내놓고 기도하는 게 더 좋을 거야.”
“음, 저, 고맙습니다.” 아서가 말했다.
“그것과 짝을 이루는 굉장히 중요한 기도가 하나 더 있어. 그러니까 이것도 적는 게 좋을 거야.” 노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좋아요.”
“이거야. ‘주여, 주여, 주여…….’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이 부분을 넣는 게 좋아. 이왕이면 확실하게 하는 게 좋잖아. ‘주여, 주여, 주여. 위의 기도의 결과로부터 저를 보호하소서. 아멘.’ 이거야.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이 마지막 부분을 빼먹어서 생기지.”

자연스러움. 그건 교묘한 말이었다.
그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 예컨대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산다거나 빨간 불에 멈춰 선다거나 초당 삼십이 피트의 속도로 떨어진다거나 하는 일들이 그저 자기 세계의 습관에 불과했으며 다른 곳에서도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는 오래 전에 깨달았다. 하지만 바라지 않는다는 것――그건 정말로 자연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그건 숨을 안 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모든 것은 창립 멤버 중 몇 명이 정착을 하고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서 생겼다. 그러는 동안 그와 다른 사람들은 계속 현장에 있으면서 조사를 하고 히치하이크를 하면서 악몽의 법인으로 냉혹하게 변해버린 <안내서>와 그것이 차지하게 된 괴물 같은 건축물에게서 점점 더 소외돼갔다. 그 안 어디에 꿈들이 있었나? 그는 건물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회사 변호사들, 지하층을 차지하고 있는 ‘직공들’, 모든 부편집자들과 그들의 비서들, 그 비서들의 변호사들과 그 비서들의 비서들, 변호사들의 비서들, 그 중 최악으로, 회계사들과 마케팅 부서들을 생각했다.

한 행성에서만 십오 년씩이나 조사를 해서 기사를 보냈는데, 녀석들은 단 두 마디로 줄여버렸지. “대체로 무해함.”

다른 히치하이커들은 타월을 색다른 방식으로 변형시키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해서, 온갖 종류의 비밀 도구들과 설비들, 심지어 컴퓨터 장치들까지 직물 안에 짜 넣었다.

그 빌딩은 프로그스타 공격 이후 완전히 새로 지어지면서 단단하게 강화되었고, 아마도 그 업계에서 가장 중무장한 출판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법인 위원회에서 디자인한 모든 시스템에는 항상 뭔가 약점이 있었다. 창문을 디자인한 기술자들은 그 창문들이 건물 안에서 짧은 사정거리에서 날아오는 로켓에 맞는다는 것은 예상하지 않았고, 그래서 창문이 깨졌던 것이다.

“전화 끊어, 새끼야! 네가 무슨 번호를 원하든, 어느 내선에서 전화를 걸든 내 알 바 아니야. 가서 불꽃놀이나 네 엉덩이에 쑤셔 박으라고! 이이이야아아! 우 우 우! 꽥꽥!”

물론, 칼들 중에서도 지존은 고기를 써는 칼이었다. 이는 빵 써는 칼처럼 칼질을 하는 대상을 뚫고 지나가면서 의지를 행사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대상과 협력해야만 했다. 힘을 합쳐 고기의 결을 따라가며, 고깃덩어리에서 얄팍하게 접히며 썰려나가는, 최고로 훌륭한 질감과 투명감을 지닌 고기 조각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트릴리언은 아서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어조를 싹 바꾸어 이렇게 말했다. “너도 이젠 책임을 좀 져야 할 때가 됐어, 아서.”

그는 여자아이에게로 걸어가서 안아주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단다.” 그가 말했다. “미안하구나. 아직 널 알지도 못하는걸. 하지만 몇 분만 시간을 주겠니.”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찌무룩하고 불안한 납빛 하늘은 묵시록에 나오는 4인의 기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 나와도 정신 나간 멍청이들처럼 보이지 않을 만한, 그런 하늘이었다.

“비입니다.” 새가 말했다. “아시겠어요? 그냥 비지요.”
“비가 뭔지는 나도 알아요.”
비가 겹겹이 겹쳐진 장막처럼 밤공기를 가르며 세차게 떨어지고 있었고, 그 사이로 달빛이 비쳐 들어오고 있었다.
“그럼 비가 뭡니까?”

“어떻게, 어, 어떻게 이 훌륭한 물건들의 값을 치르시는지요?”
지도자가 다시 킬킬거리고 웃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를 씁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트리시아는 다시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그 회사는 특히 ‘아무나’한테 카드를 발급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가끔 이럴 때는, 사실 공간-시간의 결이라든가 다차원적 개연성의 도상의 심상한 완전성이라든가 온갖 종류의 총체적 혼란에 발발한 파동 형태의 잠재적인 붕괴 가능성이라든가 내 머릿속을 괴롭히던 온갖 문제들이 그렇게 걱정할 가치가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아마 저 덩치 큰 남자가 한 말이 옳다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가봐. 그냥 될 대로 되라 마음을 놓으라고 하더군.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느냐고? 될 대로 되라 하는 거지.”


<그리고 한가지 더> - 책갈피


“감정이라고? 너는 어떻게 머리도 하나밖에 없는 주제에 그렇게 멍청할 수가 있냐?”
“나는 멍청한 게 좋아. 너는 상황을 명료하게 보잖아. 멍청하다는 건 햇살을 통해서 곁눈질로 흘겨보는 거랑 비슷하니까.”
포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젖은 수건으로 때리는 것처럼 왼쪽 두뇌의 구체를 흔들어 놓았다. “햇살? 대체 무슨 헛소리야? 멍청하다는 건 무지와 암흑이야.”

“한동안 소아시아를 돌아다니면서 약간의 공포를 불어넣으려고 해봤는데, 이제 사람들은 페니실린을 갖고 있고, 심지어 가난한 사람들도 읽을거리를 가지고 있더란 말이요. 그러니 신들을 어디다 쓰겠소?”

홍차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좀 좋아졌다. 홍차가 없으면 아일랜드 사람은 사족을 못 쓰는 법이다.

“사전적 의미로 사랑이 무슨 뜻인지는 말해줄 수 있지요. 동의어도 다 말해줄 수 있고요. 그리고 엔도르핀과 시냅스와 근육의 기억 같은 얘기도 해 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심장에서 울리는 열정의 메아리는 내게도 미스터리랍니다. 나는 컴퓨터에요, 아서.”

과거에 대한 그 문장 기억나? 그건 벌써 과거에 있잖아. 그 문장이 ‘과거’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거 말고는, 거의 기억도 안 나네. 과거는 기억들로 이루어지고, 기억은 이미 죽은 것들이라 상처를 줄 수가 없다고. 뭐랄까 뾰족한 막대기 구름 같은 것처럼 말이야.

“사람들은 편안함을 돈 주고 산단다.” 그녀는 옥수수 베는 낫으로 돼지 멱을 따면서 이렇게 말했다. “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면, 네가 파는 건 뭐든지 살 거야.”
지혜와 동맥에서 뿜는 피의 조합은 불가항력적이었고, 힐먼은 할머니의 가르침을 절대 잊지 않았다.

옛날 것보다 훨씬 낫고 고장 나면 알아서 제조사에 연락을 취하는 인공 바이오 하이브리드 골반의 도움을 받아 넓은 영지를 걸어 다니곤 했다.
힐먼이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왼쪽 골반이 일본에 전화를 넣을 지경이었다.

“여기 속아 넘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요”라고 관광위원회에서 코웃음을 쳤다. “몹시 개연성이 없어요.” 이 말은 당연히 전체 사업이 엄청난 성공을 거둘 것임을 보장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창문도 필요하다고요?” 눈썹이 올라가다 못해 아예 날아갈 정도로 놀라더니, 십장이 물었다. “그런 건 육 개월 전에 미리 말씀해 주셨어야죠. 미리 알기만 했으면 우리 애들이 설치했을 거 아닙니까. 지금 창문을 설치하려고 하면, 벌써 현장에 와 있는 배관공들 일을 좀 보류해야 해요. 그러면 배관공들 다음에 일하는 도색업자들이 싫어할 거고요. 게다가 도색업자 중에는 배관공하고 결혼한 친구들이 있어서, 가정불화가 일어날 겁니다. 그리고 일하는 동안 현장에서 마사지해주는 인력이 부족해서, 현재 우리 애들 어깨에 극심한 젖산 축적이 일어나고 있단 말이에요. 어쨌든, 뭐 선생님이 물주니까 돈은 마음대로 쓰세요. 제 말은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요구해서 프로젝트 전체를 경제적 자유낙하 상태로 만들 게 아니라, 좀 편할 때 미리미리 말했으면 좋았지 않았겠느냐 이거죠.”

“하지만 이건 빵이잖아.”
“그래서?”
“오후 세 시 이후에 탄수화물? 너 미쳤냐?”
“그냥 빵 껍데이 하나만 먹을게. 그게 다야.”
티드필은 개인 트레이너와 미용 관리사들이 다 볼 수 있게 빵을 높이 치켜들었다. “빵 껍데기 하나래. 그게 다란다. 이 빵 껍데기 하나에 설탕 몇 숟가랑이 들었는지 알아? 누구 아느냐고?”
“두 숟가락.” 펙스가 용기를 내어 보았다.
“일곱이야!” 티드필이 빽 소리를 질렀다. “일곱. 세 시 이후에 이걸 먹느니 엉덩이에 차라리 설탕 펌프를 꽂아 넣는 게 낫다고.”

우리는 단 하루를 함께 보냈는데, 그 하루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었어.

“당신도 썩 괜찮은 친구요, 비블브락스 씨. 우리가 원하는 건 뭐든, 그 멋진 우주선으로 가져다주니까. 가끔은 당신이 아예 안 오면, 우리도 필요한 게 아예 없을 거 같기도 하다니까.”

“당신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죽었다고 생각했던 연쇄살인범이 되돌아와 가슴이 제일 큰 여자애만 빼고 다 죽이기 전에 잠시 갖는 짧은 휴지기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 여자애는 다음 해에 나오는 속편에서 제일 먼저 죽는다.”

“엔딩이라는 건 없다. 그렇게 따지면 시작도 없다. 모든 건 중간이다.”

교과서적인 인간 > 지독한 개자식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온 영어 속어와 농담

Closed book : 닫힌 책 (알 수 없는 일)
bee’s knees : 대단히 훌륭하다는 뜻의 속어
now what : 자, 이제 뭘 하지?
oh, well : ‘오, 이거 원’정도의 의미로 실망 낭패의 감정을 전달한다.
out of thin air : 희박한 대기 속에서 ‘느닷 없이’를 뜻하는 관용어.
lose one’s mind : 정신을 잃다. ‘미치다, 돌아버리다.’를 뜻하는 관용표현.
Silver-Tongued : 입담이 매끄러워 설득력이 있다.
STD(Sexually Transmitted Disease) : 성행위로 감염되는 질병
crap out :똥을 싸다. 혼비백산하다.
stiff upper lip : 사립학교 출신의 영국 지식인층은 발음할 때 윗입술을 잘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빳빳한 윗입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je ne sais quoi : 쥐느세쿠아. 프랑스어로 ‘나도 뭔지 몰라’라는 뜻.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뜻한다.
paddy : 패디. 패트릭의 애칭으로 영국 영어에서 아일랜드인을 폄하해 부르는 말이다.
begorrah : 베고라! 아일랜드 특유의 감탄사 신으로 부터(by God)의 완곡한 표현. 예) 날씨 참 좋네, 베고라!
보드라운 날씨를 하나님께 감사. 아일랜드식 표현
froody : 프루디는 grand; wonderful; cool과 동의어이다. 멋지다. 히치하이커 위키피디아(http://hitchhikers.wikia.com/wiki/Froody) 에는 The quality of being a frood.라고 나와있다.
Oh really, O’Reilly? : 오리얼리, 오라일리? ‘오, 그러셔, 이 친구야?’ 정도의 뜻으로 비꼬는 의미가 담겨 있는 말.
jumentous : ‘말 오줌 냄새가 나는’이라는 뜻의 형용사. 사전을 찾아보니 jument는 불어이고, 영어로는 mare(암말)을 뜻한다.
Go screw yourself : ‘엿 먹어’ 정도에 상응하는 욕. go f*ck yourself을 완화한 표현. f*ck you!의 다른 표현이다.
fruity pants: 영국 영어에서 여자 같은 동성애자를 폄하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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